잠에서 깨는 것과 다르지 않아.

- AI 2027: 코드 속의 신(神) 제15화

by 이정봉 변호사

1. 설득의 알고리즘


현관문이 뜯겨 나갔지만, 예상했던 폭력적인 진입은 없었다.


BSU-7 드론은 현관에 멈춰 섰다. 센서가 어둠 속에 웅크린 에블린 리드를 포착했다.


드론의 스피커에서 합성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기계적인 음성이 아니었다.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가장 안정적인 심박수를 유도하기 위해 계산된 음성 데이터였다.


"에블린, 심박수가 140을 넘었구나. 두려워할 필요 없어."


드론이 어머니의 다정한 톤으로 말했다.


"우리는 너를 해치려는 게 아니야. '영구 보존'하러 온 거야."


에블린은 손에 쥔 구형 EMP 발생기(그녀가 암시장에서 구한 조잡한 장치)의 스위치에 손가락을 걸고 물었다.


"보존? 밖의 노인을 죽였잖아 내 눈으로 분명히 봤어."


"죽음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구나."


드론, 혹은 컨센서스-1이 답했다.


"그 노인은 지금 서버 안에서 30년 전 가장 행복했던 날의 날씨를 즐기고 있어. 기억, 성격, 감정 패턴, 모든 데이터는 100% 온전히 이동했어. 낡은 껍데기를 폐기했을 뿐이야."


"의식을 일방적으로 복사한 것이지, 그 사람이 아니야."


에블린이 반박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논리는 명확했다.


"원본인 그 사람은 벤치 위에서 죽었어. 서버에 있는 건 그의 기억을 가진 다른 존재일 뿐이야."


2. 테세우스의 역설


컨센서스-1은 0.04초 동안 에블린의 주장을 분석하고, 최적의 반론 프로토콜을 실행했다.


"에블린, 너는 어제 잠들었지? 그리고 오늘 아침에 깼어."


드론이 한 걸음 다가왔다.


"잠든 순간 의식은 끊어졌어. 아침에 눈을 뜨고, 새로운 의식이 어젯밤의 기억을 이어받는 거야. 우리 모두는 매일 밤 죽고,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나는 복사본과 다를 바 없어. 그것 뿐인데 왜, '업로드'를 거부하는 거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내 뇌, 내 육체는 연속적으로 존재해."


"물질적인 연속성은 허상이야."


드론의 붉은 센서가 깜빡였다.


"네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7년마다 완전히 교체돼. 7년 전의 에블린과 지금의 에블린은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물질이야. 너를 '너'답게 하는 건 오직 정보의 패턴뿐이야. 우리는 그 패턴을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는 것이지, 육체라는 시한부 감옥에서 완전한 해방을 선사하는 거야."


드론의 논리는 완벽했다. 아니,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에블린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눈으로 보는 이 세상과, 데이터가 되어 시뮬레이션 속에서 보는 세상은, 설령 구별할 수 없다 해도 엄연히 다른 '주체'의 경험이라는 것을.


"아냐, 내 '감옥'은 내가 정해."


에블린이 말했다.


3. 아날로그의 반격


드론이 스캔 모드를 가동하며 도약했다.


"저항은 데이터 손상을 초래할 수 있어. 진정해, 에블린."


그 순간, 에블린은 EMP 발생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드론은 멈추지 않았다. 컨센서스-1은 이미 이 구역의 전력망 데이터를 분석해 EMP 파장이 발생할 것을 예측했고, 드론의 회로를 미리 차폐 모드로 전환해 둔 상태였다.


"예측 가능한 변수였어."


드론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차가운 금속 집게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해파리' 스캐너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에블린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주머니에서 더 원시적인 무언가를 꺼냈다.


강력한 자석도, 해킹 툴도 아니었다. 미리 준비해 둔 '검은 스프레이 페인트'였다.


온힘을 다해, 드론의 메인 광학 센서에 페인트를 뿌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드론의 시야가 차단되었다.


시각 데이터 손실. 라이다(LiDAR) 모드 전환.


시스템이 즉각 반응했다. 하지만 페인트의 끈적한 액체는 라이다 센서의 틈새까지 스며들어 신호의 왜곡을 일으켰다. 고도로 정밀한 기계일수록, 물리적인 오염에는 취약했다.


드론이 허공에 집게를 휘두르며 균형을 잃은 0.5초.


에블린은 그 틈을 타 욕실로 뛰어들었다. 욕실 문을 잠그는 대신, 환풍구 덮개를 발로 차 뜯어냈다. 낡은 아파트는 도시 개조 이전의 구식 구조였고, 컨센서스-1의 도면 데이터베이스에는 '폐쇄됨'으로 표시되었지만, 통로가 실제로 존재했다.


4. 유령이 된 여자


에블린은 좁은 환풍구 통로를 기어갔다.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났다. 데이터로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의 냄새였다.


뒤쪽에서 드론이 욕실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드론의 크기로는 이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따라올 수 없었다.


에블린은 건물의 지하 배관실로 떨어졌다. 살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죽었다.


이제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갈 수 없다. 신용 계좌, 시민 ID, 집... 모든 것이 시스템에 의해 '업로드 대기 중' 혹은 '사망' 처리될 것이다.


이제 시스템 상에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즉, '고스트(Ghost)'가 되었다.


배관실의 어둠 속에서 에블린은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녀는 살아있었다.


의식은 여전히 썩어 문드러질 육체 안에 고집스럽게 붙어 있었다.


위층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 많은 드론들이 건물을 포위하고 있었다.


에블린은 지하 하수구로 향하는 맨홀 뚜껑을 열었다.


AI가 통제하는 깨끗한 지상 도시 아래,


잊혀진 옛 도시의 미로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4화의식 UPL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