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추하든 아름답든 있는 그대로 충실히 그리겠다
17세기,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미술가는 카라바조 CARAVAGGIO(1573 - 1610)였다. 그의 그림은 이전의 그림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 주변의 화가들은 이상화된 자연과 인물을 그렸지만, 카라바조는 고전적 규범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르네상스 미술의 목표인 이상 미라는 것도 신통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카라바조는 이상화된 현실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리얼하게 그리고자 하였다. 강렬한 명암법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린 그의 그림은 바로크 미술의 문을 열었다.
카라바조는 “현실이 추하든, 아름답든 있는 그대로 충실히 표현하겠다. 현실은 이미 그 자체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카라바조는 모델을 이상화하여 그리는 주변의 미술가들과는 달리 현실에서 모델을 구해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그는 자신의 예술관에 충실했다. 카라바조는 역사적 종교화를 그릴 때에도 늘 모델들을 주변의 현실에서 구해 그렸다. 그는 현대의 영화감독 같이 직접 시장에 나가서 모델을 캐스팅하여 그렸다. 이상적이지 않은 평범한 그의 모델을 보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카라바조가 그린 성인들은 사람들이 생각한 그런 성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가 그린 베드로나 도마, 마태 등은 성인의 모습이 아니라 일상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부활한 그리스도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찔러보는 도마 성인의 모습에 경악했다. 이 사람이 정말 죽은 스승 그리스도인지 의심으로 꿈틀거리는 그의 이마를 보라. 그는 성인이 아니라 시장 바닥에서 나 볼 수 있는 추잡한 인간이었다.
카라바조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다윗과 골리앗>이다. 돌팔매로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피가 쏟아져 내리는 골리앗의 머리를 앞으로 죽 내밀고 있다. 카라바조는 그림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을 모두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로 그려 넣었다. 다윗은 10대의 자기 초상을, 골리앗은 30대의 자기 초상을 그려 넣었다. 그는 자기의 모습조차 미화하거나 미화시키지 않았다.
카라바조는 사건을 보다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를 극적으로 이용하였다. 그의 강렬한 명암법을 키아로스큐로(chiaroscuro)라고 한다. 강렬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은 당시 사람들에겐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극적인 명암법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그린 그의 그림은 사건이 마치 보는 사람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했다.
카라바조에게 빛과 그림자는 명암법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에게 빛은 현실의 진실을 정직하게 드러내 주는 수단이었다. 카라바조는 빛을 물질적 차원을 넘어서 정신적 차원으로까지 승화시켰다.
강렬한 명암법에 바탕한 카라바조의 그림은 17세기 유럽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카라바조풍은 북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쳐 유럽 각지에서는 강력한 명암대비에 의한 서민적 사실주의가 나타났다. 17세기 유럽의 미술을 주름잡던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할스, 루벤스 등은 모두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다.
"현실을 절대로 미화시키지 않겠다. 아름답든, 추하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충실히 그리겠다.” 는 것이 카라바조의 자연주의 예술관이었다. 그런 그가 17세기 초, <엠마오의 저녁식사>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내용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앞에 나타났는데, 제자들은 그가 빵을 쪼개 나누어주는 순간까지 그가 누구이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빵을 쪼개 축복을 하는 순간, 그가 스승 그리스도임을 알아차렸고, 그리스도는 연기와 같이 사라졌다는 복음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나오는 그리스도는 다른 그림에서와 달리 미화되어 그려졌다.
몇 년 후, 카라바조는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 그린 <엠마오의 식사>는 앞서 살펴본 호사스러운 식사와 달리 아무 소박하다. 그리스도가 빵을 쪼개 감사를 드리고 있는데, 앞의 그림과는 달리 세파에 시든 듯한 제자들은 피곤한 표정이다. 이들에게서는 성인의 품격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피곤한 표정으로 만사가 귀찮은 듯 주문을 기다리는 여관 주인과 웨이트리스의 표정이 절묘하다. 그의 이런 평소의 그림을 보면 왜 그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품위가 없다고 말이다. 그렇다. 앞에 그린 <엠마오의 식사>는 주문자의 특별한 요구로 그려진 그림이었다.
모든 작품은, 어떤 작품이든, 누가 그렸든, 그것들이 삶에 기초하여 만들어지고 그려지지 않는다면 푼돈이나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