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술가들은 20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조형을 원했다. 20세기 미술가들은 순수미술, 형태의 구조, 속도, 무의식과 같은 주제를 탐색하고 형상화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런 주제는 원근법이나 해부학, 명암법 등으로는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새로운 도구가 필요했다.
20세기의 미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과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이전의 미술과는 달라야 했다. 그 새로운 방법은 분석이었다. 20세기 미술은 물체의 구조와 사물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대상을 분석(分析 analysis) 하기 시작했다. 원리는 단순했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20세기의 미술은 미술의 본질을 알기 위해 형태를 점·선·면들로 분석하였고, 회화를 형태와 색채, 그리고 물질로 분석/환원하였고, 작품 제작의 과정과 아이디어로 분석하였다. 근원적인 요소로의 분석/환원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20세기는 과학기술의 시대, 기능주의의 시대였다. 과학주의에 강력한 영향을 받은 미술도 과학화를 시도했다. 근대 과학의 핵심은 요소 환원주의였다. 환원주의(Reductionism)란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분석해/제거해나가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쉽게 말하자면 요소 환원주의란 내가 알고자 하는 대상이 있으면 가장 작은 요소로서 쪼개고 난 후, 그것들을 다시 재조립/재조합하여 정리하는 방법이다.
“모든 것을 가장 작은 단위(Unit)로 쪼개 보면 알 수 있다.”라는 환원주의적 사고의 배경에는 서양 근대의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는 하나의 잘 짜인 기계이고, 그 기계의 구조나 메커니즘을 알면 인간이나 자연, 심지어 예술까지도 해명할 수 있다는 것이 서양 근대인의 믿음이었다.
근대문명의 도구인 분석은 과학이나 산업에서만 행한 것이 아니었다. 20세기의 미술과 건축, 디자인도 형태의 구조, 회화의 구조, 작품 제작 과정의 구조를 알기 위해 분석을 시도했다.
20세기 미술은 형태(form)의 분석을 통해 형태가 점, 선, 면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 조형 분석을 통해 형태는 선과 색채로 이루어졌음을 파악했다.
분석은 요술 방방이었다. 15세기의 원근법이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미술을 낳았듯이 20세기의 분석은 기하학적 추상, 서정 추상, 삭면 추상, 해프닝, 퍼포먼스, 미니멀, 개념미술 등을 낳았다.
학생 시절, 우리는 왜 서양과 같이 다양한 미술을 만들지 못했냐가 제일 불만이었다. 우리는 왜 인상파나 입체파, 미래파, 추상미술같이 다양한 미술을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다. 나중에 미술과 사회에 대한 지식이 넓어지면서 그런 그림들은 동양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냥 삼각형이나 사각형 원을 그린다고 추상미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관찰과 분석이 없는 곳에서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나올 수가 없다. 작품은 그냥 어느 날 천재의 머리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고민들이 천재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지 고민도 안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천재가 나타나 해결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20세기 이전 동양에서는 분석이란 도구가 없었다. 분석이 없는 곳에서 기하학적 추상미술이란 불가능하다. 그 어떤 인간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