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지~"
80년대 추억의 외화, 맥가이버 시리즈에서 주인공 맥가이버는 항상 이 대사와 함께 등장했다. 그 시절 초등학생이던 나는 골목에서 놀다가도 맥가이버 할 시간이 되면 후다닥 쫓아 들어왔다. TV앞에 자리를 잡고 침을 꼴딱 삼키며 기다렸다. 맨손의 마술사, 맥가이버가 오늘은 또 얼마나 기막힌 장면을 보여줄지, 짜릿한 순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집중!
당시 맥가이버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귀에 착 감기는 성우 배한성의 목소리도 찰떡이었고, 준수한 외모에, 매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인 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유연한 태도'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하는 긍정의 힘은 그 어떤 초능력보다 위대해 보였다.
비결은 손끝에 있었다. 버려진 전선이나 풍선껌, 녹이 슨 나사못도 그의 손을 거치면 가공할 무기로 거듭났으니. 얼렁뚱땅 만든 것 같아도 그의 폭탄은 언제나 백발백중이었다. 기어이 잠긴 문을 해체하고 악당을 물리칠 때면 내 머리카락 끝에도 전기가 통하는 기분이었다. 짜릿함을 만끽하며 생각했다. 진정한 고수는 힘 빼고 가는 거라고, 맥가이버처럼.
주말마다 맥가이버의 눈부신 활약을 응원하며 자란 아이는 바로 그 맥가이버 같은 남자와 지지고 볶고 살고 있다.
"물때가 잘 안 지워지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며 내가 말했다. 혼잣말이었다. 대개 혼잣말은 상대가 없지만 요즘 나는 남들이 다 들리도록 혼잣말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들어주는 이는 주로 남편이다.
사실 '물때'라는 말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흐르는 물에 때가 낀다니. 하지만 내가 납득하거나 말거나 세면대 수전에는 수시로 얼룩덜룩 허연 물때가 남았다.
손끝에 힘을 실어 빠득빠득 문질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손을 씻거나 세수할 때마다 피부에 닿는 부분이라 위생에도 좋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화장실 청소를 매일 할 수도 없는 노릇. 별 수 없이 툴툴거림만 늘어갔다.
그러나 장점인지 단점인지, 난 또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며칠 뒤, 무심코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눈이 부셨다. 수전이 새로 바뀌어 있었다. 놀라는 내 등뒤에서 남편이 말했다. 스테인리스 재질이라 물때가 덜 낀다고. 물론 그래도 자주 닦아줘야 하지만 전보다 세면대가 훨씬 깨끗해졌다. 화장실의 표정이 달라졌다.
"우와, 호텔 화장실 같아!"
나의 달뜬 반응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TV 리모컨을 돌리던 남편이 슬쩍 한마디 덧붙였다.
"써보고 불편하면 말해."
"아니야, 전혀 불편하지 않아, 너무 좋아, 자꾸 손 씻고 싶어져!"
이처럼 집안 곳곳에는 남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전등 교체는 기본이고 각종 전자제품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AS 대리점에 맡기기 전에 먼저 남편 손을 거친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원상복구 될 때가 많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만난 듯 삐걱거리던 기계도 남편 앞에 가면 고분고분 해졌다. 타고난 기계치인 나로선 그저 신기하고 황홀한 일이었다.
엊그제는 진공청소기가 말썽을 부렸다. 청소기를 쓰지 않을 땐 세워두고 충전을 시켜야 했다. 그런데 나는 벽에 못을 박고 싶지 않았다. 그냥 세워만 두자고 했는데, 기계가 내 맘 같지 않았다. 툭하면 옆으로 드러누웠다. 쓰러진 청소기를 일으켜 세우는 남편 뒤에서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얘가 왜 이리 힘이 없냐, 안 되겠다, 그치... 그냥 못을 박을까?"
청소기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남편의 손이 빨라졌다. 단박에 각도를 틀어 벽이 아닌 정리대 옆면에 청소기를 고정시켜 주었다. 순식간이었다. 청소기는 청소기대로 충전이 완료되었고, 벽도 깨끗하게 지킬 수 있었다. 이러니 난 또 놀랄 수밖에.
"당신 어쩜 이런 생각을 다 했어?"
갈수록 집이 아늑해지고 생활이 편리해진 건 전적으로 남편 덕분이다. 진정한 맥가이버의 현실판. 하지만 단순히 기계를 잘 다룬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가족들의 사소한 불편이나 스치는 말 한마디에도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마음이 실로 고맙고 소중하다. 누군가의 불편을 인지하는 즉시 실행에 옮기는 행동력과 깔끔한 뒤처리, 모두가 지극한 배려와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부가 기계만 뜯어먹고 살 순 없다. 모든 결혼생활이 그러하듯, 우리 부부도 수시로 툭닥거리고 흘겨보고 갈등한다. 그런데 남편이 아프고 나서부터 사무친 문장이 있었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하다.'
예전엔 그냥 흘려들었지만 생의 어느 순간을 경험한 뒤로는 뼈에 새긴 말이 되었다.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고치려고 애쓰기보다 그의 장점을 더 크게 보고 살자는 쪽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때부터 부부의 톱니바퀴가 새롭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의 설계도를 펼쳐놓기 전에 상대의 밑그림을 봐가면서 빡빡한 나사를 풀었다 죄였다 다시 맞추길 반복했다. 그제야 서로가 조금 쉬어 갈 틈이 생겼다.
뭔가를 놓쳤다고 후회하지 않기로,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루는 길어도 일주일은 금방이었다. 어느새 다음 계절이 왔다. 그 시간을 함께 통과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좀 더 끈끈해졌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틋함이 세월처럼 쌓여갔다. 이 또한 시련이 준 선물이었다.
모든 기계는 언젠가 낡고 허름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살다 보면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을 때가 온다. 녹이 슬거나 속도가 느려지기도 한다. 그 순간을 대비해 우리는 각자 준비가 필요하다.
서로의 걸음을 재촉하지 않을 준비,
천천히, 함께 나아갈 준비.
그럼에도 간혹 그의 미운 구석이 보이거나, 단전에서부터 솟구친 잔소리가 목젖을 건드리면 나는 손을 씻으러 가야지. 마음의 물때를 씻어내면서 말해야지.
"역시 우리 집 수전이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