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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 Jan 13. 2023

첫 동결 배아 이식에 성공하다

난임 일기 13

난생처음 시도한 시험관 시술의 한 사이클이 세 달 만에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그 사이에 몸과 마음은 아주 서서히 지쳐갔다. 

사람들이 왜 이 시술을 힘들다고 얘기하는지 그제야 알 것도 같았다.

우선 몸이 지치는 이유는 일주일에 두 세 차례 잡히는 병원 일정과 끊임없이 몸에 투여해야 하는 약물 때문인데, 

난자 채취 준비기간부터 배아 이식 시술 완료 후 첫 초음파를 확인하기까지 내가 맞은 주사와 복용한 약만 나열해봐도 이 지경이다.


[배아 이식날까지 투여한 주사와 약]

페마라 약 10일
고날에프 주사 12일
가니레버 주사 5일
질정 32일
항생제 32일
에스트라디올데포 주사 33일
프로기노바 약 27일
베이비 아스피린 약 34일
소론도 약 23일


나의 경우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비록 무급이지만 난임을 사유로 휴직이 가능한 직장이었고, 큰 병원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진료 일정에 맞춰 병원을 오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초진한 날로부터 첫 난자 채취 날까지 두 달도 안 되는 사이 무려 11번을 진료를 봤다. 

채취한 난자를 바로 이식하는 데에는 실패했던 대신 자궁경 시술을 하기 위해 3번, 그리고 동결 배아 이식을 위해 3번 더 내원했다. 

물론 이식 이후에도 진료는 계속되고 있고. 일주일에 평균 두 번, 많으면 세 번까지도 병원 문턱을 드나들었다는 뜻이다.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회사를 다니면서 이걸 병행하는 거지?

한편 마음이 지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널을 뛰는 그놈의 기분 때문이었다. 

숨을 쉬고 있는 모든 순간 머릿속은 어떻게든 임신에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게 되어 모든 과정이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가 되어 버린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내 배에 주사를 놓는 일도, 시간 맞춰 이 약 저 약 빠짐없이 챙겨 먹어야 하는 것도, 임신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음식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도.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배아 이식 시술 열흘 후, 임신 성공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1차 피검사 날까지는 잠도 잘 안 왔다. 

잠을 잘 자야 착상도 잘 된다는 걸 알면서도 불을 끄고 눕기만 하면 깜깜한 허공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과 걱정을 불러냈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니라 한 번 동결했다가 해동한 배아를 이식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까 겁이 났다. 

시험관 시술 과정으로 태어난 아기가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아기보다 건강하지 않거나 부족한 게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으며, 

담당 의사 선생님과 병원을 못 믿는 것도 아니지만 내 몸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고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왠지 모르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그간의 몸 고생 마음고생했던 순간이 머릿속에 하나 둘 스쳐 지나갔다. 

병원에서 난임 진단을 받았을 때 내가 난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다급히 “그런데 저희가 지난 반년 동안 막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어요”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려 들었던 나에게 “아휴, 다 자기는 아니래”라고 말하며 크게 웃는 선생님을 따라 멋쩍게 따라 웃었던 기억, 

길에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와 그 부모들만 봐도 “부럽다…”라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던 기억, 

남들은 아이도 자연스레 잘 생기고 잘 낳고 잘만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인위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 싶어 마냥 내 몸을 원망스러워했던 기억까지도.

그렇게 잠을 설치다가도 난자 채취 단계에서 더 이상 진행을 못 하는 환자들도 많을 텐데 참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여 겨우 잠이 들곤 했다. 

배아 이식을 앞두고 시술이 중단되었을 때, 제발 하나라도 이식만 해봤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던 걸 벌써 잊어버린 걸까. 

이식이 끝났으니 착상이 잘 되기를 빌고, 착상이 잘 되었다는 확인을 받고 나서는 아기가 어디 하나 문제없이 건강하기를 바라며 수많은 날을 기다려야 한다. 

그야말로 갈 길이 태산이라는 말이다.

밤잠 설치던 여러 날이 지난 후, 그토록 기다리던 1차 피검사 날이 되었다. 

아침 9시 전에 와서 피검사를 일찍 하면 오후 2시쯤 결과를 받아볼 수 있고, 그 이후로 피검사를 하면 오후 5시쯤 연락을 준다기에 아침 댓바람부터 가서 피검사를 마쳤다. 

다섯 시까지 어떻게 기다려. 

진료까지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2시가 좀 지나자 담당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벨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얼른 받았다.

간호사는 임신 반응 검사인 1차 피검사 수치가 100 이상 나오면 임신으로 본다고 설명해 주었고, 나의 경우 130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임신이, 된 거라고. 

네? 됐다고요? 얼떨떨해 되묻는 내게, 간호사는 웃으며 이 정도면 안정적인 수치라고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배아 이식 후에 봤던 피비침은 착상혈이었던 모양이다.

잔뜩 졸아들었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편안해졌다.

그렇게 한 번의 난자 채취와 한 번의 동결배아 이식으로, 다행히도 나는 임신에 성공했다. 

이제부터는 잘 지켜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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