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지 Jan 13. 2023

시험관 시술은 잔인해

난임 일기 12

난자 채취에는 성공, 배아 이식은 실패라는 결과로 아쉽게 끝난 첫 시험관 시술. 

바로 다음 달에 다시 시술을 진행할 줄 알았는데 담당 선생님은 첫 달에 힘들었을 테니 두 번째 달은 쉬자고 하셨다. 

아니라고, 쉬고 싶지 않다고, 바로 또 시술하고 싶다고 주장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의 아쉬운 눈빛을 읽으셨는지 선생님은 두 번째 달에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라고 하셨다. 

쉬는 동안 임신에 도움이 되는 자궁경 시술이라는 걸 진행할 텐데 용종이 있으면 제거할 것이고 

이 시술로 인해 자궁이 자극되기 때문에 네 달 정도 임신 확률이 올라가는 효과도 있어 도움이 될 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해야지, 암. 시술 날짜를 잡고 병원을 나섰다.


한 달 동안 시험관 시술 진행은 하지 않으니 주사도 안 맞고 먹는 약도 항생제 말고는 없는 몇 주를 보낼 수 있었다. 

난자 채취 시술 후 약간의 출혈과 통증, 아랫배의 불편한 느낌이 가라앉고 나서 여행도 가고 운동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시간을 막 흘려보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나날이 구름처럼 지나갔다.


자궁경 시술은 난자 채취 시술보다 부담이 없었다. 

수면 마취이긴 했지만 한 번 해봤다고 여유가 좀 생긴 덕분이기도 했다. 

그 대신 난자 채취 시술 때보다 후유증은 심했다. 

시술 직후 한 사흘 동안 통증이 너무 심했다. 

난자 채취 시술 때에는 하루 정도만 심하게 아팠는데 그때의 기록을 갈아치우고도 남았다. 

지금껏 겪어본 어떤 통증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이 꽉 깨물고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참아내다가 결국 진통제를 먹고 버텼다.


그렇게 시험관 시술 없이 두 번째 달이 지나가고 세 번째 달이 되었다. 

병원 진료를 받고 나서 동결 배아를 이식하는 일정이 잡혔다. 

그 사이에 자궁 내막을 두껍게 하고 배아가 잘 착상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프로게스테론 주사와 약을 꾸준히 투여했다. 

제 배 주사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지만 꽤나 익숙해져서 부담스럽지는 않아 졌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배주사를 맞고, 질정을 넣었다. 

8시간마다 프로기노바정을 복용했고 아침 식사 후에는 소론도정을, 저녁 식사 후에는 소론도정과 베이비 아스피린정을 먹었다.


막상 이식하게 되었다고 하니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임신에 좋다는 음식이며 착상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다 먹었다. 

오메가 3, 비타민 C, 비타민 D, 엽산, 종합영양제, 소고기, 소고기 뭇국, 곰탕, 설렁탕, 갈비탕, 추어탕, 두부, 콩, 아보카도, 포도즙… 

이런 준비를 하는 것에 대해 D가 아무 관심도 안 가져주는 것 같아 서러운 마음을 쏟아낸 적도 있었다. 

뭐가 좋은지 나 혼자 찾아봐야 하고, 내가 사달라고 해야 그때서야 사주고, 나만 혼자 임신 준비하나 봐, 나 혼자 불안한가 봐, 자기는 관심도 없지! 

회사에 가지 않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배아 이식 당일에 나 혼자 택시 타고 갔다 오면 안 되냐고 한 마디 했다가 화가 잔뜩 난 나를 풀어주느라 애먹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배아 이식 날. 

난자 채취나 자궁경 시술 때와는 달리 수면 마취는 하지 않았다. 

이미 수정된 배아를 자궁 안으로 퐁 쏴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시술이었다. 

수술실 내 모니터에서 이식될 배아 사진도 봤다. 

모양이 아주 좋지는 않아도 이 정도면 중상급쯤 되는 거라고, 괜찮은 거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셔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프진 않지만 썩 유쾌하지 않은 느낌의 시술을 마친 후, 회복실에서 한 시간 정도 안정을 취했다. 

열흘 정도 후에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피검사 일정이 잡혔고, 수납을 마친 후에 D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배아의 배양 일수에 따라 착상 시기가 조금 달라진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 5일 배양한 배아를 이식했기 때문에 1-2일 내로 착상이 진행된다고 알고 있었다. 

이 시기에 착상이 잘 되느냐 아니냐가 관건이기 때문에 몸가짐이 아주 조심스러워지기는 했다. 

가벼운 산책 외에는 하지 말라고 주의를 받아서 할 수 있는 활동은 거의 없었다.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했던 것도 아닌데 하지 말라니까 괜히 더 운동이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생활은 크게 바뀌진 않았다. 주사도 약도 그대로였다. 

난자 채취할 때의 과정보다는 조금 수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에 복수 차는 느낌이 든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평소와 다른 변화는 있었다. 

이식 직후부터 5일 차까지는 간헐적으로 아랫배가 콕콕 쑤셨고, 생리통과 비슷한 경미한 통증도 있었다. 

6일 차부터 사흘 동안에는 약한 열감과 함께 몸살 기운이 느껴졌다. 

서너 시쯤 되면 잠이 쏟아졌다. 

수면양말을 챙겨 신고 이불 속에 들어가 한숨 자고 나야 조금 개운해졌다.


그러나 7일 차 아침부터 10일 차까지는 소량의 혈이 지속적으로 비쳤다. 

급 우울해졌다. 착상혈일 수도 있지만 시기적으로 봤을 때 생리혈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착상혈은 점점 양이 줄어든다는데 나의 경우는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정확한 건 피검사를 해봐야 알 테고 확률은 반반이지만 괜히 기분이 다운되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매일 체크하면서 분명한 생리혈로 바뀌지나 않을까 가슴 졸여야 했다.


그때 내가 받는 시험관 시술 과정이 어떤 면에서는 꽤 잔인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이미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세포 분열을 해서 자란 배아를, 나는 사진으로 똑똑히 봤다. 

내 몸 안에 들어온 그 배아가 자궁 내막에 제대로 착상을 하면 임신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임신이 아닌 것이다. 

이때 임신이 되지 않으면 유산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탈락이라고 표현하던데 나한테는 그게 그거였다. 

착상을 못할 경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아가 내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는 생각을 하니까 소름이 돋았다.


애초에 나에게는 동결 배아가 두 개 있었다. 

처음부터 하나만 이식하기로 했었지만, 막상 해동시켜 보니 둘 중 하나는 어차피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 측에서 그 배아는 이미 ‘폐기’했다고 했다.

배아가 탈락되어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 배아를 폐기한다... 이런 말들이 나만 끔찍하게 느껴지는 걸까.


언젠가 친구가 해준 얘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아는 어떤 사람은 오래전에 시험관 시술로 임신에 성공했었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났는데 최근에 남아있는 동결 배아를 마저 이식해 달라고 해서 둘째를 임신했다고 했다. 

첫째를 잘 낳았으니 시간을 두고 자연 임신을 더 시도해 볼 수도 있고, 

더 안 낳을 수도 있었는데 굳이 난임 병원에 가서 남은 동결 배아를 이식했던 이유는 그 또한 생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채취를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거고, 수정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좋은 거고, 

그래서 동결 배아를 많이 만들어 놓으면 만들어 놓을수록 좋은 거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꽤 충격을 받았다.


시험관 시술 과정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나처럼 아기를 갖고 싶지만 어떤 이유로 잘 생기지 않는 사람에게 시험관 시술이라는 의료 기술은 암흑 속에 뻗어 내린 한줄기 희망과 같지만, 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어떤 판단에 있어 윤리적으로 접근해야 할 부분이 많다.

수정 확률을 높이겠다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자와 난자를 인공수정해서도 안될 것이고, 

더 이상 필요 없다는 환자의 말 한마디만으로 남은 배아를 모두 폐기하는 일도 왠지 비윤리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만일 임신에 성공하고도 동결 배아가 남게 된다면, 친구가 얘기해 준 그분처럼 다시 병원에 찾아와서 모두 이식 이식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겠지만,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생명이기에 '폐기'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

이전 11화 넷 말고 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