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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 Jan 13. 2023

넷 말고 셋

난임 일기 11

나의 결혼식날 단상 앞에 선 아빠는 준비해 온 덕담이 끝나갈 즈음 

아이 셋을 낳아 잘 키우라는 사뭇 과한 약속을 내게서 받아내셨다. 

처음엔 셋도 아니고 넷을 말씀하셨다. 

아이고, 넷이라니. 아빠 딸이 나이가 좀 많아서 어려울 거예요. 

손주에 대한 아빠의 바람은 손이 닿지 않는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풍선 같은 거였다.


하객들이 와하하 웃는 사이 놀란 표정을 잽싸게 지우고 아빠 눈앞에 손가락 세 개를 펴보였다. 

저 멀리 둥둥 떠있다 줄이라도 풀려 날아갈 뻔한 꿈을, 

그나마 손이 닿을 높이의 가지에 고이 다시 묶어드린 셈. 

알겠어, 셋은 넷보단 가능성이 좀 더 있지. 내가 힘닿는 데까지 낳아볼게. 

그때까지 건강히 기다려주세요.


사실 결혼식 단상에서의 아빠와의 극적 타협이 아니었어도 

나는 오래전부터 아이를 낳게 되면 최소 셋은 낳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혼자가 아니라 동생과 함께 둘이었기 때문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둘도 이렇게 좋은데 셋이면 더 좋지 않았을까. 

나와 두 살 터울 여동생의 성격이 서로 많이 다르니 

우리 자매를 반반 섞어놓은 다른 형제—남자든 여자든—가 한 명 더 있어 

아름다운(?) 균형을 만들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넷이든 다섯이든 맘 같아선 많을수록 좋겠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했을 때 나름 타협한 결과다.



몇 명이 목표가 됐든 간에 아이를 낳겠다는 마음 자체가 언제부터 확고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건 알지만 

세트처럼 묶여있는 결혼 플러스 출산 이콜 행복이라는 수상한 공식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건 아마도 우리 엄마 때문인 것 같다. 

엄마는 자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행복했을 분이니까.


물론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이른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되어 

청춘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신 걸 후회하셨던 시기가 엄마에게도 분명 있었다. 

공부하고 여행 다니고 여러 번의 연애를 거치는 우리 두 딸을 보면서 

엄마도 좀 더 늦게 결혼할 걸, 하며 아쉬워하셨다. 

엄마는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없었고, 두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느라 

정작 하고 싶은 일들은 포기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두 딸내미들을 다 키워 시집보내 놓고도 아직 오십 대인 엄마는, 

이제는 나를 앉혀두고 그때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신다. 

다시 돌아보니 일찍 결혼해서 우리들을 일찍 낳길 참 잘한 거 같다고. 

물론 키울 때는 고생이었지만 다 키워놓고 보니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하나 더 낳을 걸 그랬다고.


안 그래도 엄마에게 언젠가 동생 밑으로 더 낳고 싶지 않았는지 여쭤본 적이 있다. 

엄마는 딸은 둘이 있으니 아들을 하나 더 바라셨다고 했다. 

그럼에도 더 아이를 낳지 않은 건 엄마의 선택이 아니었다. 

아빠가 예비군 훈련 갔다가 묶고(?) 오셨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엄마와 상의 없이.


그때 아빠는 자식은 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그때 마침 수술을 하면 나라에서 돈도 준다고 하니 딱히 안 할 이유가 없어서 그런 결정을 하신 것 같다.

결정적으로 아빠는 아들을 싫어했다. 

첫째인 나를 낳고 나서 아이를 더 낳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으나 

할머니의 설득으로 동생을 낳은 거라고 했다. 

아빠 입장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한테 얘기도 하지 않고 

혼자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한 건 아빠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네 남편이 그렇게 몰래 묶고 온다고 생각해 봐. 요즘 시대였으면 이혼 감이지, 이혼 감. 

엄마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시는 모양이었다.


딸 둘이면 충분하다고 여기고 엄마 몰래 묶어 버렸던 아빠가 

나 보고는 넷은 낳아야 한다고 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만 봐도 이렇게 다른데 셋째 아이는 얼마나 새로울 것이며, 넷째 아이는 또 얼마나 예측 불가할까. 

아이를 돌보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돈처럼 현실적인 문제만 빼고 보면, 

다음 아이가 궁금해서라도 힘이 닿는 한(?) 계속 낳고 싶어질 것 같다. 

물론, 한 아이라도 낳아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볼 문제겠지만. 


나와 D는 앞으로 어떤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될까. 

그 아이들에게 어떤 삶을 선물해줄 수 있을까. 

기대가 되기도 하고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하지만 아직은 기대가 조금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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