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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 Jan 13. 2023

아기집이 작네요

난임 일기 14

임신 6주차, 하혈과 복통, 작은 아기집을 보다


-


임신 6주 차에 막 접어든 날이었다.

며칠 동안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이 계속 오곤 했는데 그날따라 영상에 가깝게 올라 모처럼 따뜻했다.

산책도 할 겸 D와 집에서부터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기로 했다.

천천히 걸어가면 30분이 좀 넘게 걸리는 거리.


임신 초기에도 그 정도 산책은 권장하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으나 곧 아랫배가 쿡쿡 쑤시기 시작했다.

원래 배 콕콕 느낌은 거의 매일 있었는데 이번엔 조금 더 강한 '쿡쿡'이었다.

생리통과 아주 비슷한 통증이었다.

한동안 너무 집에만 있다가 움직여서 그런가, 생각하며 허리를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뒹굴대고 있다가 질정을 넣으려고 화장실에 갔는데 패드에 피가 묻어있었다.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유산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사촌 언니가 첫 초음파를 보러 가기 며칠 전인 5주 차에 하혈과 함께 유산했다고 했던 말도 생각났다.

나한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마침 다음 날 바로 진료가 있었다.

늘 그랬듯 초음파를 먼저 봤는데 초음파 선생님이 "출혈 있었어요?"라고 먼저 물어보셨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렇다고 말씀드렸다.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초음파 검사가 진행되었다.

아기집은 커졌네요,라는 말 외에 별 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그 한 마디 말로도 왠지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마주한 담당 선생님의 표정은 한눈에 봐도 좋지 않아 보였다.

그동안 불편한 건 없었느냐고 물으시기에, 오늘까지 이틀 동안 소량이지만 출혈이 있었고 생리통처럼 복통도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초음파 결과를 보니까 진행상황이 좋지는 않네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식간에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아기집의 크기는 5주 차 때 0.45cm, 6주 차인 이번에는 0.93cm.

지난번보다 커지긴 커졌지만 주차수에 비해 아기집이 작다고, 일주일 사이에 많이 자라 있어야 하는데 그다지 자라지 않았다고, 지금 주차수에는 아기집 안에 보이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직 보이는 게 없다고도 하셨다.


같이 진료실에 들어간 D도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복용하고 있는 아스피린은 중단하고 주사실에서 프로게스테론 엉덩이 주사를 맞고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 거라고, 자궁에 혈류가 잘 돌 수 있도록 물을 많이 마시고 안정을 취하라고 몇 번을 거듭해 당부하셨다.

일주일 후에 다시 보자고 하셨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진료실을 나왔다.

원내 약국에서 처방받은 주사약을 들고 주사실에 갔는데 눈물이 터졌다.

간호사가 주사를 준비해서 들어오기 전에 얼른 추스르려고 했지만 성공하진 못한 것 같았다.


엉덩이 주사를 맞고 착잡한 마음으로 병원 1층에 있는 카페에 갔다.

D와 마주 앉아 온라인에서 나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 사람의 글을 찾아 읽었다.

'아기집이 작아요', '아기집 커지는 방법', '아기집 크기', '임신 초기 피 비침', '임신 초기 복통'... 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그중에서도 '고사난자' 증상에 나의 증상이 가장 가까워 보였다.

자궁 내에 착상은 되었지만 어떤 이유로 배아가 자라지 않는 현상.

증상이 없기도 하지만 질 출혈과 복통이 동반되면 이미 유산이 진행된 거라고 했다.


그런 부정적인 글들 사이에서 종종 '6주 차에 아기집만 보이고 심장 소리는 못 듣고 와서 걱정했는데 7주 차에 다시 가보니 심장 소리 들었어요'라고 하는 희망의 단비 같은 글을 찾아내면 잠시나마 안심이 되었다가도, 그런 '성공담'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다시 마음은 움츠러들곤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하루종일 출혈량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작은 패드로는 감당이 안되어 큰 패드로 바꿀 정도로 되려 점점 늘어났다.

아기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라면 이렇게까지 출혈이 있을 수 없다고,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D에게 말했다.

일주일 후에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하기 전까지는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튼튼이(얼마 전에 지은 태명이었다)를 잃을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도 충분히 생각해놔야 조금이라도 충격을 덜 받을 것 같았다.


불과 얼마 전에 첫 동결배아 이식으로 임신에 성공하다,라는 글을 썼었다.

후회됐다. 심장 소리를 확실히 들을 때까지 조금 더 참을 걸.

한 번의 이식으로 한 번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착각했다.

자만이었다. 임밍아웃은 최대한 늦게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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