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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 Jan 14. 2023

튼튼아 안녕, 우리 다시 만나

난임 일기 15

6주 5일 차, 불완전 자연유산 판정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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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초음파를 보고 돌아온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혈은 계속되었고 어느 날 새벽에는 꽤나 큰 덩어리혈도 봤었기에 희망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게 많은 피가 나왔는데 아기집이 그 자리에 온전히 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하혈을 심하게 한 날 이후로는 기분 탓인지 가슴 통증도 배가 당기는 느낌도 사라졌다. 

튼튼이가 더 이상 내 안에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떻게 다음 병원 진료가 있는 날까지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하나. 

그냥 중간에 한 번 더 초음파를 보고 싶다고 하고 병원에 가 볼까. 

오라는 날짜에 오면 되지 극성이네,라고 생각하려나. 

그래도 하혈을 많이 한 날 이후로는 불안해서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힘들어서 왔다고 하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불안함 속에서 일주일을 덜덜 떨며 지낼 바에는 중간 확인이라도 하고 오자는 생각에 결국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을 다시 찾았다. 

담당 선생님은 오후 진료만 있으셔서 종종 대신 진료받았던 다른 선생님 앞으로 진료 대기를 걸었다.


진료에 앞서 초음파 검사를 먼저 받으러 갔는데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대기가 꽤 많아 한참을 기다렸다. 

그중에서 정밀 초음파를 보러 온 사람들도 일부 호명되었고 나는 부러운 눈길로 그들의 모습을 좇았다. 

정밀 초음파를 볼 정도면 20주 차는 됐다는 거니까. 

대기실에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 앉아 멍하니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비관적인 생각 말고 딴생각을 하려 애썼다. 

누구는 난자 채취를 위해, 누구는 배아 이식을 위해 각기 다른 과정을 통과하고 있겠지만 결국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는 사람들. 

당신의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당신의 마음이겠지. 

우리 모두 결국 한 마음이겠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내 순서가 되어 초음파실에 들어갔다. 

임신 확인 후 첫 초음파를 봤던 열흘 전과 비슷한 기분이었으나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긴장감만 있고 설렘이 없다는 점이었다. 

초음파 검사가 시작되자마자 선생님이 "출혈... 있으셨어요?"라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나는 그렇다고 했고 양이 많았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와 "네... 많았어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니터에 띄워진 영상에서 지난주에 봤던 동그랗고 까만 아기집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아기집이 안 보이는 거죠, 선생님?” 내 물음에 선생님은 조용히 "네..."라고 대답하셨다.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검사실에서 나오며 인사를 하는데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나와 간신히 참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담당 선생님을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기로 하고 간호사님께 말씀드려 오전 진료를 오후 진료로 바꿨다. 

진료 시작까지 세 시간 남짓 남아있었으나 혹시 몰라 노트북을 챙겨 온지라 그 정도는 카페에서 기다릴 수 있었다. 

세 시간씩이나 앉아 있는 게 힘들다고 한들 튼튼이가 며칠 전에 이미 떠나간 몸에 뭔가 더 잘못될 일은 없으니까.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난 후, 담당 선생님을 뵈었다. 

이변은 없었다.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며, 유산이라고 하셨다. 

나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설명을 들었다. 

정확히는 불완전 자연유산이라고.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난자 채취할 때도 얘기했었지만 난자질이 좋지 않았다고, 임신 초기의 유산은 50 ~ 60%가 염색체 이상 때문이라고도 하셨다. 

더 남아 있는 배아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두 달 정도 후에 진행할 수 있다고, 지금은 자궁 내벽이 많이 얇아져있고 피고임도 보이니 우선 2주쯤 뒤에 다시 병원에 오라고 하셨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충격이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유산. 내가 정말 유산을 했구나.


그다음 며칠 동안 거의 누워 지냈다. 

다음 재임신을 위해 몸조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입맛은 없었지만 D에게 미역을 사다 달라고 해서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매끼 열심히 챙겨 먹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출혈과 복통은 매 순간 내가 얼마 전에 유산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눈물이 터져 나왔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다가 눈물을 뚝, 넷플릭스를 보다가 눈물을 뚝, 베란다에서 노을을 바라보다가 눈물을 뚝뚝 흘려대기 일쑤였다.


우울감과 함께 자책과 불안감도 찾아왔다. 

5주 차에 병원 주차장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때 충격을 받은 게 문제가 된 게 아닐까. 

6주 차에 D와 한 번 대판 싸웠던 적이 있는데 그때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도 마음에 걸린다. 

평소에 내가 운동을 너무 안 하기도 했지. 

아니야,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많고 자궁내막증이 심한 게 가장 큰 문제일지도. 

다음에 또 잘못되면 어떡하지. 

휴직하는 일 년 안에 성공할 수 있을까. 

태명을 늦게 지을 걸 그랬어. 실컷 불러주지도 못하고 이렇게 일찍 떠나보낼 줄 알았더라면.


'임신 초기의 유산은 엄마 탓이 아니에요.'

'12주 이전에 유산될 경우에는 염색체 이상일 확률이 높아요.'

'원래부터 약한 아기였기 때문에 버티지 못한 거예요.'


위로와 응원이 담긴 수많은 글들을 찾아 읽으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던 건 '건강한 아기가 다시 찾아오려고 잠시 떠난 거예요'라는 말이었다. 

그래. 건강한 아기가 찾아올 수 있도록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지자. 

튼튼아 안녕, 우리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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