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나 Jul 11. 2021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짧게 씁니다

듣는 것은 고되고, 말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시골에 온 후로 내내 혼자 놀다가 처음, 자발적으로 낯선 사람들이 있는 모임을 찾았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명목 하에 다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이 터에서 살림을 꾸려온 사람들이어서 그들끼리는 서로를 잘 아는 듯 보였다. 물론 그중엔 나와 엇비슷하게 아직 이 지역에 정착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긴 했다. 나는 시골생활이 조금은 지루해지려던 차여서, 청년들을 좀 만나려나 하고 내심 기대하고 나갔으나 젊은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모두 청년이었다. 다 삶이 어색하리만치 처음인 듯 한. 그래서 대개는 말이 장황하고 길었다. 인내심이 짧은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오래 듣질 못하고 몰래 마스크 밑으로 하품을 자주 했다. 요지를 벗어난 말과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는 건 90년대생의 필수 덕목이긴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지겨워 일부러 멀리했으면서도 왜 자발적으로 그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도 모든 언어가 견딜만하였다. 견딘다는 말이 보잘것없도록 조금 더 듣고 싶은 이야기도 더러 있었다. 다 각자의 꾸밈이었으므로 나는 그 다채로움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아보려 해 보았다. 돌아보니 나는 어느샌가 관찰자의 느낌으로 그 모임을 대하고 있었나 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세 시간 정도 만나는 모임이었지만, 많은 말을 담고 돌아온 날에는 예상보다 훨씬 더 피곤했다. 내가 이렇게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이었나 싶기도 했다. 혼자 지내는 시골생활은 불필요한 말을 듣지도, 하지도 않게끔 했지만, 귀 기울이는 법을 잊게 한 것 같았다. 한동안 너무 내 안의 소리만 들었던 탓인가. 말하는 것도 서툴러진 것 같았다. 모임에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내뱉는 것은 어쩐지 피곤하게 느껴졌다. 말은 쌓였고, 생각은 정리되기보단 부유하는 쪽에 가까웠다. 사람을 만나는 일, 그 많은 이야기를 두 귀와 정성 어린 고갯짓으로 견뎌내는 일이 생각보다 더 고됐다. 모임 시간에 집중력을 잃어 말소리로부터 도망가고 싶을 때 나는 눈을 내리깔고 소리 없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환기했다. 그 모든 처음인 삶의 이야기가 지루하면서도 한편으론 약간은 궁금한 것,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막상 다 하기는 싫어서 그저 짧게 쓰고 싶은 것, 그 오묘한 기분들을 미처 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내가 차마 시인이 되지 못한 이유라 생각하며, 골라 쓸 수 있는 말을 조금씩 늘려가 보겠다 다짐하기도 하면서.


여섯 번째 모임에서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정리하다 아까 먹다 남긴 쿠키를 발견했다. 남은 쿠키가 아까워 궁상맞은 느낌으로 입에 대고 탈탈 흔들다 보니 부스러기가 죄다 가슴팍으로 떨어졌다. 쿠키 조각을 주으러 가슴을 덮고 있던 옷가지를 들추니 점점의 쿠키 조각과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내 머리칼이 눈에 띈다. 마치 내뱉지 못하고 숨겨둔 길고 긴 말과 같이 보였다. 갑자기 웅얼웅얼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모든 이물을 걷어내고도 마지막까지 거슬리는 것은 검고 끝이 노랑노랑한 나의 머리카락이었다. 손가락으로 집게를 만들어 주욱 빼자 뭔가 속이 시원했다.





이제 이번 모임을 끝으로 비슷한 모임은 앞으로는 더 나가지 않아야겠다 생각했다. 말을, 그것이 설령 길을 잃은 말일지라도, 하고 싶은 대로 전부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이제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더욱 편해진 내가 그다지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을수록 되려 짧게 쓰고 싶은 쪽이다. 지금은 더욱 그런 때이다. 그러나 결국은 나도, 하고 싶은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점철되길 바라며 자주 풀어쓰는 바람에 장황해진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겠지. 이제는 아예 그냥 그러려니 하기도 한다. 그래도 늘 길게 생각하고 짧게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아무래도 다듬어지지 않는 형편없는 말과 글일지라도, 밤 그늘로 늘어진 내가 기른 화초의 그 그림자 같은 글이라도 써보자 마음 먹는다. 빛도 거름도 없지만 대충 준 물로 드문드문 시들고 가끔 아름다운, 그마저도 실물의 생기는 담아낼 재량이 없으니 그저 그림자 같은 그런 글. 윽. 지금도 습관처럼 또 풀어쓰는 것을 보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부지런히 가야겠다, 좀 더 짧게 쓰기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