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5개월의 시골생활을 정리하며
그리 오래는 아니지만 다만 짧지도 않게 살다 보니 아무리 반복해도 좀처럼 쉬워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제목을 적은 뒤 첫 문장을 시작하는 일이 그 중 하나다. 무엇을 쓸까 골랐다면 제목은 의외로 쉽게 쓰인다. 그러고는 그 제목 아래에서 커서를 한참 혼자 깜박거리게 둔다. 종종 취미로 글을 쓰면서도 좀처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매번 모르겠다. 마침표를 찍는 일보다 첫 문장을 고르는 일이 더 어렵고 두려운 것은 나에게만 그런 것은 아닐 거라는 게 자신에게 하는 나름의 격려다. 그럼 아주 약간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글을 시작할 수 있다. 오늘은 간신히 ‘그리’로 시작했다.
사실 시작하는 일이 힘겨운 건 문장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우리 조카는 아빠와 함께 첫 등교를 하더니 이튿날 혼자 걷고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찾아가느라 등교하는 내내 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도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며 몇 번이고 학교에 가기 싫은 티를 냈지만 엄살은 아니었다. 그 증상들이 낯선 환경에 놓인 자신을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데에서 발현된 것이라는 걸, 먼저 겪어본 자로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다만 응원해주기만 했다. “힘내! 학교에 잘 도착해서 양호실에 가서 배가 아프다고 얘기하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역시나 무사했다.
나도 처음 지하철을 혼자 타던 날,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가운데 까만 줄이 그어진 표를 자그마한 입구에 넣고 철 막대기가 돌아가는 개찰구를 간신히 통과하고는, 반대쪽에서 나온 표를 잃어버릴 새라 꼭 쥔 채 노선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해가면서 말이다. 무언가 시작하기 두렵거나 멈칫하게 될 때면 지하철 표를 끊으며 달달 떨리던 목소리를 상기한다. 미숙했던 일이 이처럼 아무것도 아니게 익숙해지기까지 숱한 반복과 어느 정도의 좌절이 있었음을 기억하면서 어린 내가 다 큰 나에게 작은 용기가 되어준다.
돈을 많이 벌어 몇 년 뒤엔 이 폐가를 꼭 사라던 집주인은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고쳐 놓은 집이 이제 꽤 쓸만해져서라 생각했다. 나는 서울을 떠날 때의 마음으로 과감히 시골을 떠나기로 했다. 오래 고민하는 게 결코 신중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음을 알기에 결정은 빠르게 내려졌다. 건물주의 말 한마디에 이삿짐을 꾸리는 것이 세입자의 운명인지라 언제나처럼 덤덤하긴 했지만, 막상 말도 안 되는 고생 해가며 여기저기 직접 손 본 시골집을 내가 없는 공간으로 남겨둔다는 건 여느 이사와는 아예 다르게 느껴졌다. 제법 마음이 헛헛해서 방에 덩그러니 앉아 오래도록 집 안 구석구석을 눈에 담았다. 그 사이 먼 데서 동터오고, 방으로 햇빛이 든다. 이 해는 아주 오래전에 태어나 돌고 있는 어제의 그것과 똑같은 것이지만 이 빛은 그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파생된 것이겠지. 반복 속에서 신선함이 퇴색할 때 그게 고작 인지의 차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사색과 노련함이 필요하다. 나는 2년 전 봄마루에 어질러젔던 그 빛을 떠올렸다. (나의 글 ’ 끊어진 철길 위에 누워서’에 등장하는 그 햇살.) 나의 불안을 잠식시켜준 그 햇살이 머무른 유난스럽던 그 해 봄은, 돌아오는 계절 속에서 조금씩 특별함을 잃어갔다. 너무나 새로워서 나를 매일 치유로 채워주었던 시골에서의 일상이 어느새 아쉬운 줄 모르고 쉬이 나를 지나쳐 가도록 나는 얼마나 오래 내버려 두었을까. 떠나려고 하니 이제야 허둥지둥 다시 눈에 담으려는 나는 얼마나 간사한 사람인가. 부질없는 마음이라 잡히지도 않는 햇살을 향해 공연히 손을 쭈욱 뻗어 보았다. 새벽에 내린 서리는 해를 받고 처마 아래로 똑, 똑 떨어졌고 나는 그저 감사했다.
이 집에서 2년 5개월 홀로 긴 시간들을 보내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나.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한 정성스러운 밥상을 지겹게도 매일 차려내고, 이따금 눈사람을 만들었다. 마냥 흩어져버릴 말들을 차곡차곡 개켜 몇 개의 글로 넣어두기도 했고, 긴 장마를 견디며 빗줄기 사이, 사이에서 자주 취해있기도 했다. 뭐든 꾸준히 하는 게 힘든 내가 새벽같이 일어나 자꾸만 잊어버리는 언어들을 외고, 또 외웠다. 빠르게 가는 시간을 늦추고 싶어 일부러 재미없는 책을 읽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소소한 하루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깊게 사유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갖게 했다. 이 시간의 조각, 조각들이 얼마간 나를 한참 생기 있게 살게 할 것이다. 그게 내가 지금 떠나가며 새 문장을 쓰기에 앞서 두렵기보단 설렐 수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5평 남짓한 서울의 좁은 방으로 돌아가면서도,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며 숱한 거절의 메시지를 받게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이전보다 내 삶이 더 궁금해진 것은 전부 다 이 집에서 보낸 2년 5개월의 시간 덕분이다. 발음하면 입꼬리가 올라가는 이름을 가진 전라북도 어느 마을에 사는 어제의 내가, 고된 서울살이를 견뎌낼 내일의 나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지하철을 처음 타던 소녀의 목소리를 떠올리듯 나는 필요할 때마다 꿈같았던 이 마을에서의 이야기를 오래 두고 꺼내 먹을 것이다.
길고도 짧았던 나의 유배 생활은 이제 끝이 난다. 걱정했던 것처럼 헝클어진 상투에 사약 같은 걸 마시며 쓰러져가는 고전적인 최후의 모습은 다행히 아니다. 떠나올 때 마음먹은 대로 나는 나를 구해주었다. 나를 떠난 많은 것과 잘 이별했고, 제대로 앓은 적도 없이 보다 건강해졌으며,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비로소 내가 되었다. 만약 내가 자연의 일부라면, 나는 마침내 폭포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낙차가 큰 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처럼 빠르게 흘러내린 시간들은 그 아래에서 보다 많은 물방울을, 보다 큰 물결을 일으키며 깊은 물속까지 자정할 것이다. 바라본다면, 멀리서는 장관이겠고 가까이에선 자욱한 물안개가 말도 못하게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 나는 결국 그런 폭포가 된 걸지도.
아무리 반복해도 좀처럼 쉬워지지 않는다지만, 나는 다시 씩씩하게 첫 문장을 시작한다. 오늘 내가 보낸 유배지를 뒤로 하며, 그 때와 같은 문장을 쓰기로 한다.
그렇게 나는 떠나왔다. 아니,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