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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an 31. 2024

장갑 한 짝

 눈이 내렸다. 지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안에는 기모티를 받쳐 입고, 도톰한 옷을 꺼내 입었다. 패딩으로 무장한 뒤, 목도리와 장갑까지 챙겼다. 

 밖을 나서자 굳은 얼굴의 사람들이 각자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걸음을 재촉한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삶을 향한 행군을 시작했다. 지하철 안은 무표정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겨울의 삭막한 분위기가 밖에서 안까지 따라온 것 같았다. 출근길 아침 지하철에서 낯선 이와 대화할 일은 없지만 서로에게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는 무관심이 왠지 갑갑하게 느껴졌다. 겨울이 유난히 시리게 느껴진다.


 지하철에서 내려 인파 속에서 출구를 찾았다. 북적이며 가는데 앞서 걷던 노신사의 코트 주머니에서 장갑이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짝이 툭 떨어졌다. 쏟아지는 구둣발을 피해 냉큼 주워 그에게 달려갔다. 장갑을 건네자 그는 멋쩍지만 반갑게 웃으며 연신 감사인사를 해왔다. 나도 고개를 따라 숙이고 헤어졌다.


 그의 미소를 보고 나니 내 장갑을 주워주었던 인연들이 떠올랐다. 나를 뒤 쫓아와 떨어뜨린 장갑을 돌려주던 어떤 여자의 상기된 뺨, 조심스레 어깨를 두드려 말없이 내 장갑을 건네던 어떤 남자의 두툼한 손. 까맣게 잊고 지내던 기억이 데자뷔로 겹쳐졌다.

 사람 사이의 선의는 이런 식으로 새겨지나 보다. 누군가는 귀찮잖아, 나한테 이득이 있어?라고 말하지만, 나를 도와준 사람의 마음은 어느새 내가 남을 돕게 하는 마음으로 자라났다. 

 세상이 추위로 얼어붙어도 사람은 따듯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서로를 구하면 이 겨울도 조금은 따스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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