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크 외곽 도로를 달린다. 다링튼Darlington에서 A68국도에 차를 올린다. 뉴캐슬 근처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을 지난다. 고대 로마인들이 브리타니아(오늘날 영국의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칭하던 당시의 명칭) 최북단에 만든 방벽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대 로마 유적지라는 유혹을 떨치고 에딘버러를 향해 곧장 달린다. 보름이 넘는 긴 여행이지만, 스코틀랜드를 훑기에는 그래도 짧다. 그림같은 골짜기와 하늘과 맞닿은 낮은 구릉이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노썸버랜드Northumberland 국립공원이 나타난다. 낯설고 경이로운 풍광은 국립공원 너머까지 이어진다.
어느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경계 짓는 곳까지 달려왔다. BORDER VIEWPOINT, 고동색 이정표를 꽉 채운 큼직한 폰트가 인상적이다. 스코틀랜드 국기 세 개가 걸린 길다란 깃대 옆에 차를 세운다. 반도의 국민인 우리에게 국경은 거대한 벽이지만, 연방의 국경은 딱히 경계라고 할 것도 없다. 무심하게 만든 비석 하나가 국경을 가리킬 뿐이다. 국경에 대한 엄숙한 정서 또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준하는 이미 앞서 있다. Welcome to Scotland가 적힌 커다란 보드판 아래에서 사진 찍을 채비를 마쳤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작고 오래된 어촌마을, 버윅 업온 트위드Berwich-upon-Tweed를 들른다. 트위드Tweed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가르며 바다로 흘러가는 강 이름이다. 문명은 강을 발원지로 삼는 법, 버윅은 중세 시대부터 존재했던 마을이다. 당시는 사우스 버윅South Birwick으로 불렸다. 마을은 제법 관광지다운 면모를 갖췄다. 그러나 바쁜 우리는 식사만 간단히 하고 오래된 마을을 벗어난다.
2.
북동 해안을 따라 둔바Dunbar를 거쳐 1시간여를 더 달린다. 드디어 에딘버러를 알리는 이정표를 발견한다. 우리는 도심으로 들어가는 대신, 외곽도로를 타고 숙소가 있는 북쪽 해안가로 곧장 내달린다. 멀리서도 고색창연한 오래된 도시의 멋을 느낀다. 런던을 처음 방문하던 20살의 내가 떠오른다. 런던의 첫인상도 고색창연이었다. 하지만 지금 저 멀리 보이는 에딘버러는 그때의 런던보다 열 배는 더 그렇다. 낯설고 강렬하다.
천천히 바다 내음이 잔뜩 밴 골목길을 돈다. 애보츠Abbots 하우스 간판을 어렵게 발견한다. 하마터면 숙소에 다와서 길을 잃을 뻔했다. 애보츠 하우스는 영국에서 흔한 조지아 시대 고급 주택을 호텔로 이름만 바꿔 달았다. 리모델링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주인 아주머니를 따라 좁고 미로같은 복도를 한참 들어간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떠오르는 그런 복도다. 방에는 트윈 침대 한 개와 싱글 침대 세 개가 놓여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얀 기둥 두 개는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오래된 주택은 하중이 문제다. 반지하라 환기도 걱정된다. 하지만 이런 불평은 8월의 에딘버러에서는 가당치 않다.
3.
8월 에딘버러는 곧 프린지Fringe다. 전세계 1,000여개가 넘는 공연단이 에딘버러로 몰려든다. 그리고 프린지가 열리는 3주 동안, 에딘버러 전역은 공연장으로 바뀐다. 극장, 거리, 공터 할 것없이 공연자와 관객이 뒤범벅되는 세계 최대 공연 축제가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우리가 굳이 8월에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매력적인 것들이 그러하듯 프린지가 탄생한 이야기도 예사롭지 않다.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이 1947년에 개최된다. 정식 초청을 받지 못한 몇몇 단체들이 축제 주변부fringe에서 공연을 시작한다. 참신한 형식과 독특한 내용을 가진 주변부 공연에 관객과 언론이 주목한다. 주변부 공연의 지위가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주변부가 중심부를 전복시킨다. 기획이나 체계, 조직도 없던 프린지가 에딘버러를 대표하는 페스티벌이 된 것이다. 이후, 프린지 페스티벌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다. 우리에겐 <난타>가 프린지에서 성공을 거두며 유명해졌다. 1999년 여기서 최고평점을 받으며 전세계로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프린지 페스티벌이 개막하는 하루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