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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Karl Oct 30. 2022

2. 칼튼 힐 산책

1.

숙소에 짐만 풀고 시내 구경을 나선다. 강렬하면서 낯선 에딘버러가 너무 궁금하다. 첫 목적지는 칼튼 힐Caltom Hill로 정했다. 에딘버러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곳을 향해 걸음을 서두른다. 골목을 나와 큰 길을 걷다가 도로를 건넌다. 고색창연한 도시에 유독 모던을 강조하는 반짝이는 유리 건물을 지난다. 휘트니스 센터와 풀장, 호텔과 극장, 각종 음식점과 주차장을 갖춘 멀티 복합관이다. 입구를 가린 엄마 기린과 새끼 기린 청동상이 조금 생뚱맞다. 


칼튼 힐을 오른다. 작고 편안한 계단이 마음에 든다. 커플 배낭을 매고 앞서 걷고 있는 노부부가 정겹다. 노부부의 짧은 보폭에 맞춰 천천히 올랐는데도 금방 정상이다. 칼튼 힐은 100미터가 조금 넘는 그야말로 야트막한 언덕이다. 그럼에도 에딘버러 구도심에서 가장 높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모두 발 아래 그려진다.  


17세기까지 칼튼Calton은 칼드툰Caldtoun으로 불렸다. 영어식 표현으로 칼드툰은 Cold Town이다. 예부터 언덕에 불던 칼바람은 매서웠던 모양이다. 칼튼 힐은 3억4천만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겨났다. 중세 시대에는 페스티벌이나 토너먼트 경기장으로 잠깐 사용되었다는 기록 외에 별다른 용도가 밝혀진 것은 없다. 


언덕 가장자리 길을 걷는다. 길 Hume Walk(흄의 산책로)라는 이름을 가졌다.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자주 산책하며 사색하던 길이다. 예나 지금이나 셀럽과 핫플레이스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 모양이다. 당시 에딘버러 유명인사였던 흄 덕분에 칼튼 힐은 새롭게 조명받는다. 많은 시민들이 건강과 휴식을 위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칼튼이란 이름을 얻은 것도 18세기 후반이다.  


산책로 근처에서 기념탑을 발견한다. 그리스 풍이다. 듀칼스 스튜어트Dugald Stewart(1753~1828)라는 작가 겸 철학자를 기념하고 있다. 안내문에서 확인한 그는 에딘버러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계몽주의를 대중화시켰으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발전시킨 another key player라며 추켜 세워 놓았다. 18세기 중반은 예술, 문화, 과학 전반에서 스코틀랜드가 크게 진보하던 시기였다. 당시를 흔히 스코틀랜드 계몽주의Scottish Enlightenment 시대라고 부른다.


가까운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탁 트인 멋진 도시 풍경에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발 아래 스코틀랜드 정부청사를 시작으로 지도에서 랜드마크를 하나씩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2.

다시 흄의 산책길을 걷는다. 그리스 양식 기념탑이 또 나타난다. 수학자 존 플레이페어John Playfair를 기리는 탑이다. 앞서 만난 또다른 키 플레이어 기념탑과 작가가 같다. 작가는 수학자의 조카인 윌리엄 헨리 플레이페어William Henry Playfair다. 삼촌을 기념하는 조카가 만든 탑은 가볍게 지난다. 동시에 저 멀리 언덕 정상에서 미완의 건축물 하나가 대단한 존재감을 뿜는 모습을 본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닮았다. 


미완으로 남은 건축물은 내셔널 모뉴먼트National Mounment다. 나폴레옹 전쟁(1803~15)에서 전사한 스코틀랜드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파사드만 세우고 본 건축물 공사는 시작도 못했다. 파사드 사이사이 여백을 채운 푸른 하늘이 황량한 정서를 보정해 준다. 높은 기단 위를 오른다. 기초석 하나 무게만 6톤이 넘는다. 기단을 오르는 다른 길은 없다. 아내와 아이들을 밀치고 당긴다. 


거대한 파사드 기둥 아래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예술이다. 땅과 하늘이 각각 절반의 지분을 나눠 가졌다. 구름은 원근법으로 그려진 그림처럼 저 멀리서 여기까지 층층이 쌓여 있다. 초현실주의 그림에서 볼 법한 비현실적인 이미지다.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에딘버러 북쪽 저 너머 포스Forth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점점 더 황홀경에 빠져든다. 


3.

18세기 후반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는 놀라운 지적 성취와 더불어 아름다운 건축물로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이런 평판에 도취된 에딘버러는 그리스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건축물을 계속해서 짓는다. 엄청난 재정이 투입되었고, 그 비용은 막대한 부담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급기야 1829년, 에딘버러는 기금이 완전히 고갈되어 도시의 모든 건축 사업이 중단되는 사태를 불러온다. 황량한 내셔널 모뉴먼트는 바로 그 증거다. 


당시 에딘버러는 ‘북쪽의 아테네The Athens of the North’로 불리길 원했다고 한다. 자존심 강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어떤 연유로 이런 망상에 사로잡혔는지는 모르겠다. 졸부들의 권위나 권력에 대한 그릇된 미망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하다. 얼마 전부터 ‘자고 일어나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들린다. 여러 방면에서 세계의 찬사가 우리에게 쏟아지는 있다. 200년 전, 문명사적 중흥기를 맞았던 스코틀랜드를 한번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내 눈에 내셔널 모뉴먼트는 허영을 상징한다. 엄청난 규모와 신고전주의 스타일은 모두 그것을 위한 재료들이다. 또 하나, 건축가가 또 플레이페어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건축가였는지 모르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다. 막대한 비용이 투여되는 국책 사업을 한사람이 이렇게 독식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온 나라가 구름 위를 둥둥 떠다녔다는 얘기다.  


4.

칼튼 힐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은 넬슨 기념탑이다. 30미터가 넘는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 한가운데 탑 꼭대기를 지키고 있는 넬슨 제독을 여기서도 만날 줄은 몰랐다. 특이하게도 여기 꼭대기에는 넬슨 제독이 아닌 거대한 구가 매달려 있다. 일명 타임 볼time-ball로 불리는 거대한 구는 전자 시계 장치가 나오기 전까지 항해를 위한 필수 장치였다고 한다. 


돛대처럼 생긴 하얀 기둥에 매달린 까만 타임볼은 매일 오후 1시 정각에 아래로 떨어진다. 리스Leith 항구에 정박한 배들은 그것을 보고 항해에 쓰는 정밀 시계인 Chronometer를 새로 세팅한다. 당시에는 모든 배들이 공유하는 표준 시간이 그렇게 맞춰졌다. 이런 작동원리는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의 그것과도 동일한 매커니즘이다. 


넬슨 기념탑 타임볼은 150년 넘게 작동하다가 2007년 폭풍우에 작동을 멈췄다. 다시 가동된 것은 2009년의 일이다. 지금은 필요도 없고 역할도 없는 타임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세상에는 쓸모보다 상징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것들도 필요한 법이다.


한가지 재미난 사실이 있다. 에딘버러 성에서 하루에 한번 축포를 쏘는 전통도 타임볼과 관련이 깊다. 날씨가 흐리거나 안개가 자욱한 날은 육안으로 타임볼을 볼 수가 없다. 그때는 포를 쏴서 청각 신호를 제공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대포를 O’clock Gun이라 불렀다. 물론 칼튼 힐에도 그런 대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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