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이, 21일 동안 십여 개의 알을 품다.
늘 먹을 거 달라고 괴로운 소리를 내던 참이가 뜻밖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알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반려닭과 함께 한지 3년 차, 우리집 암탉의 첫 포란이다.
밀양에 있을 때 유일한 암탉이었던 쑥이는 알을 품지 않았다. 알의 개수가 안 모여서일까?
우리나라의 청계는 토종닭과 미국의 아메라우카나 품종을 교잡시킨 것이다. 토종닭이라 불리더라도 다 같은 토종닭이 아니다. 본래 토종닭이 있고, 또 매일 알을 낳도록 개량된 토종닭이 있는데, 매일 알을 낳도록 개량된 토종닭과 교잡된 청계는 알을 품지 않는다고 한다. 암탉이 알을 품는 본능을 ‘취소성’이라고 부르더라.
취소성: ① 내분비에 의한 지배조절을 받는 유전형질의 하나로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프로락틴의 분비증가로 취소성을 갖게 됨. ② <축산> 가금에서 포란과 육추의 두 가지 행동. (출처 - 농촌진흥청)
닭의 취소성이 발현되지 않는, 닭이 알을 품지 않는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다음과 같다.
① 알을 매일 낳도록 개량되었다.
② 암탉은 여러 명인데 산란장은 하나이다.
③ 섭취하는 음식의 영양소가 부실하다.
④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생활하는 공간이 불안정하다.
결국 본래 야생의 환경과 다른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닭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위 조건이 갖춰져야만 번식에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 수탉과 암탉이 공존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달걀을 생산하는 산란업계에서 수탉들은 어려서부터 도살된다. 암탉들만이 알을 낳을 수 있기에 살아남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매일 알만 낳으며 자고 일어나고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다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 알들은 움직이는 컨테이너에 실려 마트 매대에 오르고 사람들의 식탁에 오른다.
너무 익숙한 이 몇 문장으로 그들의 삶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 슬픈 현실이다.
닭들의 조상인 적색야계는 1년에 6개 만의 알을 낳는다. 6개의 알을 낳고 품어 자손을 번식시킨다. 그런데 닭고기와 계란이 산업화되면서 닭이 알을 점점 많이 낳도록 개량하기 시작한다. 오늘에 이르러 365일 거의 매일 알을 낳게 된 닭들이다.
사람들한테 '닭에게 알을 깨어주면 잘 먹는다.'라고 말하면 깜짝 놀란다. (닭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이해 못 하는 사람들에게 '닭은 매일 알을 낳도록 개량돼서 칼슘이 부족해 그렇다.'라고 하면 그제야 이해한다. (그냥 정말 맛있어서 그럴 수도 ㅎ) 정말 닭들에게 알을 깨 주면 껍질은 와그작와그작 삼켜버리고, 속도 쩝쩝쪕 잘 먹는다. 서로 더 빨리 먹기 위해 껍질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누구도 매일 알을 낳는 닭을 자연스럽게 보지 않는다. 닭을 이용한 산업이 그걸 자연스러운 것처럼 포장하고 있을 뿐….
쑥이도 아닌 참이가, 알을 품기 시작한 건 아마 음식을 더 영양가 있게 바꿔주어서 그런 건지, 산란장도 첨엔 하나였다가 두 개로 바꿔주고 알도 많이 모아놔서 그런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3박 4일 일본에 다녀오니 아침부터 알을 품으며 꼼짝 안 하는 참이를 보았다. 참이가 밥을 먹기 위해 산란장에서 벗어났을 때 알을 만져보니 정말 따뜻했다. 다가가서 음식이라도 챙겨주려고 손을 가닿으면 엉덩이 쪽 털을 곤두세우며 콕콕 물어버리려 한다. 굉장히 예민한 상태이다.
이렇게 밥 먹을 때만 잠시 내려오고, 가끔 흙목욕하며 쉼을 가지다가. 그 외에는 산란장에서 십 여개의 알을 품고 꼼짝 않고 있는다. 이렇게 21일 동안….
참이를 존경하게 되었다. 참이가 품고 있는 알 중에 절반은 쑥이가 낳은 알들이다.
쑥이와 참이의 자손은 어떤 모습일지... 몹시 궁금하다!
글쓴이: 다님
반려닭과 함께 사는 이야기 연재. 비거니즘(채식) 주제의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베지쑥쑥’을 운영하며, 공장식축산업과 육식문화를 주제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여름>을 연출하였습니다. 현재 생태적 자립을 위한 귀농을 하여 전남 곡성에 거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