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Crossed the Line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선이 있다. 넘지 말아야 할 선. 그건 우리의 암묵적인 룰과도 같다.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선이 없다면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말 것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사실 난 선을 잘 넘는 사람이다. 고의는 아니다. 언제나 선을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잠들기 전 하루를 돌이켜 보면 이불을 차며 후회할 정도로 선 넘은 일이 한 바가지다.
별일 아닌 듯 보이지만 사실 내겐 제일 어려운 것.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지켜야 하는 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낯선 사람끼리의 선, 나머지 하나는 친한 사람끼리의 선이다.
나는 비교적 낯선 사람과의 선은 잘 지키는 편이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마음을 늦게 열다 보니 스스로를 향한 검열이 엄격해진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상대방이 싫어하진 않을까? 다신 나를 안 본다고 하진 않을까? 오늘의 만남이 마지막이 되진 않을까?
끊임없이 체크하며 약간은 소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통제한다. 그래서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나를 말수가 적고, 예의가 바르고, 다소 딱딱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내 실제 성격과 전혀 다르지만 문제 될 건 없다. 선을 넘는 것보단 나으니까.
진짜 문제는 바로 친한 사람끼리의 선이다. 가족이나 친구, 오래된 동료 앞에서 나는 곧잘 선을 넘어버린다.
낯선 사람과의 짙은 선이라 치면,
친한 사람과의 선은 옅은 점선인 셈이다.
그다지 티가 나지 않아 쉽사리 넘어버리고 한참 후에야 깨닫기 일쑤다.
‘아, 아까 전에 내가 선 넘었구나.’
그러나 옅다고 한들 선은 선. 내가 선을 넘는 동안 상대방은 상처를 입고, 나와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투덜거릴 자격은 없다. 암묵적인 룰과 최소한의 예의를 어겨버린 것은 나니까.
나도 그런 내 모습이 싫고, 새해마다 목표가 ‘선 넘지 않는 사람이 되자.’ 일 정도이다. 그 말은 즉, 결국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말기에 나는 매년 1월 1일마다 그렇게 다짐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놈의 선이 뭐라고, 내 의지완 상관없이 불쑥 넘어버린다. 어른스럽게 다스리는 법을 모른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내 생각엔 친한 사람과의 선도 조금 더 굵고, 진하게 그어놓을 필요가 있다. 흔히 사람들은 친한 사람일수록 더 편하게, 격의 없이 군다. 오히려 선을 긋고 행동하면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선이 진하다고 친근감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서로의 호불호를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인간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비법일지도 모른다. 예의는 갖추되, 내가 당신을 몹시 좋아하고 있다는 티를 마구 내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관계와 예의, 두 가지를 지킬 수 있다.
오늘 나는 마음속 연필을 꺼내 들고 선을 주욱 긋는다.
나와 밀접한 사람들 사이에.
점선을 꼼꼼하게 채워 헷갈리는 일은 없게 만드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상처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또, 매일 밤 다 지난 일을 후회하며 자책하는 나는 너무 찌질하니까.
우리 모두 제각기 선을 그어 옆 사람들과의 충돌을 막아야 한다.
선을 지킨 사람들이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