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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Sep 15. 2021

프리랜서는 낫(not)프리하다

나도 한땐 프리랜서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


프리랜서는 내 오랜 꿈이었다.


그 기저엔 직장생활이 성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가 깔려 있었는데, 몇 가지로 간추려 보면 대강 이러하다.


<나는 왜 프리랜서가 되었는가?>


1. 아침잠이 많았기에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부담되었다. 게다가 사람이 미어터지는 지옥철은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통근 시간이 아까운 것은 덤.


2. 성격상 단체생활을 잘하지 못했다. 사회 부적응자까진 아니었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기에 규율, 규칙, 질서 등의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특히 단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3. 대학교 조별 과제조차 극도로 싫어했던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과 공조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이 어려웠다. 아무리 업무를 공평히 분담하더라도 그중에서 분명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은 나뉜다. 각자 다른 고생을 하고, 같은 보상을 받는 것을 너그럽게 넘어가기엔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4. 업무 외 인간관계에서 따라오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내겐 과한 감정 소모였다. 타인과의 아주 작은 트러블도 예민한 내게 꽤 큰 문제로 느껴졌다. 난 그 시간에 차라리 일을 더 하고 싶었다.


이렇듯 나의 생각도, 주변 사람들의 의견도, MBTI 검사 결과도, 나를 직장인보다는 프리랜서가 되기를 권했다. 아주 다행인 건 작가란 직업은 겸업이 아닌 이상 거의 반강제적으로 프리랜서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업 작가(혹은 프리랜서)가 되기 전에 탄탄한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여윳돈을 많이 모아둔다든가, 아니면 그 방면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지든가.


그러나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덜컥 프리랜서의 길로 뛰어들었다.


처음 2년은 마냥 신이 났다. 아르바이트와 병행을 할 때만 해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곧바로 글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초조했다. 내 기억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전업 작가가 되며 생각나는 아이디어는 바로 컴퓨터에 저장해둘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형 인간인 나는 아침보다는 비교적 저녁에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지하철 탈 시간에 뇌를 깨우고, 일할 몸 상태를 만들었다. 덕분에 능률은 올랐고 적은 시간을 투자해 최고의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와, 프리랜서를 하길 정말 잘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3, 4년 차로 접어들면서 점점 희미해졌다. 본래 3년 차부터는 일에도 슬럼프가 찾아오는 시기라던데, 나는 프리랜서에 대한 슬럼프도 같이 찾아왔다. 슬슬 단물이 빠지고,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권태기인가 봐.


이번엔 프리랜서가 프리하지 못하는 이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겠다.


<나는 왜 프리랜서가 되었는가...>


1. 불안정한 수익. 이게 바로 많은 프리랜서들에게 봉착한 문제다. 수익이 아주 많을 때도, 아예 없을 때도 있다. 언제까지고 지금 수익이 유지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거기다가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더욱 위태롭다.


2. 폐쇄적인 성격으로 바뀐다. 대화를 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관계 맺는 법을 잊어버린다. 처음엔 ‘그래. 난 원래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집순이라 혼자가 편하잖아.’라며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정상적으로 사회성이 결여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늘 모니터만 보며 닫힌 방 안에서 일하는데 타인과 어울리는 것이 낯설어질 수밖에. 지금의 나는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내 주변인이 내게 ‘히키코모리’라고 놀리는데 웃지 못하겠다. 히키코모리가 맞는 것 같다.


3. 혼자 일하면 마음만은 평화로우리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었다. 상사나 동료가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모든 일의 시작도, 끝도 오로지 나. 책임전가를 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과가 나쁘면 나는 나를 혹독하게 채찍질할 수밖에 없다. 원래도 있던 자기혐오가 더 심해질 수밖에.


4. 결정적으로 프리랜서는 내 생각만큼 프리할 수 없었다. 업계에서 알아주는 능력자가 아닌 이상, 프리해지면 프리랜서는 굶어 죽는다. 일도 끊긴다. 그래서 인생 자체가 무계획이었던 내가 프리랜서가 되며 처음으로 플래너를 쓰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강박적인 기록과 체크는 게으름에 무너져가는 나를 버티게 해 줄 유일한 제어 장치였다. 꼭 필요한 운동과 독서조차 계획표가 없으면 하지 않을 지경에 이른다.


5. 프리랜서에겐 휴일이 없다. 그래도 겸업일 땐 주말을 간절히 기다리고, 주말이 되면 묘한 해방감이 생겼다. 그러나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는 주말에 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프거나 약속이 있지 않는 이상. 아무리 ‘쉬어야지.’ 다짐해도 머리로는 계속 일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죄책감을 느낀다. 휴식이란 꼭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퇴근도 없다. 내 컴퓨터는 늦은 밤까지 절전모드로 돌아간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작동할 수 있도록.


일에 영혼을 판 느낌이다. 나는 제대로 쉬는 법을 까먹었고, 친구와 어울리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해외여행을 갈 때조차 노트북을 들고 갈 정도였으니.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마이너스 통장 인생이라니 현타가 오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이 글은 프리랜서가 직장생활보다 힘들다는 것을 알리려 쓰는 글은 아니다. 프리랜서나 직장생활이나 비등비등하게 힘들다. 다만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갖는 대신 다른 무언가를 잃을 뿐이다.


혹시 나처럼 프리랜서에 큰 로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오죽하면 프리랜서로 버는 돈이 꽤 되어도 겸업을 하는 분들도 있으시다니 말 다했지.


프리랜서란 작은 방 안에 혼자만의 정글을 만들어 혼자만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악어 같은 우울함도, 늪 같은 무력감도, 독거미 같은 패배도 결국 따지고 보면 다 내게서 파생된 것이지만 그 전투만큼은 진짜 정글에 버금갈 만큼 치열하다.


또, 프리랜서라고 집에만 있지 말고 오히려 더 약속을 만들어 밖으로 나가시는 걸 추천드린다. 일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행위를 망각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우리는 더욱 외향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돈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신다면 조심스럽게 겸업도 권해드리고 싶다. 소액일지언정 일정하게 들어오는 돈이 생기면 다급함이 사라지고, 일을 조금 더 즐길 수 있고, 결과에 초연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프리랜서 4년 차의 보잘것없는 소감이자, 프리랜서의 오해에 대한 해명이다. 잘 꾸며진 작업실에서, 느긋하게 커피 향을 마시며,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며 작업하는 것은, 드라마와 같은 허상에 불과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휴.




자, 그럼 오전의 목표였던 브런치 글 업로드를 끝내고, 계획대로 점심을 먹고, 빡빡한 오후 일정을 시작해볼까나. 오늘도 할 일이 아주 많아요.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세상 모든 프리랜서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늪에 한쪽 발이 빠진 히키코모리 프리랜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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