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종료. 자기 작업은 진행 중.
이상하리 만치 어제부터 기분이 좋다. 특히 오늘 아침엔 눈을 슬며시 뜨기도 전부터 행복감이 밀려왔다. 환희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곧 잘 기분이 좋았다가 또 기분이 나쁘기도 하지만, 최근엔 조금 다른 차원의 행복감을 느낀다.
"앗싸. 아침 먹어야지."
이런 생각을 눈 뜨자마자 하다니. 난 아침밥 먹을 생각에 기뻤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 것은 음식에 대한 집착일까. 재단하고 평가하기보다는 눈 뜨자마자 밥을 먹고, 또 점심에 먹을 것들을 챙겨갈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든 나를 기특하게 여겨주기로 한다. 무엇보다 휴일에 조금 부지런을 떨어 마르쉐에서 장을 봐 오고, 야채와 과일을 모두 다듬어 넣어두고, 몇 가지 요리는 완성된 버전으로 챙겨두었다는 점이, 그래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건강하고 맛있는 채식 밥상을 언제든 쉽게 차려먹을 수 있게 됐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뻤다.
5월 1일 휴일에 마르쉐가 집 근처에서 열렸다. 갑자기 동네 친구들을 불러 잠깐 얼굴을 보고 땡볕을 쬐며 근황토크를 하고 헤어졌다. 아스파라거스는 유리병에 담아 물에 담가두고, 처음 본 다래순은 데쳐서 반은 냉동, 반은 냉장고에 넣어뒀다. 토마토는 꼭지를 따서 예쁘게 담아 찬장에 올려두고, 루꼴라 잎은 샐러드 스피너에 돌려 물기를 완전히 뺀 다음 면보에 담아 밀폐용기에 담아뒀다. 비트는 오븐에 구워 썰어서 밀폐용기에 담고, 당근 두 개는 채칼로 썰어 딜을 넣고 라페를 만들어두고, 나머지 두 개는 쪄서 냉장고에 넣었다. 완두콩은 깍지 채 삶아 식힌 뒤 콩알만 유리병에 담아 딤채에 넣었다. 병아리콩은 불려 삶아 냉동했다. 한 달은 먹고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침에 비트와 사과, 찐 당근과 레몬즙을 갈아 마시고 도시락통에 준비해 둔 것들 중 그날그날 당기는 것들을 담기만 하면 도시락이 완성된다.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마치면 한 시간이 지난다. 일찍 일어나 아침에 이런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고 난 뿌듯함으로 하루를 보낸다.
지난주에 거의 1년 가까이 받았던 상담을 종료했다. 냉소적이고 의심이 가득한 채로 시작한 상담의 종료는 나의 자유로움을 알아차리며 끝났다.
"어떤 기분이에요? 어때요?"
상담 때마다 수도 없이 물어보시는 이 질문에 나는 대답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떻게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벼워요."
마지막 상담에서 나는 바로 답할 수 있었다.
"가볍군요. 가볍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자유로워요."
자유의 감각으로 매일을 보내니 아침에 눈을 뜨면 기쁨이 몰려오는구나. 매주, 그러다 격주에 한 시간씩 꼬박 시간을 내고, 또 이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고, 매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명상을 하고, 강의를 듣고, 또 그 비용을 부담하는 일. 생각보다 보통일은 아니다. 비용 부담의 산을 넘으면 시간의 부담이 있고, 시간을 기꺼이 내는 데에 익숙해지면 매일 놓치지 않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라는 큰 산이 있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 내면과 마주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무섭고도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기에 이 저항에 항복하고 회피하기도 쉽고, 과정 중에 삐딱선을 타버리기도 쉽다. 그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 거짓말로 속이지 않고 용기를 냈던 그 모든 순간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