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신들과 영웅들과 시간을 먹는다
오랫동안 시는 내게 부끄러운 것이었다. 어렵고 신비로운 것이었다. 말의 정수에 대한 강력한 증언이었다. 그래서 시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하등 중요하게 남지도 않을 시간의 물결에 밀려 살아오다가 '아,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덧붙이는 중얼거리는 말들. '시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까?', '시로써 내 공감의 영역에 문턱을 낮추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등등. 하지만 말들의 잔치는 고사하고 나도 잘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의 미로나 짐처럼 주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있다. 그렇게 이 짧은/짧을 글들의 길이 도리어 난맥으로 남아버리는 건 아닐까, 앉은 자리에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손가락으로 바닥을 툭툭 친다.
내 몸을 나간 것들은 흐르는 시간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일까?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일까? 몸의 증상이나 통증일까? 끝까지 내 것이어야 하는데 그런 내 마음을 배신하는 세상의 현실이고 비정함일까? 아니면 배고픔이나 목마름일지도. 먹어도 먹어도 더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 속 모를 허기짐같은 것 말이다.
그것들이 내 것이든 아니든, 내 안에 있다가 밖으로 갔으니 거기서는 더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니.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바깥은 "반들반들한 윤기보다/무결함보다/집에 머무는 것보다/더 경이로운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아서./그게 무언지 알지도 못하면서."(메리 올리버의 시 <쇠고둥>에서) 계속 눈이 가는 곳이니까. 무한정의 바깥으로 결국 나가버렸다는 것에 작은 축하를. 내 입장에서는 헤어짐이고 이탈이며, 손실이지만 누군가에는, 어딘가에게는, 나가버린 그것(들)의 입장에서는 보탬 곧, 더해짐이고 새로운 만남이고 변화일테니.
그 모든 당사자들에게 재앙 아닌, 축복이고 선물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