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살면서 대형견을 키우게 될 거라고는 지레짐작조차 못했었다. 이유는, 내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을 거라 단언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조그마한 식물 하나 키우는 것도 서툴러서, 다육식물도 죽여먹는 사람이니 어떻게 25kg이나 크는 녀석을 키울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겠는가.
그런 내가 2015년 12월에 이 곰 같은 녀석을 만나면서 인생이 100도 정도 바뀌었다.(180도는 오버 같아서.)
하지만, 이 곰 같은 녀석이 알고 보니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동지 사람설>이 돌고 있다.
동지 뒷목덜미 쪽에 숨겨진 지퍼를 주욱 내리면 인형탈을 벗어내고 30대 중반의 이지적인 남성이 나올 수도 있다.
아직까지 그 지퍼를 발견한 이는 없지만, 녀석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건대 지퍼를 안으로 넣어 숨겼을 가능성이 짙다.
혼자 셀카도 찍는다.
첫 번째 의문. 목욕은 좋아하지만, 물 밟는 건 싫어한다.
마치, 다 차려입은 상태에서 모르고 물을 밟은 사람처럼 말이다.
양말을 갈아 신기 전의 짜증스러운 표정이랄까.
심지어 발바닥에 물이 닿으면 열심히 허공에 털기도 한다. 마치 우리가 손을 씻고 허공에 물기를 탈탈 털듯이 말이다.
범행 흔적
두 번째 의문. 섬세한 힘 조절
이 사건은 5년 하고도 8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외출 30분 후에 집에 돌아가니, 이렇게 누군가가 까먹은 흔적이 있었다.
당시 집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심지어 이 과자가 테이블 위에 있다는 걸 알고 갔었다.
설마 저기 위에 있는 걸 먹진 않겠지 싶었으니.
하지만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니, 동지의 켄넬 깊숙한 곳에서 저 포장지가 나왔다.
마치 사람이 까먹은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그때부터 <동지 사람설>이 제기됐다.
이런 증거들이 계속 쌓여, 요즘엔 얌전하게만 지내고 있다. 그래서 꽤 심심해졌지만, 그 심심한 부분을 콩이가 대신 채워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하루는 가족 촬영을 갔었는데, 그땐 콩이가 없었기에 동지만 데리고 스튜디오를 찾아갔었다. 워낙 사람에게 무관심한 녀석인지라 걱정하진 않았지만 녀석은 3시간 넘게 너무나도 잘 따라와 줬다. 마치 재롱잔치라도 열린 듯 포즈도 착착 잘 잡아줬기에 "모델해도 되겠는데?" 싶었다.
그렇게 종일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얌전히 굴었기에 우린 "동지 모델시키자!"라는 말을 떠들어 댔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 녀석은 화장실로 뛰어가 쉬와 설사를 배출했고, 다시는 동지와 스튜디오를 찾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 밝은 조명들이 종일 동지를 괴롭혔고 그 결과 사람들이 긴장하면 복통을 앓듯 이 녀석도 그렇게 앓은 것이다. 그 아픈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대소변을 참은 것이다.
그때 그 미안함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동지의 속도 모르고 "모델시키자"라는 말이나 하고 있었다니. 나 자신이 한심했다.(사람이었다면, 그 입 좀 다물라며 화라도 냈을 텐데)
이렇듯 일상에서 이 녀석들은 우리에게 생색내지 않고 우리의 편의를 봐주고 배려해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배려해주고 있으니까.
만약 동지, 콩이와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보다 더 예민하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었을 테다.
가끔 하루가 헝클어져도 이 녀석들의 포송한 털에 얼굴을 묻으며 "아, 이게 행복이구나."라며 새삼 깨닫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