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9일에 열린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연장전 118분에 킬리언 음바페가 페널티 킥에 성공했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스코어가 공식적으로 동점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바람막이 안주머니에 있는 유리병을 떠올렸다. 나는 반포동 지하 작업실 일 인용 소파에 앉아 손잡이를 꽉 잡았다. 작업실에 모인 민수 형과 친구들은 질서정연하게 대마초 가루와 펜타닐 패치가 담긴 지퍼 백을 정리했다. 민수형의 친구 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너 슛돌이 출신이지? 초등학생 때 프랑스로 축구 유학 갔다고 하지 않았냐? 음바페 봤어?
-내가 거기서 걜 어떻게 봐?
민수가 감자 칩을 씹으며 불편한 내 왼쪽 다리를 쳐다보았다. 그가 악의 없이 말했다.
-우리 슛돌이 우진이는 프랑스에서 유학원에 사기도 당했고 다리까지 다쳤대.
나는 음바페 때문에 돈을 잃을까 봐 초조했다. 음바페는 메시와 호날두가 늙어 가는 시대에 운 좋게 태어난 놈이었다. 너는 파리 생제르맹 FC의 유명 인사지만 나는 인터넷 악플러 레전드야. 인스타그램에서 보자.
지하 작업실에는 나와 민수 형까지 총 여섯 명이 모여 월드컵 우승 팀 맞추기 도박 겸 비즈니스 중이었다. 아르헨티나 승리에 돈을 건 건 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연장전이 끝났다. 각국 선수들이 승부차기 대기 중이었다. 경기가 끝난 것도 아닌데 민수 형이 친구들에게, 친구라기보다는 따까리에 가까운 아이들에게 지퍼 백에 관해 이것저것 지시했다. 아마 민수 형의 친구들은 아닌 것 같았다. 2학년 형 중에 저런 애들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나 같은 고1일 수도 있었다.
민수 형이 나와 친구들에게 바람 좀 쐬자며 작업실 바깥으로 나가자고 했다. 나는 계단을 오르며 형의 거대한 등을 뚫어지게 보았다. 형이 입은 디올 후드 티가 멋졌다. 삼두근과 광배근도, 190cm에 가까운 큰 키도 존나 멋졌다. 형은 슬리브를 따라 내려오는 오블리크 패턴 후드 티를 입었다. 음바페도 디올 앰베서더라 민수와 같은 후드를 입었다. 아르헨티나가 이긴다면 나 역시 민수형 과 음바페가 입은 후드 티를 살 수 있을 텐데.
민수 형과 친구들은 나보다 먼저 작업실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불편한 왼쪽 다리 탓에 다소 느린 걸음으로 형과 친구들을 따라갔다. 민수 형을 제외한 따까리들은 이자카야 가게 정문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중이었다. 민수 형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전담도, 술도 하지 않았다. 막 학원 수업을 끝마친 애들 몇이 이자카야를 지나쳤다. 나는 걔네가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형은 왜 마약 안 해?
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집중하지 않았다. 민수가 어깨를 으쓱인 뒤 대답했다.
-원래 마약왕은 약 안 해. 슛돌이는 넷플에서 나르코스 봤어?
내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비즈니스맨이니까. 사업가는 약을 안 해.
민수 형은 아직 승부차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에게 지퍼 백을 배달하러 가라고 지시했다. 나는 걔네가 사라져서 아쉬워 바닥만 바라보았다. 그래도 같이 축구를 봐서 재밌었는데. 민수 형은 이자카야 앞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양손으로 셈하기 시작했다. 이번 경기에서 아르헨티나가 질 경우 내가 민수 형에게 빚진 금액이 얼마 정도인지 파악하는 모양이었다.
민수 형은 비즈니스맨답게 오프라인으로 대마초와 펜타닐 패치를 팔았다. 거래는 현금으로만 했다. 형은 나를 비롯한 토쟁이들에게 현금을 빌려줬고 축구 토토 모임을 오프라인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나는 형이 온라인 토사장들처럼 돈을 많이 땄다고 토쟁이들을 졸업시키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형이 하는 판에만 꼈다. 내가 온라인 토사장들에게 못 받은 돈이 얼마던가. 백이십?
즉 민수 형은 사설 대출 업자이자 도박 업체 사장, 즉 프로페셔널 레트로 비즈니스맨인 셈이다. 내가 형에게 빚진 돈만 해도, 나도 손가락으로 셈을 해 봐야 한다, 하나, 둘, 셋, 넷, 이천만 원 정도 된다. 아르헨티나가 승부차기에서 패한다면 나는 형에게 또다시 백오십만 원 정도를 빚지게 된다. 모르겠다. 내가 얼마를 빚지게 될지. 나는 돈에 관하여 말할 때 얼마 정도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정확한 금액을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민수 형이 손가락으로 셈을 마쳤을 때 이자카야 분위기가 변했다. 아르헨티나가 승부차기에서 승리했다. 이래서 내가 과학을 믿지 않는다. 뉴스는 다 거짓이다. 어른들이 하는 말도 다 틀렸다. 세상은 운이라는 원자의 충돌이고 음바페는 행운의 필드 안에서 나대다가 패배를 맞은 것이다. 술집 안의 어른 중 일부는 메시가 드디어 우승컵을 들었다며 흥분했다. 헛소리. 아르헨티나가 우승한 건 메시가 잘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다. 과학을 믿지는 않지만 나름의 과학적 추론을 통해 내린 결과다. 내 형, 민수가 아닌 내 친형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여간 나는 패배한 음바페의 인스타에 댓글을 쓸 생각에 어깨를 들썩였다. 파파고를 열어 내가 쓴 댓글을 번역했다. 민수 형이 팔짱을 끼고 도대체 왜 그렇게 음바페에게 악플을 쓰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장난이야.
-오늘 딴 돈은 빚에서 까? 아니면 현금 줘?
-현금으로 주면 안 될까.
-슛돌이는 언제 빚 갚을 거야?
-다음 경기에 백 퍼 돈 딸 수 있어. 거기서 따면 갚을게.
민수 형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노란색 지폐 다발을 꺼내 능숙하게 센 뒤 내게 전달했다. 나는 형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에 배인 담백함과 이상하리만치 여유로운 태도, 무엇보다도 큰 덩치와 근육이 부러웠다. 성했기에 나처럼 절지 않는 다리도.
-다음에는 꼭 따서 갚아.
민수 형은 굴다리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형이 나를 등지고 나를 보지 않은 채 손을 흔들었다.
-더 안 놀아? 집에 가?
내가 물었다. 민수 형에게서 대답이 없었다. 형이 사는 곳은 표면에 거울을 발라 놓은 듯 반포구의 부유함을 반사하는 재질의 고층 아파트였다. 나는 언젠가 전쟁 같은 위급한 일이 닥치면 형이 사는 아파트가 콩코르드 초음속 비행기로 변해 하늘을 향해 오를 거라 상상했다. 비행기 운전대는 형이 잡겠지. 민수 형은 아리팍에 살아. 캐나다에서 유학했고 부모님은 의사야. 나는 중얼댔다. 나는 형의 반대편에 있는 빌라에 살아.
굴다리 반대편에 있는 우리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휴대 전화를 켜 실시간 월드컵 시상식 중계를 보며 걸었다. 음바페는 월드컵에서 득점왕 상을 탔다. 황금빛 운동화 조각상 모양의 상패를 받는 그의 얼굴은 시체 같았다. 나는 웃었다. 음바페는 졌다. 나는 이겼다. 음바페는 높은 시상식 위에 서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나와 같은 위치였다. 나는 또 웃었다. 내가 그를 끌어내린 것이다. 몇십억을 넘나드는 아파트 사이에 자리를 비집고 선 쓰레기 같은 빌라로 향하는 골목으로 말이다. 나는 이 골목에 음바페와 함께 서 있었다. 나는 더 크게 웃었다. 나는 음바페보다 더 나은 사람이었다.
당신은 패배자다. 댓글로 쓸 내용을 파파고로 번역하고 있을 때 메시지가 왔다. L너겟이 보낸 빚 독촉 문자였다. 나는 다른 작업 대출업자, L너겟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형에게도 조금 돈을 빌렸다. 난 메시지를 읽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 빌라 앞에 도착하니 거실 창의 절반이 보였다. 우리 집은 반지하였다. 절반만 드러난 창문에 텔레비전 불빛이 비치었다. 친형이 텔레비전을 켜둔 채 소파에 늘어져 자는 게 분명했다. 형은 매일 새벽까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사원증 목걸이를 빼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들었다. 부모님은 학군을 위해 형이 중학생이던 때 힘겹게 반포구로 이사 왔다. 형은 꽤 괜찮은 대학교 공대에 입학했다. 그 와중에 나는 프랑스로 축구 유학을 갔다. 가족 중 나만 빚에 허덕이는 게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