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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나 Oct 18. 2024

2024년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콩코르드 [5]

초음속 콩코드 여객기 사고 15주기, NASA 등 15년 만에 ‘부활’ 시도[출처] - 국민일보[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


기척이 들려 집 밖으로 다시 나갔다. 빌라 입구에 복서가 있었다. 그는 내가 오늘 배달해야 할 장소 좌표가 적힌 쪽지를 검지 중지에 끼고 흔들었다. 복서가 말했다.


-어제 네가 일 안 해서 민수가 화났어.


-어제 하루 종일 설사했어. 형한테 오늘부터는 하루에 백 건도 할 수 있다고 전해 줘.


복서가 비열하게 웃더니 알았다고 했다. 나와 복서는 반포동 작업실로 향했다. 처음 보는 애가 지퍼 백이 담긴 택배 상자를 칼로 자르고 있었다. 녀석은 무지개 색 비즈 목걸이를 했고 초등학생 같아 보였다. 복서가 내게 할당된 분량을 주며 말했다. 배달해야 할 약이 담긴 봉지가 묵직했다. 나는 삐딱하게 서서 봉지를 내려 봤다.


-정신 차리고 배달해. 오늘 네가 들고 다니는 것만 사천만 원어치야.


빈백에 앉아 있던 민수가 초록색 포카칩 봉지를 뜯고 씹었다. 과자를 씹으며 내게 물었다.


-슛돌이, 많이 아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수가 기름이 묻은 손으로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내 손이 기름 범벅이 되자 민수가 과자를 입에 넣고 크게 소리 내서 씹었다. 내 몸속에서 무언가 부러진 듯 타격감이 왔다. 감자 칩이 미끈거리는 것도 싫었고 민수 형이 항상 파란색 오리지널이 아닌 초록색 어니언 맛 포카칩을 먹는 것도 거지 같았다. 나는 손바닥을 바지에 닦으며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형이 감자 칩을 씹는 소리가 아직도 나는 것 같았다.


반대편 골목에서 나처럼 후드를 쓴 애가 라이터를 켜서 종이를 태웠다. 반포동 길거리에서 종이를 태우는 놈들은 전부 민수 형 밑에서 일하는 드라퍼들이다. 형은 인터넷을 쓰지 않았기에 몇백억 대의 수익을 낼 수는 없었지만, 소음 없이 길게, 경찰에게 단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사업과 명성을 이어 갔다. 


나는 몇백억 대 수익을 내고 싶었다. 내 손에 사천만 원어치의 펜타닐 패치가 있었다. 민수 형과 L너겟에게 진 빚을 갚고 토토에도 걸 수 있는 돈이었다. 나는 민수 형과 민수 형이 사는 반포 아크로 리버 파크와 초록색 포카칩을 떠올렸다. 감금되거나 자살했던 드라퍼들을 떠올렸다. 나는 감금되지도 자살하지도 않을 것이다.


트위터에 접속해 ㅍㅌㄴ패치논현10장40텔레@concorde1220이라고 트윗 했다. 돈은 비트코인으로 받았다. 트위터에 올린 지 단 하루에만 내 손에 쥔 모든 지퍼 백을 배달하지 않고도 삼천만 원을 벌었다. 


인터넷에서는 인천공항 음바페 테러 예고 글에 난리였다. 경찰이 수사를 예고했지만 그들은 나를 잡을 수는 없다. 유료 VPN을 이중으로 썼고 자수할 생각도 없었다. 이게 내가 과학을 믿지 않는 이유다. 마약 거래에 가담하면 경찰에게 잡힌다는 뉴스는 가짜다. 사람들의 충고는 구라다.


마지막 거래는 다음 날 새벽 두시를 앞두고 이루어졌다. 원래 구매자와 드라퍼, 판매책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거래의 기본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비즈니스 수완이 좋은지, 부유한지 자랑하고 싶었다. 구매자는 팔다리에 힘이 없어 지그재그로 걸었고 이빨이 거의 없었다. 그가 지퍼 백을 받아 바지 뒷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너는 절대 이거 하지 마.


나는 후드와 선글라스를 벗으며 대답했다.


-원래 비즈니스맨을 마약을 안 해. 나르코스 안 봤어?


내일은 하루 날 잡고 성수와 뚝섬의 편집샵을 지나 신세계 강남까지 들를 예정이다. 어릴 때 파리로 유학 가기 일주일 전에도 나는 인터넷으로 관광 명소를 검색했었다. 구글에 관광지 여러 개를 클릭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좌표를 그려 주었다. 드골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서도 현재 비행기가 어느 상공을 지나고 있는지 좌표에 빨간색 선으로 나타났다. 비행기에서 2003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콩코르드 여객기 추락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드골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내일 돈을 쓰러 갈 좌표 위에 빨간색 선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내 휴대 전화에 설치된 거의 모든 어플리케이션에서 메시지 알람이 왔다. 확인하려던 도중 빌라 앞의 작은 정원에서 연기가 나는 걸 발견했다. 검은 연기는 내가 여객기 다큐멘터리에서 본 광경과 비슷했다. 콩코르드 여객기 사고로 백열세 명이 죽었다. 내가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잠든 건 그게 나에게 일어날 일이 아닐 걸 확신했기 때문이다. 


집 앞으로 가니 경비 아저씨가 불에 탄 화분 잔해를 정리 중이었다. 아저씨는 누가 담뱃재를 잘못 버린 모양이라며 간단하게 상황을 종료했다. 우리 집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온통 식용유가 흘러 내려가기 힘들 지경이었다. 한쪽 다리에 힘을 주기 힘든 나로서는 내려가기 힘들었다. 계단마다 똥과 토사물이 널렸다. 결국 엉덩방아를 찧었다. 신발에 온통 똥이 묻었다. 현관문 양옆 벽에 온통 붉은색 래커로 쓴 욕설이 보였다. 내가 음바페에게 썼던 댓글 내용이었다. 


‘당신은 패배자다. 너의 인생은 탐욕과 부패로 찌들었어. 꼬나, 바흐-투아, 메흐드.’

누가 발로 찬 건지 현관문은 둥글게 패었고 열려 있었다. 휴대 전화 알람이 계속 울렸다. 간단하게 정리될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친형이 거실에 서 있었다. 운동화를 신은 그대로였다. 형은 패딩을 입은 채 손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살폈다. 집에 있는 모든 서랍이 열렸다. 가족사진 액자는 깨졌다. 사진 속 내 얼굴이 칼로 도려내졌다. 식탁과 의자 다리가 부러졌다. 바닥에 온통 밀가루가 깔렸다. 형이 집 안을 둘러보느라 고개를 돌릴 때마다 사원증 목걸이 줄이 보였다. 최대 음량으로 켜진 텔레비전에서 새벽 뉴스가 방송 중이었다. 형이 나를 발견하고 힘없이 말했다. 


-새벽 두 시 반이니까 굿모닝.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파에 앉아 팔걸이를 잡고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뉴스 따위가 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형이 말했다.


-말하지 그랬어. 형이 삼천만 원 정도는 갚아 줄 수 있어. 그런데.


소셜 미디어 알람이 너무 자주 울렸다. 전화를 끄기 위해 휴대 전화를 보니 미리 보기 화면에 오른 수십 개의 트윗에 내 사진이 보였다. 축구 유망주를 뽑던 예능 프로그램 슛돌이에서 찍은 프로필 사진,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 드라퍼로 일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들고 찍은 사진과 마지막으로 이빨 없는 놈과 거래하는 사진이었다. 나는 미리 보기를 밀어 어플로 들어갔다. 나와 가족의 개인 정보와 내 행적이, 내가 텔레그램으로 펜타닐을 팔았고 지속해 음바페를 괴롭혔으며 종국에는 공항에서 테러까지 할 예정이라는 포스팅이 인터넷을 장악했다. 특히 가장 많이 올라온 피드에는 이렇게 쓰였다.


‘김우진의 형은 열심히 비데를 만들었지만 김우진은 변기 속에 펜타닐을 숨겼습니다.’

나는 높이와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곳을 향해 전력으로 추락하는 중이었다. 빌라 어딘가에서 누군가 창문을 열고 텔레비전 소리 좀 줄이라고 외쳤다. 뉴스 앵커는 오늘 새벽 네 시경 입국 예정인 PSG 선수 중 한 명에게 테러 예고 글이 올라왔다고 프롬프터를 읽었다. 공항에 모인 팬들과 관광객은 대피했으며, 인천공항 전체에 경찰 인력을 배치할 예정이다. 화면에서 경찰들이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빠른 동작으로 움직였다. PSG 유니폼을 입은 팬이 턱을 긁으며 공항을 살피는 장면이 나왔다.


형이 내 옆에 앉았다. 형의 패딩이 내 몸에 닿자 예전부터 고민했던 행동을 실행했다. 한 손을 뻗어 형을 안았다. 형을 안으면 내가 가진 문제의 절반은 해결되리라 믿으면서. 형의 몸은 굳어 있었다. 내 손길에 화답해 나를 안아 주지도 않았다. 형이 한숨 쉬자 위스키 섞인 숨 냄새가 났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뉴스에서는 테러 시도 용의자의 신상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드러났으며 조사 중이라고 했다. 내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잠이 쏟아졌다. 잘 수 없었다. 


나는 과학을 믿지 않는다. 어른들이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뉴스도 다 거짓말이다. 그게 내 철칙이며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형. 뉴스는 다 구라야.


형이 대답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니잖아. 그치.


나는 형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다만 내가 한 것처럼 형이 나를 안아 주기를 기다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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