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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나 Oct 18. 2024

단편소설- 금아롬이 [2]

카메라를 향해 웃은 이래 유정이 카메라에 선 건 처음이다. 박은 피트 아버지와 화상 통화를 첫 스케줄로 잡았다. 종로 구민회관 강당에서 열리는 화상통화는 실종아동부모협회에 등록된 부모들 입회 아래 이루어질 것이다. 통화가 끝난 뒤 부모님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findromyandpete 해시태그 홍보를 위해, 로미의 상징이었던 골드색 풍선에 로미를 비롯한 실종자들의 이름을 써서 날릴 것이다. 유정은 즐겨하던 장신구를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무채색 모직 원피스를 입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모직 특유의 탄력 없는 느낌이 허리와 골반을 괴롭혔다. 뒷골이 나른히 땅기는 게 아스피린도 필요했다. 그녀는 박이 일러준 대로 말없이 앉아 딸이 가장 좋아했다던 복숭아 인형을 쓰다듬었다. (처음 보는 인형이었다.) 실종자부모협회에서 온 부모들은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유정을 곁눈질했다. 그녀에 대한 의아함을 걷어낼 수 없다는 듯. 


몇 분 동안 장비를 조정한 뒤 피트 아버지와 연결이 되었다. 피트 노블 쉬어의 아버지인 로버트 니브 쉬어는 아내 없이 세 아들을 키웠던 역사와 막내아들 피트가 얼마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지 삼삼한 시처럼 읊었다. 그는 교복에 양말을 무릎까지 치켜 올리고 말라뮤트 엠마를 가리키는 어린 시절 피트의 사진을 꺼냈다. 로버트가 아들의 발그레한 얼굴 부분을 매만지며 울음을 삼켰다. 


-피트와 로미를 찾는 데 라오스 정부의 협력과 여러분의 제보를 요청합니다. 


로버트가 앉은 소파는 검붉은 벨벳 천이 덧대어 안락해보였다. 다마스크 실크벽지 곳곳에 달린 가족사진과 아르데코풍 액자, 학위증과 상패 따위는 할리우드 가족 영화에서나 볼법한 광경이었다. 화면에 반절만 나온 불상은 어설픈 오리엔탈리즘에 취해 동아시아 변두리를 찾아온 전형적인 코카시안 피트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유정은 창고나 다름없는 가게에서 딸과 함께 설탕을 담뿍 뿌린 꽈배기를 뜯던 피트가 저렇게 안온한 집, 버터냄새와 기분 좋은 개 비린내, 흔들의자가 삐걱대는 소리가 날 것 같은 곳에서 살았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종로촌년이 기름내가 밴 면장갑으로 삿대질을 하며 미시간 프린스 차밍을 촌놈이라 놀렸구나. 웃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혓바닥이 말랐다. 로버트에게 졌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변형된 사대주의일까, 열등감일까. 아이들이 실종된 건 결코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었지만 이건 명백한 패배였다. 그저 로버트 쉬어가 연출한 실종자 아버지의 그림이 현답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슬픔과 비애는 절반만 드러내고 가족적인 품위는 잃지 않는.


언론이든 경찰이든 박한기든 그 누구든 자신에게 조금만 여유를 줬더라면 기자들 앞에서 모호한 미소 따위는 짓지 않았을 거다. 조심스레 진짜 네가 그랬냐고 묻는 친구들 전화도, 단톡방에 ‘전유정이 금로미를 죽인 증거 다섯 가지’, ‘피트의 혼령에 빙의한 칠갑산 장군동자’ 라는 유튜브 영상이 돌 일도, 생전 처음으로 자낙스와 산도스블라블라, 스틸녹스를 섞은 약물 칵테일을 복용할 일도 없었을 거다. 


유정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협회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쓴 풍선을 내려놓고 시선과 양 손을 어디에 고정시킬 줄 몰랐다. 수십 명의 사람들 너머 창가에는 4월의 난데없는 눈발이 날렸다. 창 너머 바깥세상의 모노톤은 실종자부모들의 낯빛을 닮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에는 인형을 나머지 손에는 풍선을 들었다. 구두에 익숙지 않은 유정이 휘청하자 박이 부축했다. 그녀의 손바닥이 메마르고 찼다. 박한기는 그녀가 울지 않아 서운했지만 자리에 선 모양세가 마음에 들어 참기로 했다. 부서질 듯 했지만 고풍적인,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익명의 마담 초상처럼. 찰나의 눈 맞춤에서 그는 유정의 내면에 자리 잡았던 무언가의 위치가 바뀐 걸 직감했다. 앞뜰로 향하기 전 박한기가 유정에게 말했다. 어머님. 그들에게 모든 걸 양보하고 베푸세요. 유정이 머뭇거리는 사이 박한기가 복도에 무리지어 선 실종자 부모들에게 말했다.


-금아롬 씨 어머님 뜻에 따라 대부분의 분량을 여러분께 할당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이들의 사진이나 포스터를 준비하시고 앞뜰로 모여 주십시오.


30년 전 4살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가 선두에 섰다. 이어 부모들만의 방식에 따라 줄을 섰다. 손깍지를 낀 채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머뭇대는 부모들은 유정처럼 한차례 언론에게 호되게 당한 사람들이었다. 용의자 의심이든, 가학적인 댓글이든. 박은 그들에게 퍼포먼스에 참여하기 꺼려지는 분들은 휴게실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사진 표면이 유난히 날카로운 햇살에 반사되는 걸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앞뜰에선 부모들과 전국 대학생 봉사 연합동아리 아이들이 모여 로미의 얼굴과 해시태그가 인쇄된 현수막에 풍선을 달았다. 행사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풍선을 든 부모들과 유정이 카메라를 향해 섰다. 부모들이 순서대로 사연을 읊었고 호소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시간을 끌었다. 그의 슬픔과 애착, 그리움과 불면증에 대한 기나긴 시時는 짧은 스피치로 담기엔 너무나도 부피가 큰 이야기였다. 스텝이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부모의 눈썹과 귓바퀴가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남자가 주먹을 세게 쥔 채 사람들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만, 유정의 어깨를 치고 말았다.


박한기는 유정이 넘어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박이 몰래 웃음 짓는 걸 직감했다. 가만히 있다니 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녀가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복숭아 인형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녀가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과, 그녀를 밀친 남자가 금아롬처럼 유명하지 않은 내 아들에겐 긴 발언권도 주지 않느냐고 소리치는 모습 모두 카메라에 담겼다. 


비판적인 침묵이 뜰에 맴돌았다. 부모들은 남자가 소리치도록 내버려둔 채 지시에 따라 풍선을 하늘로 날렸다. 한 포토그래퍼가 풍선을 올려다보는 전유정의 모습을 카메라로 줌인했다. 눈발 사이 검은 옷의 그녀는 다리를 절며 위태로이 섰다. 손에 든 복숭아 인형이 진흙을 뒤집어썼다. 인형은 정말이지 무거워 보였다. 지난 날 단 한 번의 웃음으로 인해 받은 비난의 무게가 저만큼일까. 프레임 속의 장면은 흰색 유화물감 위에 공들여 그린 검은 선 같았다. 사진가는 이달의 보도사진 상을 기대했다.


눈발이 굵은 비로 변했다. 로미의 현수막이 공중에 떴다. 빗물이 로미의 얼굴에 자국을 남겼다. 얼굴이 변해갔다. 웃던 모습에서 눈물 콧물 침 따위가 흐르는 건 안중에도 없이 오직 감정에 충실한 채 오열하는 얼굴로. 내가 뭘 잘못했다고, 라고 말하는 얼굴로. 소나기는 금세 멈추었지만 하늘의 명도는 짙어갔다. 광분한 남자의 아내가 고개를 조아리며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건네주었다. 유정은 종이 속 보조개가 짙은 어린 남자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우구나. 아이의 이름은 김남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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