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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나 Oct 18. 2024

단편소설- 금아롬이 [3]

유정은 #findromyandpete#실종행사밀치기사고가 #B당로고송표절 #거리유세민폐와 함께 트위터 트렌딩에 떴다는 소식을 호텔에서 들었다. 실종아동 부모 중 한 명이 라오스 출국 전까지 지내라고 꽈배기집 근처 호텔을 예약해 줬다. 커튼을 걷으면 바로 꽈배기집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꽈배기집 근처에는 팬들이 인쇄한 로미와 피트의 실종 전단지들이 선거 포스터만큼이나 촘촘히 붙었다. 컬러렌즈에 탈색한 단발, 어깨까지 늘어진 기하학 귀걸이를 한 로미. 쟤는 누굴까. 유정이 속으로 물었다.


박한기는 C호텔 이그제규티브 룸 소파에 반쯤 누워 채널을 돌렸다. 유정은 여유를 부리는 박을 바라보았다. 다른 실종자 부모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했다는 사실보다 넘어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길 안쓰럽게 보기 시작했다는 게 신비로웠다. 방송에 나온 뒤 휴대전화로 오는 각종 연락들도 불가사의하기 그지없었다. 유정의 꽈배기 집을 유심히 봐왔다는 사람은 어찌 그리 많은가. 피트와 데이트한 여자들은 왜 그리도 많은가. 피트는 로미 말고 여자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는데. 


케이블 뉴스에서는 여행 가이드가 라오퉁족 화전마을을 지나다 로미와 피트를 봤다는 소식을 전했다. 백인 남자는 약물에 취했고 동양 여자는 승려들과 속삭이고 있었다고. 유정은 행사에서 받은 남우의 전단지를 딱지모양으로 접은 뒤 샤인 머스캣이 담긴 박스를 열었다.


유정은 유정으로 돌아왔다. 결코 기름내를 가릴 수 없는 사람. 본 지 사나흘도 채 되지 않은 박을 향해 치마를 허벅지까지 들치고 무릎에 포비돈 좀 발라줄래요, 안 아프게, 라고 말하는 사람. 포비돈이 환부에 닿자 존나 아프다고 저속한 욕을 하는 사람.


-불쌍한 복숭아 인형이 진흙을 다 뒤집어썼네.


그녀가 웃었다. 웃는 절정의 순간에 늙은 남자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는 사람. 그러나 호텔 문을 열고 외부인이 들어오면 웃음을 멈추고 눈썹을 찌푸리는 사람.


망언으로 지지율이 폭락 중인 야당 정치인, 인권을 수호한다는 소수당과 서울시 관계자들 몇이 찾아왔다. 박한기가 문을 반절만 열고 아롬 씨 어머님께서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그들에게 유정의 컨디션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건강식품과 생필품, 당 페이스 북에 아롬 양 실종 전단지를 올린다는 조건을 가상 화폐로 내걸고 유정과 인터뷰를 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인권운동가 위주로 구성된 어느 당에서는 홍보비로 107만원을 지출했다. 이틀 뒤 루앙프라방행 이코노미석 비행기 표를 준 것이다. 


이그제규티브 룸은 간이 프레스룸이 되었다. 유정은 기자들과 구청장 후보 정치인들, 선물을 가져온 시민들, 팬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허락했다. 그녀는 복숭아 인형을 들고 맨발에 호텔 슬리퍼를 신은 채 사람들을 맞이했다. 노란 고무줄로 묶은 머리와 갈라진 입술, 거스러미 돋은 손톱은 불쾌함보단 신뢰를 주었다. 볼륨을 낮춘 티브이에서 로미와 피트 이야기를 하는 것이 희미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흘끔대다 새로운 소식이 없자 이야기를 재개했다. 그들이 집중한 건 상황에 압도되어 반쯤 실어증에 걸려 인형을 품에 앉은 전유정의 모습이었다. 애처롭고, 우아하면서도 유아적인.


동시에 겸손한 태도로, 그녀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는 상황이 독특했다. 사람들은 꽈배기 장수인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입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입 대신 손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개수를 맞추어 꽈배기를 건네는 손으로. 4년 전 구청장 선거유세를 하러 가게를 들른 정치인들 몇이 그녀의 하소연을 듣는 척 했지만 시선은 전부 카메라에 향한 채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통속적인 숙어를 이토록 실감하다니. 그녀가 한 소녀가 자필로 로미에게 쓴 편지를 받아들며 울음을 참는 척 했다. 도저히 눈물이 나오지 않는데 어떡하지 싶은 순간 기자와 포토그래퍼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후즈 더 넥스트 위너’ 심사위원 두 명과 PD, ‘소녀들의 시간’ 멤버 네 명, 탈락한 연습생들, 은하 양이 방문했다. ‘소녀들의 시간’의 미니앨범은 차트 꼭대기에 올랐고 해외가수들과의 협업도 준비하는 중이랬다. 그러나 사진사들 모두 은하 양을 찍었다. 은하 양은 심사위원 뒤편에 서서 두 손을 맞잡고 말이 없었다.


로미를 지지했던 심사위원 중 한명은 카모마일 차를 마시는 유정에게 직접 찻잔 받침대를 대주거나, 차가 식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찻잔을 감싸기까지 했다.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이었다. 유정보다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면서, 사회적 정서적 하층민인 유정의 시종을 자처했다. 


아이돌 소녀들은 제인 오스틴 소설에 나올법한 몸짓으로 조신하게 손을 모으고 구석에 섰고 가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사생팬 양 양은 유정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한꺼번에 여섯 줄기의 눈물을 흘렸다. 누구는 캐시미어 머플러를 어깨에 둘러주었다. 누구는 금실딸기 한 박스를 선물했다. 유정은 로미가 만들어준 인공추모실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것이 공식대리인인 자신 위주로 돌아갔으니까. PD가 말했다. 


-로미 양을 위한 작은 콘서트를 열기로 했어요. 급하게 내일.


내일, 까지만 듣고 유정은 온 몸을 떨며 손사래를 쳤지만 손짓이 공연에 대한 승인이라는 건 모두가 알 것이다. 그녀가 손을 가슴팍에 얹고 두 눈을 연신 깜빡이며 눈물을 삼켰다. 숨을 내쉴 때 마다 유정의 말라빠진 가슴뼈가 드러나는 걸 보고 은하 양은 무슨 말을 하려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가만히 있길 택했다.


유정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또 장난전화나 쓸모없는 제보이겠거니 하고 전화기와 인형을 양 손에 들었다. ‘후즈 더 넥스트 위너’팀 역시 파장 분위기를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사위원 중 한명은 정말로 조촐한 자리라고, SNS로만 공연 정보를 올릴 테니 부담 갖지 말고 꼭 참석해달라는 말과 함께 박한기의 손을 마주잡았다. 유정은 간단한 끄덕임으로 그들을 배웅한 뒤 베란다로 나갔다.  


-로미는 북한의 사주를 받고 대통령의 비리를 덮으려 기획 도피했다.


전화기 너머 기계음이 들렸다. 욕을 내뱉기 전 등 뒤로 기척이 들렸다. 내내 말이 없던 은하 양이 막 베란다로 들어왔다. 아이의 얼굴은 오랫동안 물속에 담갔다 건진 것만큼 부었다. 부풀어 오른 얼굴과 손발 속에 슬픔이 고였겠지. 은하 양은 유정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벽에 바짝 붙은 채 바닥타일을 내려다보았다. 은하의 뒤로 해가 저물었다. 구름이 벨벳처럼 보였다. 아이돌 소녀들은 주위 반경을 모두 사랑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아무리 슬플지라도. 


-저 때문에 언니가 라오스에서 무당이 된 것 같아요. 죽었다면 저 때문에 죽은 것 같아요. 오해 아니에요. 제가 안무를 따라했어요.


은하가 눈을 감자 농도 짙은 눈물이 흘렀다. 유정은 은하를 은고 테라스 너머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채도 높은 푸시아 색으로 변했다. 고층빌딩 꼭대기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선거운동 소음에 지역주민들이 고통 받는다는 헤드라인이 지나간 뒤 항상 나오던 로미의 프로필 사진이 나타났다. 짙은 자주색 배경에 노란색 라즈베리처럼 장식된 빛은 로미의 미소와 어울렸다. 아이돌 소녀들은 주위 반경을 모두 사랑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이곳에 없을지라도.


유정은 침대에 누워 유튜브에 로미를 검색해 ‘2022TRNSMT’라는 영상을 클릭했다. 아이는 글라스고 그린파크에서 비피 클라이로의 음악에 맞추어 정의할 수 없는 몸짓을 했다. 그건 춤이 아니었다. 내달리거나 굴곡진, 일시 멈추거나 뛰어오르는 선의 움직임이었다. 로미는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 없이.


비피 클라이로를 가까이서 볼 수 없는 관객들은 대신 로미를 보았다. 환성과 욕설이 중첩되었다. 거칠지만 부드러운, 역설적인 스코티시 악센트는 로미의 춤과 잘 어울렸다. 업로더는 영상상세설명에, 이 소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해, 라고 적었다. 유정 역시 업로더처럼 로미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유정은 사흘 전 까지만 해도 꽈배기장수였던 자신이 사람들이 말하는 특정한 개념의 원형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꽈배기를 꼬고 튀기고 포장하고, 기름때 묻은 돈을 정산하며 정신 나간 딸의 한국행 비행기 표로 이번 달엔 얼마나 나갈까 걱정하던 자신이 말이다. 


만약 아롬이 영영 돌아오지 않고 라오스의 미지 속에 숨는다면 유정은 평생 실종된 아롬의 엄마이자 실종 피해자로 기억되고 이미지로 먹고 살 수도 있겠지. 신비로움의 베일을 두르고. 강의를 나가거나 재단에서 한 자리를 얻지 않을까. 지난 20년 동안 반죽한 밀가루는 몇 톤이고 튀겨나간 꽈배기는 몇 만 개일까. 수 톤의 기름과 수 만 개의 꽈배기는 유정의 탄탄한 서사가 되었다. 유정이 액정을 문질렀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베개 안에 밀어 넣고 전등을 껐다. 공기청정기가 듣기 좋은 소음을 냈다. 기다란 소파 위에는 선물 박스가 쌓였다. 아롬이 사라진 게 꼭 나쁜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밤새 전화가 울렸지만 듣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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