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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나 Oct 18. 2024

단편소설- 금아롬이 [5]

-전화 끊길 수도 있어. 엄마. 돈 보내줘.


-나 이제 꽈배기 안 튀겨.


전화를 끊었다. 화장실 문을 밀고 나가자 로미와 피트의 현수막이 대기실 앞에 걸렸다. 사람들이 군데군데 얼룩처럼 뭉쳐있었다. 두 사람의 정체를 모르는 이가 현수막을 보았다면 누구라 짐작할까. 보니 앤 클라이드? 이안 브래디와 마이라 힌들리? 트리스탄과 이졸데? 박한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그녀는 현수막을 바라보았다. 나는 가짜샤먼인 로미도 정글을 헤맨 로미도 가수인 로미도 꽈배기 집에서 일하던 로미도 아무도 몰라. 박한기도 전화벨 소리를 들었는지 물었다.


-쓸 만한 제보?


-도무지 없네요.


박은 유정의 입술에 삐뚤게 칠해진 립스틱을 새끼손가락으로 닦았다. 그가 처음으로 유정을 향해 웃어보였다. 라미네이트한 이빨은 깨끗한 에나멜 같았다. 대기실 앞에 박이 출입을 허락한 소수의 기자들과 물에 젖은 수선화와 스토크를 한데 엮어 만든 꽃다발을 든 젊은 남자, 목에 거는 카메라를 든 여자와 경호원 같은 커다란 남자들이 있었다. 유정이 꽃을 받아들고 향기를 삼키자 박이 문을 열었다. 


수트에 배지를 단 사람과 막 샵에서 머리를 하고 온 사람들, 존재와 명패가 묵직한 사람들이 여럿 앉아있었다. 대기실 공기의 무게가 느껴졌다.


-아직 따님께 연락이 없으신지.


배지를 단 남자가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남자가 유정의 어깨를 감쌌다. 그는 라오스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여 현지 경찰들의 협조를 요구하겠다고, 이번 정부와 여당을 믿어달라고 나직이, 그러나 잘 들리게끔 말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관객석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간접적으로 들렸다. 빛이 동공을 때린 탓에 암전이 인 듯 사위가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돌아오자 방 안의 모든 것이 반들반들한 자개처럼 무지개 색으로 빛났다. 


촬영을 위해 자리를 옮기려고 할 때 주머니에서 종이가 떨어졌다. 딱지 모양으로 접은 김남우군의 실종 전단지. 유정은 종이를 들어 골똘히 바라보다 쓰레기 통 깊숙이 넣었다. 레아가 첫 소절을 불렀다. 유정은 스텝의 지시에 따라 카메라의 붉은 빛을 응시했다. 이제 첫 여권을 받을 거고 내일 라오스에 갈 거다.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참았다. 참는 건 일도 아니었다. (끝)



본 단편소설은 2021년 경 한 인터넷 웹진에 업로드되었으나, 웹진 운영이 중단되어 웹 페이지가 사라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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