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승부에 걸으라고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복서가 외쳤다.
PSG 공식 소셜 미디어에 12월 29일의 극적인 승리에 관한 헤드라인이 올랐다. 그다음 피드에는 1월 5일에 한국에 방문해 친선 경기를 할 예정이라고 올라왔다. 돈도 많은 새끼들이 얼마나 돈을 더 벌려고? 탐욕에 절은 간판스타가 속한 구단은 행보도 똑같군.
너의 인생은 탐욕과 부패로 찌들었어.
씨발. PK로 골 넣은 게 뭐가 대단하다고, 그걸 골이라고 쳐야 하냐?
씨발놈, Connard. 꺼져, Barre-toi. 씨발, Merde.
나는 작업실에서 다리를 절며 나오며, 아픈 와중에도 음바페의 인스타에 댓글을 달았다.
불특정 다수가 댓글로 나를 비웃었다.
꼬나, 바흐-투아, 메흐드. PSG가 스트라스부르에게 역전승한 날 이후 나는 음바페의 인스타에 달았던 단어를 매일같이 읊으며 일했다. 후드와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차단하고 싶었다. 민수 형은 우리 집 정원 앞 화분 밑에 쪽지와 지퍼 백을 숨겨 놓았다. 나는 바지와 속옷 사이에 지퍼 백을 숨기고 쪽지에 적힌 좌표로 향했다. 좌표로 향하면 또 다른 쪽지가 있었다.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뒤에는 꼭 태워야 했다.
쪽지는 거의 매번 이렇게 쓰였다. ‘지퍼 백을 공중화장실 변기 수조에 숨겨.’ 왜 하필이면 변기일지 의아했다. 민수 형은 내 친형이 비데 회사에서 앓아 가며 근무하는 사실을 아는 걸까. 그는 친구들, 동생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도박 모임을 열다가 어떤 진리를 발견한 게 아닐까. 고결한 존재란 내가 아니라 민수 형일지도.
내가 매일 반복했던 꼬나, 바흐-투아, 메흐드라는 중얼거림은 L너겟이나 복서가 내 뺨을 갈겨서 그런 게 아니었다. 곧 한국에 올 음바페에게 한 말도 아니었다. 도박에 돈을 걸지 말고 성실히 근무하라는 민수 형의 명령에 대한 나의 소심한 혼잣말이었다.
나는 일하기 싫었다. 주기적으로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하는 게 싫었다. 지퍼 백을 던지는 건당 삼만 원을 받기도 싫었다. 혼자 다니는 게 싫었다. 친구들과 어떻게라도 어울려 보기 위해 시작한 축구 토토였다. 나는 친구가 아닌 이천만 원어치의 지퍼 백과 함께 골목을 걸었다. 내 손이 붙잡은 건 친해지고 싶었던 애들의 배낭 손잡이나 옷자락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만 이십일만 명을 죽였다는 합성 마약이 담긴 지퍼 백이었다.
나는 지퍼 백을 좌표 장소에 숨기고 공중화장실로 나오며 매번 계산했다. 내가 오늘 하루에만 몇 건을 배달했고 총 얼마를 벌었는지를. 가끔 배달하다가 복서와 마주쳤다. 복서는 내 행동거지가 느리다고 했다. 이렇게 일하다가는 죽을 때까지 빚만 갚겠다고 덧붙였다. 12월 29일에 봤던 감금된 녀석 역시 나 같은 드라퍼였는데, 녀석은 일주일에 삼백오십, 한 달에 천을 벌었다고 했다. 내가 복서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감금당했어?
-천만 원을 어떻게 벌 수 있는지 알게 된 거지. 그래서 L너겟을 배신했고.
-자살한 애는 왜 죽었어?
-말 안 들어서 우리가 인터넷에 걔 신상을 풀었어.
-드라퍼로 일하면 자살하거나 감금당하는 거네?
복서가 멍청한 표정을 했다. 나는 복서와 계속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혼자 있기 싫었으니까. 떠나려는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말했다.
-만 원만 빌려줘.
복서가 말을 멈추었다. 복서가 나를 마주한 이래 가장 조용했다. 그는 뒷주머니에서 오만 원 권 한 장을 꺼내 내게 주었다. 그는 웃은 뒤 나를 뒤로하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는 합법 프로토 사이트에 접속해서, 복서가 준 돈을 1월 2일 열리는 랑스와 PSG 경기에 걸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프로토 사이트의 최대 베팅 금액은 고작 오만 원이었다. 오만 원으로 도대체 무슨 돈을 버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꼭 경쟁이 좋은 것처럼 말했다. 대학이고 수시고 학업 평가고 다 경쟁 구도였다. 엄마 아빠가 밥차를 끌고 전국을 도는 것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합법 도박 사이트에서 베팅 가능한 최대 금액이 오만 원이라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라인업에 메시와 네이마르는 없었지만 PSG 승에 걸었다. 어차피 나는 음바페의 행운에 패배해 마약 드라퍼 신세로 전락했다. 음바페의 탐욕이 나의 행운을 굴복시켰다. 빚을 갚을 동안만은 아주 얌전하게, 국가에서 정해 준 소정의 금액으로 음바페의 운을 따르기로 했다. 음바페야. 너의 운으로 내가 생활비라도 벌게 해 줘. 너를 욕해서 조금은 미안해. 나는 이미 한국 인터넷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지. 프랑스 인터넷에까지 내 악플이 퍼졌다고 들었어. 나도 알아. 프랑스 인터넷에 내 인스타그램 악플만 모아서 커뮤니티에 돌고 있다며. 내가 엄마랑 프랑스까지 가서 한인 축구 유학 에이전트에게 꼬박꼬박 유로를 입금하던 시절,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도 인터넷에 돌고 있다며.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은 불에 타지 않았지.
2023년 1월 2일 새벽 네 시 반이 되니 저절로 눈이 떠졌다. 침대에 누운 그대로 휴대전화로 어플을 켜 경기를 기다렸다. 두 시간 뒤 경기가 끝나고 나는 벽 쪽으로 바짝 붙어 누웠다. PSG가 졌다. 아침 여섯 시 사십 분이 되자 형이 노크한 뒤 굿모닝, 형 갔다 올게, 달콤하게 말했다. 나는 견고한 콘크리트 벽에 이마를 댔다. 벽의 굳건함이 내 머릿속에서 음바페의 근육으로 변형되었다. 새벽 네 시부터 여섯 시, 두 시간 동안 콘크리트 같은 견고한 근육과 실력을 보유하고도, 메시와 네이마르가 없다는 이유로, 랑스의 홈에서 지지부진했던 음바페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는 네이마르가 건네준 공만 낼름 먹는 먹튀잖아. 스물네 살에 퇴물 된 놈. 발롱도 없는 놈.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가 밤이 될 때까지 집요하게 쳐다본 건 경기 하이라이트와 미국 농구 선수와 함께 놀러 다니는 음바페의 사진이었다. 좋냐. 재밌냐. 너 때문에 누가 오만 원을 잃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봤냐. 형의 굿 나잇 인사를 듣고 나서야 종일 밥을 안 먹었다는 걸 알았다. 휴대 전화에서 랑스 전 하이라이트가 재생되고 있었다. 필드 위에 서 있는 음바페의 뒤로 맥도날드 간판이 보였다. 배가 고팠다.
음바페는 너무나도 행복했고 행복했으며 행복할 것이고 나는 아니었다. 그의 이름과 경기 스탯은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나와 생일을 공유한, 카메룬 이민자의 아들인 킬리언 음바페 로탱은 영원히 위키피디아에 위인으로서 남을 것이고 나는 파리까지 날아가서 같은 한국인에게 사기당한 소년으로 남을 것이다. 내 이름은 위키피디아가 아닌 경찰 수사 기록 장부에나 쓰였겠지. 이 모든 걸 인정하자 내 자신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몸의 피와 근육과 살, 지방이 전부 빠져나가듯 오한이 서렸다. 누군가 내 몸을 치면 텅 빈 소리가 날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내가 아는 모든 욕과 패륜적인 문장을 써서 댓글을 달았다. 악플을 여러 개 달았어도 텅 빈 몸은 여전히 추웠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어색한 번역문으로 나를 말리는 댓글을 달았다. 난 계속해서 벽에 이마를 부딪쳤다. 다리가 저렸다. 내 육체를 무언가로 꽉 채우고 싶었다. 욕으로는 소용이 없었다.
랑스 전에서 잃은 오만 원은 그동안 날렸던 돈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소액이었다. 나는 반복해서 이마를 벽에 박았다. 금액의 타격감은 뜨거워지는 이마의 고통만큼이나 컸다. 오만 원을 메꿔야 했다. 오만 원만 메꾸면 안 됐다. 오백만 원, 아니 오천만 원, 오백억으로 메꾸고 싶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람막이 속에 항상 넣고 다녔던 염산 병을 꺼냈다. 휴대 전화 카메라로 염산이 담긴 병을 손으로 잡은 장면을 찍었다. 약국에서 산 빨간색 염산 통을 열어 유리병에 마저 채우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내 인스타에 사진과 동영상을 올린 뒤 이렇게 썼다.
킬리언 음바페. 1월 3일, 네가 인천공항에 입국하는 순간 얼굴에 염산을 뿌릴 거야. 다치고 싶지 않으면 한국에 오지 마라.
나의 감정을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했다. 구글에 파리 시장에게 편지 쓰기라고 검색해 사이트에 들어갔지만, 일 년 동안이나 파리에서 허송세월했음에도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불어 때문에 손에 힘이 빠졌다.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레딧 파리 생제르맹 풋볼 클럽 페이지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과 동영상을 그대로 올렸다.
프사 없는 계정이 내게 인스타 DM을 보냈다. 드러운 손가락으로 싸지르는 헛소리 좀 당장 지워. 내가 대답했다. 장난이야. 비공개 계정주에게 답한 장난이라는 대답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 장난이었다. 진심이 아니었다. 모든 게 장난이었으면 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다. 내 빚도, 오만 원을 잃은 것도, 혼자 집에 있는 것도 그냥 신의 장난이었으면 했다.
장난이야. 내가 DM을 한 번 더 보냈다. 대답이 없었다.
음바페가 새 피드를 올렸다는 알람이 와 급하게 휴대 전화 표면을 쓸어내렸다. 내 지저분한 지문 자국 때문에 프랑스의 슈퍼스타, 미친 스타성의 천재 축구 선수 음바페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엄지 검지를 교차해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멘트는 이랬다. 한국 팬들을 만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의 안전한 배경이 보였다. 난 궁금했다. 만약에 전쟁이 나서 공중전을 치러야 한다면 말이야, 비행기에 있는 승객 중에서 음바페부터 구출되겠지? 휴대폰을 벽에 던졌다. 액정에 금이 갔다. 새벽 네 시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