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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나 Oct 18. 2024

2024년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콩코르드 [3]

Studio album by Black Midi,Released15 July 2022, LabelRough Trade


민수 형의 어깨 너머 텔레비전에서 네이마르가 등장했다. 민수 형은 화면을 흘끔대며 바닥에 앉아있는 애들을 한 명씩 가리키며 말했다.


-얘는 PSG가 이길 거래. 쟤랑 쟤도 그렇대. 슛돌이 너만 무승부에 걸었어.


바닥에 앉은 아이들은 말없이 일에 집중했다. 아이들은 전기 저울에 펜타닐 패치의 중량을 잰 뒤 일제히 지퍼 백에 담았다. 나는 민수 형에게 저번에 본 애랑은 이제 안 놀기로 했냐고 물었다. 민수가 대답했다.


-걘 자살했어.


나는 선글라스를 벗고 민수를 멍하니 보다 눈이 마주치자 피했다. 민수가 말했다.


-어제 뉴스 안 봤어? 친구가 안 알려 줬어?


-뉴스는 다 구라야. 


내가 대답했다. 나는 민수를 애써 무시하며 티브이 화면에 비추는 네이마르의 지구본 같은 푸른색 눈동자와 민수의 아이들의 손등과 손목, 얼굴 전체에 퍼진 멍 자국을 번갈아서 보았다. 민수 형은 빈백 소파에 편하게 기대앉아 나를 보고 말없이 웃었다. 음바페는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나대기 시작했다. 민수는 대마초도 담배도 전담도 술도 하지 않았지만 방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미친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눈길을 돌려 탐욕에 절은 음바페의 달리기에 집중했다. 


음바페는 늘 그랬듯 수비수를 부수며 냅다 공을 후렸다. 골은 들어가지 않았다. 필드 바깥으로 튕겨 나간 공이 마치 내 귓속으로 들어온 듯 크게 구르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틀어 놓은 시끄러운 음악이 중계진의 목소리를 덮었다. 노래의 가사로 쓸모없는 자, 죽은 자가 나왔을 때 나는 내 자신을 떠올렸고, 길들일 수 없는, 이라는 단어와 함께 기타가, 베이스가, 색소폰이, 드럼이 무성하게 자란 대마초 잎 모양으로 중첩되었다. 삼원색 사이키 조명을 반사하는 미러볼을 감싼 수천 개의 거울 조각이 모양이 벽에 비추었고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오르자 네이마르가 프리 킥을 찼다. 공이 포물선 모양으로 공중을 휘어 마르퀴뇨스에게로 향했다. 그가 헤딩으로 골을 마무리했다. 


작업실이 조용했다. PSG에 돈을 건 아이 중 딱 한 명만 힘없이 웃었다. 나는 민수 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형은 비즈니스맨답게 팔짱을 끼고 앉았다. 나는 음바페를 싫어했지 결코 네이마르와 마르퀴뇨스 너희 둘을 싫어한 적도 없고 악플을 단 적도 없는데 이런 짓거리를. 민수 형이 내게 가까이 와 뺨을 살살 때렸다. 형이 말했다.


-슛돌이. 빚 갚을 수 있겠어?


-아직 전반 십오 분인데.


한잔해. 형이 덧붙였다. 나는 위스키 잔을 손에 쥐었다. 내가 토 나올 정도로 쓴맛의 위스키를 마셨는지 아니면 잔 자체가 비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짐승 소리를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마르퀴뇨스가 자책골을 넣어 1:1 동점이 되었다. 전부 봉합한 수십 개의 지퍼 백을 박스 안에 넣던 아이들도 바보같이 웃었다. 그중 한 명에겐 앞니가 없었다. L너겟과 복서가 나를 껴안았다. L너겟이 슛돌이는 승부의 천재라고 소리쳤다. 나와 복서와 L너겟 셋이 끌어안고 바닥이 굴렀을 때 네이마르는 할리우드 액션으로 퇴장당했다. 화면에 음바페의 등이 보였다. 그의 등번호인 7은 행운의 숫자였다. 친형이 준 백팔십만 원의 일곱 배는 그러니까 얼마였고, 하여간 대단한 돈이었다. 민수는 여전히 빈백에 앉아 있었다. 그는 포카칩을 씹으며 화면에 집중했다. 나는 그가 진지해진 게 혹시 내게 오프라인 축구 토토 사업을 제안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예측해 보았다. 나는 예측과 도박, 승부의 천재니까.


한 시간 뒤 나는 L너겟과 복서, 민수 형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민수 형의 아이들은 지퍼 백 배달을 나갔다. 복서는 내 손을 등 뒤로 모아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내 입에는 복서의 양말이 물려 있었다. 내 후드 앞주머니에 염산이 담긴 유리병이 있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항상 가지고 다니던 건데 쓸모가 없었다. 복서가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나는 복서가 입은 검은색 후드에 핑크색으로 쓰인 HELLFIRE라는 영어 단어를 읽었다.

1:1 동점 이후 스트라스부르의 어떤 정신 나간 선수가 PSG에게 페널티 킥을 허용했다. 페널티 킥의 주자는 역시나 음바페였고 그 이후의 상황은 설명하고 싶지 않다. 내가 열받는 건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 페널티 킥 판정이 나왔다는 것이었으며, 슈터가 음바페라는 거였다. 


이것은 마치 정교하게 이루어진 사기극 같았다. 네이마르는 왜 굳이 퇴장당한 거야. 쉬고 싶어서? 아들이랑 시간을 보내려고? 복서가 운동화로 내 턱을 내리쳤다. 턱에서 전기가 올라 머리통이 무거웠다. 나는 고개를 바닥에 박을 수밖에 없었다. 음바페의 땀에 젖은 유니폼에 그려진 7이 거꾸로 보여 숫자가 아닌 것 같았다. L너겟이 휴대 전화에 숫자를 적어 내 이마를 향해 들이댔다. 그 숫자 역시 거꾸로 보였다. 얼마를 빚졌는지 계산할 수 없었고 읽을 수도 없었다. 민수가 바닥에 앉아 나와 시야를 맞추었다. 형은 복서와 L너겟에게 그만 때리라고 했다. 민수가 말했다. 


-슛돌이가 빚을 갚을 방법이 있어.


내가 양말을 물고 되물었다.


-나와 비즈니스를 하면 돼. 내가 주는 지퍼 백을 배달하면 끝이야. 그럼 빚이 사라져. 대신 일하는 동안 도박은 하면 안 돼. 빚이 늘어나잖아.


내가 웅얼대자 민수가 내 입에서 양말을 꺼냈다. 내가 물었다.


-축구 토토만 안 하면 돼? 바카라랑 사다리 타기는 해도 돼?


민수가 고개를 저었다. L너겟과 복서가 내 어깨를 들어 제대로 앉혔다. 민수는 성실하게 일한다면 이천만 원은 한 달 내로 갚을 수 있다고 했다. 성실하게 꾸준히 일하는 것. 내가 비웃던 친형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민수 대신 L너겟이 내게 업무를 브리핑했다. 내가 민수 형과 L너겟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는 그들 밑에서 공식적으로 일해야 했다. 내가 형들에게 줘야 할 서류는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초본, 학생증을 들고 얼굴을 찍은 사진, 부모님과 형의 연락처, 내가 가진 모든 소셜 미디어의 아이디였다. 내가 할 일은 방과 후 민수가 지정해 주는 특정 장소로 가서 쪽지를 찾고, 쪽지에 적힌 주소로 지퍼 백을 배달하는 것이다. 민수 형이 끼어들어 말했다. 


-우진아. 너는 미래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설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민수가 엄지로 자길 가리키며 말했다.


-인터넷에 자기 기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야.


나는 앓는 소리를 냈다.


-절대 인터넷에 뭘 올리면 안 돼. 우린 인터넷으로 일 안 해. 물론 악플러로서의 네 커리어가 대단하긴 하지만 일할 동안은 인터넷 끊어.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L너겟과 민수 형이 내게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양손을 그들과 맞잡았다. 복서는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댔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문이 하나 있었다. 복서는 팔꿈치로 문을 연신 내리쳤다. 복서에게 응답이라도 하듯 방 안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나는 묻는 눈을 하고 민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민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L너겟이 대신 대답했다.


-쟤는 지퍼 백을 다섯 개 빼돌렸어.


방 안의 녀석이 쉰 목소리로 외쳤다. 


-잘못했다니까.


난 하도 맞은 탓에 내 귀가 먹먹했다. 갇힌 녀석도 나처럼 한참을 처맞았기에 필연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낼 수밖에 없었겠지. 나는 크게 소리쳤다. 


-음바페가 욕심만 안 부렸어도. 그 미친놈이 자기가 찬다고 나대지만 않았어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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