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대학교 조기 졸업 뒤 비데를 제작하는 중견 기업에 취업했다. 매일 사람들의 항문을 깨끗하게 해 줄 공학을 연구하느라 야근했다. 연봉은 일하는 대비 터무니없이 적었다. 나는 형이 받는 월급 삼분의 일을 월드컵 우승 팀 맞추기 도박으로 하루 만에 땄다.
이게 내가 과학을 믿지 않는 이유다. 좋은 대학에 가면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다던 부모님의 말씀이 다 거짓말인 이유다. 결국에 승리한 건 나였다. 내 몸집이 커지는 것 같았다. 이 동네를 장악한 건 나다. 나는 고결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행운과 승무패의 황제다.
월드컵 시상식이 끝났다. 문자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L너겟이 이번 달 말까지 빚진 돈을 갚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라고 했다. 순간 어이없는 같은 생각이 스쳤는데 이렇게라도 내 또래나 형들과 문자를 주고받아서 좋다는 거였다. 같은 반 애들은 나와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내가 이상해서 그런 건지, 내가 다리를 저는 게 창피한 건지.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집을 응시했다. 빌라 앞뜰은 밤과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 어두웠다. 앞뜰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고양이든 개든 L너겟이 나를 해하려고 보낸 미친놈이건 상관없었다. 나는 바람막이 안주머니에 있는 유리병을 만졌다. 유리병에는 염산이 담겨 있었다. 누가 나를 괴롭히면 부어 버릴 것이다.
다음 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신세계로 가서 디올 오블리크 후드를 샀다. 모자란 금액은 몰래 가져온 친형의 카드로 해결했다. 백화점에서 나와서 버스를 탔다. 복서 같은 몸을 한 남자가 내 옆자리에 섰다. 버스 손잡이를 잡은 손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디올 로고가 각인된 커다란 종이 백을 덜렁대며 집으로 향하는 도중 복서가 내 얼굴을 치고 달아나 넘어지고 말았다.
눈두덩이 축구공만큼 부어오른 모양으로 집에 갔다. 형은 아직 퇴근 전이었다. 부모님은 출장 식사 사업을 하셨다. 거의 1년 내내 밥차를 끌고 전국으로 출장 다니셨다. 부모님을 떠올리니 눈에 경련이 일었다. 눈물이 났다. 두통도 심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눈을 문지르며 형이 나를 안거나, 내가 형을 꼭 안으면 내가 가진 문제 중 일부는 쉽게 해결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손을 뻗어 형을 안을 자신이 없었다.
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장롱을 열어 전신 거울에 디올 후드티를 입은 내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친구들에겐 169.5센티미터라고 했지만 사실 내 키는 165센티미터다. 벽에 붙여 놓은 격투기 선수들의 모습과 나를 비교해 보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팔을 벌리고 어깨를 부풀렸다. 선수들처럼 승모근과 삼각근에 힘을 잔뜩 주었다. 헐벗은 격투기 선수와 내 근육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전완근, 광배근, 대퇴사두근, 삼두근, 척추 기립근. 나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느라 쥐가 날 지경이었다. 다리도 어깨너비보다 넓게 벌려 보았다. 거울을 보며 입을 벌려 웃었다. 얼굴 근육이 움직이자 눈꺼풀이 부풀어 올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잇몸과 이빨에 피가 고여 빨간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고통에 나도 모르게 불편한 다리에 힘이 빠져 몸이 삐딱해졌다.
12월 20일은 나와 음바페의 생일이었다. 음바페는 스물네 살 생일을 맞아 생일 초를 부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슬픔이나 아쉬움 같은 걸 찾아보려고 애썼다. 그런 건 없었다. 나는 음바페처럼 앞에 생일 케이크가 있는 것처럼 입김을 후후 불었다. 거울에 비춘 내 모습이 작았다. 무력했다.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후드를 침대에 벗어 던지고 음바페의 피드에 댓글을 달았다. 놀 시간에 공차기 연습이나 해라. 형이 노크했다. 나는 후드를 써 얼굴을 가렸다.
-우진. 생일 축하해.
친형은 타고난 낙천적임을 에너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새벽까지 야근하고도 발그란 광대뼈를 빛내며 동생에게 선물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선물을 받자마자 문을 닫았다. 나는 형처럼 살고 싶지 않다. 비데를 만들고 싶지 않다. 야근하기 싫다. 부모님처럼 밥차를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기 싫다. 형의 선물은 내가 작년에 사 달라고 졸랐던 선글라스였다. 내가 사 달라고 한 브랜드는 아니었다.
다음 날 방학식에 후드와 선글라스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갔다. 애들은 내가 디올 후드를 입었다는 것보다 방학식 내내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선생님들은 나를 볼 때마다 후드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으라고 지적했다.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눈꺼풀이 제대로 감기지 않을 정도로 멍이 크게 든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후드와 선글라스 속에 숨어 있다는 게 편안했다. 얼굴의 일부를 가리니 내게 어떤 신비로움이 감돈 건지 평소에 친해지고 싶었던 애까지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애는 내가 결승전 승부 예측으로 돈을 땄다는 걸 민수 형에게 들었다고 했다. 12월 29일에 하는 스트라스부르와 PSG 경기도 민수 형네 작업실에 가서 돈을 걸고 볼 거냐고도 물었다. 내 주위로 아이들이 몰렸다. 내가 말했다.
-무승부에 내가 가진 돈 다 건다.
음바페가 속한 팀의 승리는 죽어도 보기 싫다는 이상한 고집이 뱃속을 간질였다. 월드컵이라는 국가 대항전에서 상까지 받아 놓고 푸념 어린 얼굴을 한, 주제도 모르는 놈이 속한 팀이 이겨서는 안 됐다.
나는 L너겟에게 삼십만 원을 빌렸다. 이자는 일주일에 오십 퍼센트였다. 돈을 갚지 못한 건 아마 한 달 정도일 것이다. 책상 밑에서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갚아야 할 금액을 세어 보았다. 내 열 손가락으로 계산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큰돈을 걸어야 했다. PSG와 스트라스부르의 경기를 무승부에 걸 사람은 거의 없을 게 뻔했다. 당연히 배당률도 높아지겠지. PSG는 열다섯 경기 연속 무패였으니 비길 때도 됐다. 나는 승무패의 왕이고 황제니까 운을 믿어야 했다. 운은 내 편일 것이다. 친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친구 형한테 비문학 과외를 받고 싶으니 돈 빌려줘. 친형이 대답했다. 얼마? 내가 말했다. 한 달에 육십만 원인데 석 달은 하고 싶어. 나는 형의 입금을 기다렸다. 비록 방학식이었지만 애들이 내게 말을 걸어 줘 좋았다. 29일에 크게 돈을 딴 다면 올해가 멋지게 마무리될 텐데.
민수 형은 12월 29일 새벽 네 시 반에 반포동 작업실로 나를 불렀다. 나는 친형이 일본으로 휴가 가서 사 온 산토리 위스키를 들고 작업실로 향했다. 방학식 때 내 주위로 몰려들었던 애들을 만나면 어떤 방식으로 인사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쨌든 애들이 내게 반응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이상한 댓글을 달면 많은 답변을 받는 것처럼.
연습했던 인사말은 소용이 없었다. 같은 반 애들은커녕 L너겟과 복서, 민수 형의 처음 보는 따까리들이 한데 모여 무언가를 피우고 있었다. 복서가 나를 보고 건조하게 웃었다. 나는 복서와 내가 모르는 형들이 종이에 대마초를 말아 피우기에 열중하는 장면을, 복서의 버석한 이마에 난 사마귀를 응시했다. 방 곳곳에는 핑크색 조명이 있어 정육점 같았다. 사이키 조명이 회전하며 천장에 달린 미러볼을 반사했다. L너겟과 복서는 노래를 틀어 놓고 전담을 피웠다. 내가 모르는 애들은 바닥에 앉아 지퍼 백에 펜타닐 패치를 넣고 있었다. 민수 형이 애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얘가 내가 말한 슛돌이야. 그리고 유명한 악플러래.
내가 아는 척하자 민수가 양손을 비비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무승부에 건다고? 승점도 맞출 거야?
-1:1 무승부.
복서가 휴대 전화를 두드리더니 풀린 혀로 소리쳤다.
-무승부에 걸면 배당률이 일곱 배. 승점까지 맞추면 몇 배지? 기다려.
L너겟이 내 후드를 잡아당겨 소파로 끌었다. 나는 기이할 정도로 고개를 꺾고 잠든 애와 술에 취한 복서 사이에 불편하게 끼어 앉았다. 나는 웃옷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애들에게 보여 주었다. 바닥에 앉은 애들이 내 디올 후드를 보고 멋있다고 했다. 이 후드에는 시퍼렇게 멍든 내 눈두덩이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도 했다. 나머지 눈도 부풀어 오르면 더 멋있을 것 같다고 하자 나는 얘들이 나를 놀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복서가 내가 가져온 위스키 병을 따고 전부 마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