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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 Sep 29. 2024

사람을 읽는 사람들

이것은 사랑

같이 읽자고 꼬박꼬박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달마다 그들과 이야기하려고 시간을 쪼개 글로 채운다. 이 모임에서는 정해진 책을 함께 읽을 뿐 아니라 각자 에세이를 한편씩 써내어 서로의 글까지 읽는다. 책은 다 못 읽어도 에세이를 내야만 참석할 수 있다 보니 일상에서 자꾸만 글감을 찾아다니고 마감일에 쫓겨 글을 쥐어짜는 경험도 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툴게 쓴 글을 보여주고, 혼자 읽어도 재밌는 책을 굳이 같이 읽는 일. 그 쉽지 않은 걸 돈을 내고 한다면?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찾아 나설 취미는 결코 아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점점 세상과 단절되는 것 같았다. 재택근무를 해서 더 그랬겠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에 쫓기다 금세 밤이 되고 꾸역꾸역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는 게 허무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기대될 것이 없어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하루가 씁쓸했다. 멀리 직장을 잡고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은 만나기가 어려워졌고 새로 정착한 동네에 아는 이 하나 없었다. 하루에 유일하게 말을 섞는 회사 사람들과는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처럼 마음 다치는 일이 생기곤 했다. 어쩔 수 없는 줄을 알면서도 어쩔 줄을 몰라 자주 울고 자주 나가 걸었다. 사람을 무서워하다가 혼자가 가장 낫다고 믿어버리기 전에 한 번만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어보자고, 거기도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을 찾자고 생각했다.


책은 혼자서도 잘 읽으니 어려울 것도 아니고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마음이 턱턱 막히고 상념이 쌓여 어깨가 무거워질 때마다 블로그에 긴긴 글로 풀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다만 늘 아무도 보지 않길 바라며 속을 있는 대로 다 털어냈다면 이번에는 누군가 볼 글을 써내는 게 좀 쑥스러웠다. 주어진 글감이 없는 첫 모임에는 무얼 쓸까 고민하다가 똑같은 책을 읽은 사람에게 더 재밌는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소개할 수 있는 글이면 좋겠지,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첫 책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는데, 작가의 아버지는 과학자로서 이 우주에서 인간은 먼지만큼도 의미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법도 조금은 무시해 가며 운전도 막 하고 사람 간의 예의도 신경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사는 사람, 자기 자식에게도 인간은 이 세상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친 사람. 자라는 내내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을 들은 딸은 중요하지도 않은데 왜 살아가야 하는 건지 의문을 가진다.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자유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허무가 된다. 룰루 밀러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에 삶을 다 바친 과학자를 탐구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 나간다.


이 책은 과학 에세이 또는 자서전 혹은 모험 소설로도 읽히는 특이한 책이다. 내게는 작가가 스스로 중요하다 믿고 살아갈 근거를 찾으려 애쓰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읽으면서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 어린 날이 기억났다. 나여야만 해. 믿고 열심을 다했던 순박한 마음에 대해. 사실 세상에는 나여야만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내동댕이 쳐진 경험에 대해 적었다. 살면 살수록 존재가 가벼워지고 , 세상은 나 없이 잘만 돌아간다고 잔인하게 자꾸 알려주지만 그래도 그래도 스스로 중요하다고 믿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쏟아낸 글은 사실 이해받고 싶은 날의 투정이었고 불안을 끌어안으려는 시도였다고. 공백 없이 3,000자가 넘는 글이 되었다. 이걸 누가 읽을까? 의문이었다. 누구라도 읽어주면 좋겠다. 열심히 썼는데. 부끄럽지만 겁이 나지만 한 번쯤 내 마음을 들어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뭔가를 받고 싶을 때는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먼저 내가 받고 싶은 걸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좋다.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글을 적었겠지 생각하며 다른 이들이 올린 글을 한편씩 읽기 시작했다. 얼굴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이름 밖에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들을. 서툴게 마음을 꺼내놓는 글에 짧은 댓글도 적어 보았다. 어쩌면 책은 눈앞의 종이일 뿐이다. 대충 읽는다고 작가가 뭐라 하지도 않을 거니까. 하지만 글을 쓴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 생각하니 왠지 글을 더 조심스럽게 읽게 되었다. 곡해하지 않고, 멋대로 대충 이해하지 않으려고 어느 때보다 천천히 글을 읽다 보니 쓴 이의 이름마저 특별하게 느껴졌다. 쭈뼛쭈뼛 댓글을 다 달고서 은근히 기다려졌다. 누군가 내 글도 이렇게 읽어줄까 하고. 휴대폰을 자꾸 들여다봤다. 엎어두고 딴짓을 하다가도 자꾸 또 들여다봤다. 지잉- 함께 읽는 사람들은 답신이라도 보내는 듯이 내 글을 읽었다.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를 읽는 사람들이 생겼다.


벌써 서른한 편의 에세이가 쌓였다. 거진 3년이 다되어 가는 동안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글을 내고 모임에 참석했다. 과로가 이어지는 날에도 아침부터 진땀을 빼고 일하다 퇴근해서 모임에 달려갔다. 아빠가 허리를 다쳐서 온 가족이 근심하던 일, 오래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쓴 글, 운동을 시작하면서 몸과 건강에 대해 했던 생각, 일하면서 어려워도 끝끝내 지키고 싶은 태도. 누구 앞에서도 꺼내기 민망한 마음들을 길게도 적었다. 어떤 말을 해도 글친구들이 천천히 읽어줄 것을 믿었기 때문에 속을 앓게 하는 것이든 근심이든 기쁨이든 막 꿈틀거리는 의욕이든 글이 될 수 있었다. 서로의 글에 적는 댓글도 점점 길어져서 모임 한번 가려면 하루 종일 멤버들의 글을 읽어야 했다. 이해하고 이해받는 과정이 기뻐서 모임을 다녀오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어찌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오래 사랑에 대해 고민하던 분이 어느 날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 눈물이 터져 나와서 당황스러웠고, 해외로 떠나야 해서 더는 함께하지 못하는 분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한 시절이 끝나버린 듯한 마음이 되었다. 속이 아픈 일을 겪은 분의 글을 읽고 나면 만나는 날에 꼭 한번 꼬옥 안아주고 싶었고 누가 새로운 시도를 하겠다 하면 내가 낳은 자식도 아니면서 그렇게 뿌듯하고 기뻤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 가족의 사랑도 연인의 사랑도 아니지만 이건 분명 사랑이다.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읽는 사람들은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 과학적으로 사람이 중요하지 않은 근거가 수백 수억가지라고 해도 누굴 이해하려는 마음은 이 세상에 중요하다. 이해하려고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그 자신도 중요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도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믿을 수 있게 하니까. 나는 함께 읽으면서 쓰면서 내가 중요한 존재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 믿음을 떠올리면 코가 시큰하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애틋한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글자나 정보가 아니라 사람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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