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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 Oct 11. 2021

경계가 접하는 중국의 선전으로

홍콩에서 머문 지 쉰네 번째 날

    나는 홍콩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고 선전은 홍콩이 아니다. 그렇지만 홍콩과 가장 인접한 중국의 지역으로, 이곳을 돌아보며 중국 본토와 대비되는 홍콩의 특징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날의 여정을 서술하고자 한다.

    달덩이라는 친구가 나를 만나러 홍콩에 온 때였다. 도리와 달덩이와 나는 오랜 친구들로 달덩이가 홍콩에 온 김에 선전에 가서 함께 도리를 만나기로 했다. 달덩이와 홍험 역에서 만나 지하철로 선전으로 이동했다.     홍험역은 나름 교통의 요지다. 홍콩 중심부에 위치해있으며 두 개의 지하철 노선이 지난다. 그중 하나인 하늘색 노선(East Rail Line)을 타고 끝까지 가면 로 우 역 또는 록 마 차우 역인데 두 역 모두 선전과 연결된다. 그렇다고 해서 지하철만 타고 쭉 가서 내리면 바로 중국 여행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서울 지하철로 치면 하남풍산행 열차는 언제 오는지, 마천행 열차는 언제 오는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되겠다



    중국 본토는 비자에 있어 매우 까다롭다. 비자가 없으면 방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선전은 도착비자라는 특수한 제도가 적용되는 곳이다. 로 우 역을 포함한 몇 지정된 장소에서 선전에 사흘 동안 머무를 수 있는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2023년 확인한 바로는 5일짜리 비자가 가능하다) 홍콩에서 선전으로 이동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똑같이 하늘색 노선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록 마 차우 역에서는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비자 발급을 위해 대기해야 하기는 하지만 홍험 역에서 40분만 지하철을 타면 선전으로 갈 수 있으니 홍콩은 이곳저곳으로의 접근성이 정말 좋다. 비자를 받고 대기를 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그때마다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 갔는데 두 번 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대기 인원이 많았다. 로 우 역을 통과하는 데에만 두 시간 정도 걸렸었다.



    표지판이 가라는 대로 따라가다가 시야에서 영단어들이 사라지고 중국어 번체 대신 간체들이 보일 때 진짜로 본토로 넘어왔음을 실감했다. 홍콩의 로 우 역과 중국의 로후 역은 연결되어 있다. 한자는 같은데 광둥어와 보통화의 차이 때문에 영어로 'Lo Wu'와 'Luohu'로 다르게 표기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선전 쪽 로후 역에서 도리를 만나서 선전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라오지에 역으로 갔다. 선전 도착비자를 기다리는 것이 오래 걸려 매우 허기졌기 때문에 바로 밥을 먹으러 쇼핑몰 케이케이 몰의 '와이포지아'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할머니가 밥 먹으래

    와이포지아를 번역하면 외할머니 댁이다. 할머니께서 해주는 음식이 콘셉트다. 이전에 아시아 음악을 다룬 책에서 이 식당에서 대기줄을 서다가 차례가 되면 '할머니가 밥 먹으래'라는 내용의 알림 벨이 울린다고 읽었었다. 콘셉트가 귀엽다고 생각해서 막연하게 이 식당이 궁금했었는데 마침 도리가 이곳에 가자고 했다. 와이포지아 매장에 도착해서도 대기를 꽤나 오래 했기 때문에 며칠 굶은 걸인처럼 먹을 준비가 되었다. 달덩이, 도리와 셋이서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고 물가도 저렴하니 먹고 싶은 것 다 먹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조금 과하게 주문했다. 총 아홉 가지의 요리를 시켰다. 점원이 주문을 받으면서 우리의 외관을 한 번 훑고는 다 시키는 것이 맞는지, 너무 많은 것이 아닌지 물었다. 도리는 자신있게 괜찮다고 답했다. 와이포지아를 번역하면 외할머니 댁이다. 할머니께서 해주는 음식이 콘셉트이다. 이전에 아시아 음악을 다룬 책에서 이 식당에서 대기줄을 서다가 차례가 되면 '할머니가 밥 먹으래'라는 내용의 알림 벨이 울린다고 읽었었다. 콘셉트가 귀엽다고 생각해서 막연하게 이 식당이 궁금했었는데 마침 도리가 이곳에 가자고 했다. 와이포지아 매장에 도착해서도 대기를 꽤나 오래 했기 때문에 며칠 굶은 걸인처럼 먹을 준비가 되었다. 달덩이, 도리와 셋이서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고, 중국은 물가도 싸니 먹고 싶은 것 다 먹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조금 과하게 주문했다. 총 아홉 가지의 요리를 시켰다. 점원이 주문을 받으면서 우리의 외관을 한 번 훑고는 다 시키는 것이 맞는지, 너무 많은 것이 아닌지 물었다. 그렇지만 굴하지 않았다.

중국의 코카콜라


   와이포지아에서 대표적이라는 메뉴들은 모두 주문했다. 홍소육은 꽃빵에 돼지고기를 싸 먹는 메뉴이다. 생선도 함께 들어있었던 것 같다. 새우 당면은 포털 사이트에 와이포지아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메뉴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꼬들꼬들한 당면, 적당히 짭조름한 소스, 부드러운 새우가 잘 어우러진다. 마파두부는 가격이 저렴한데도 맛이 좋아 살면서 먹은 중 가장 맛있었다. 이전까지는 한국에서만 먹어보았으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한국인이라면 마파두부에 밥을 비벼먹어야 하니 볶음밥도 주문했다. 중국에 왔으니 오리도 먹어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오리 고기도 주문했지만 모두 먹지 못해 집에 포장해갔다. 이외에도 여러 메뉴가 있었고 어느 하나 빠짐없이 맛이 훌륭했다. 우리가 그중에서 최고로 꼽은 음식은 의외로 겉으로는 평범해보이는 국수였다. 육수에서 한국에서는 국수에 들어가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한약재의 향이 났다.

 

홍소육

한약재 맛 나는 국수

거한 한 상


   입도 짧은 편이고 음식을 자극적으로 과시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날의 식사만큼은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먹고 지금의 환율로 오 만원 가량 지불하고 왔는데 당시엔 환율이 좀 더 낮았다. 인당 이만 원도 들이지 않고 이 정도의 식사를 즐길 수 있다니 이런 것이 중국 여행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삐죽빼죽하고 요란한 선전의 풍경

   식사를 마치고 소화를 시킬 겸 케이케이 몰에서 동문(Dongmen)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동문은 시장이 위치해있는 번화가다. 도보로 삼십 분 걸렸다.

지도 상으로는 경계 하나를 두고 있을 뿐이지만 홍콩과 선전은 시각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선전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중국이 계획적으로 발전시킨 도시이다. 선전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서울에서는 거리를 걷다 보면 고층 빌딩이 어쩌다 한 채씩 있어 눈에 띈다. 홍콩에도 고층 빌딩이 많기는 하지만 오래된 건물과 고층 빌딩이 공존한다. 그러나 선전의 거리에는 고층빌딩이 난무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가장 큰 이유로는 건물들은 서로가 존재함을 신경 쓰지 않는 듯 통일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선전을 구석구석 모두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가본 곳은 그랬다. 많은 빌딩들이 건축가가 '일단은 크게 지을 거야. 근데 디자인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싶은데? 이 색깔도, 저 색깔도 쓰고 싶은데?' 하며 의식의 흐름대로 지은 마냥 생겼다. 특히 건물 대비 안테나의 크기가 큰 경우가 많고 그 모양도 다양했다.

 

낮은 건물들도 있기는 하다

큰 안테나가 마치 건물을 도깨비처럼 보이게 한다.

선전이라는 도시에 대해 기괴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장면이 그 생각에 힘을 실어 주었다. 오른쪽에 건물은 다른 두 건물을 위아래로 합친 것 같고, 저 멀리에는 주황생 궁전 돔이 있다. 또 그 뒤에는 분홍색 건물들이 있다. 어느 하나 통일성을 찾기가 힘들다.

동문 초입


   길거리에서 탕후루를 사 먹었다. 판매하는 할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달덩이가 탕후루를 먹다 뱉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런데 탕후루의 맛보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위챗페이로 결제한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선전 여행을 준비하면서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정보를 얻기는 했지만 길거리 상점에서도 현금 대신 위챗페이를 요구할 줄은 몰랐다. 홍콩에 가기 전인 2018년에는 한국에서 QR코드 결제가 이제 막 퍼져나가려고 하던 참이었기 때문에 생소했었다.

다행히도 도리는 워킹 비자로 선전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위챗페이를 가지고 있었다. 결제할 일이 있을 때마다 도리가 대신해주고 나중에 도리에게 돈을 주었다. 중국 내에 계좌가 없으면 위챗페이를 만들지도 못해서 도리가 없었다면 알리페이라도 여행 전에 만들었어야 했다. 알리페이는 중국 내에 계좌가 없어도 개설할 수 있다고 들었다만 하루 여행을 위해 새로운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동문 근처에서 만난 아이언맨


   정확히 어디부터가 동문 시장이라고 불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시점부터 거리에 상점과 사람이 점점 많아졌으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중심에 도착하니 정신이 빠질 것 같이 번잡했다. 홍대 앞 거리를 이십 배 정도 강력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홍대 앞 거리만 가도 각 가게에서 트는 음악 소리가 겹쳐 들리고 가지각색 스타일의 사람들이 공간을 빽빽하게 채우는데 말이다. 나처럼 각종 외부 자극에 예민한 사람이 가면 기가 빨려 나오는 곳이다. 여러 가지 상점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음식이 특히 말도 안 되게 저렴했다. 꼬치를 수십 개 먹어도 과일도 한 바가지 사도 몇 천 원 안 나오는 정도였지만 우리는 이미 배가 불러서 눈으로만 구경했다. 돌아다니며 몇 가지를 구매했다. 나무로 된 장식품, 홍콩에 있는 친구에게 주고 싶은 머리 집게, 디즈니 공주 스티커를 샀다. 생각해보면 중국 여행 기념품으로 어울리는 것들은 아니다.

동문 시장에서 맥도널드 건물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동양식 건물에 서양의 대표적인 브랜드 로고가 달려있는 모습이 이질적이면서 잘 어울려 여러 번 바라봤다.

 


나무 그리고 풀 향이 가득했던 선전대학교

    석양이 예쁘게 지기 시작할 때쯤 동문 시장을 벗어나 도리가 교환학생 생활을 하던 선전대학교로 이동했다. 홍콩에서 선전으로 하루 놀러 오는 사람들이 꼭 방문할 정도의 곳은 아니지만 도리가 생활했던 곳이기도 하고 학교의 정원이 예쁘다고 해서 갔다. 아무렴 나와 달덩이는 계획도 없고 중국어도 모르는 중국 여행 바보들인데 도리가 어디든 데려가 주면 넙죽 따라가야 한다. 택시로 이동했다. 이 또한 본토 여행의 장점이다. 차로 삼십여 분 걸리는 거리를 택시로 타고 다녀도 셋이 나누어 내면 요금이 부담스럽지 않다. 홍콩에서 같은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면 미터기를 보며 벌벌 떨 것이다.

    택시를 타는 동안 하늘이 많이 어두워졌을 정도로 오래 탄 것 같다. 그래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창밖에 구경할 거리가 많았다. 케이케이 몰에서 동문까지 걸어갈 때처럼 누가 누가 제일 독특한가 겨루고 있는 건물들만 봐도 시간이 잘 갔다. 바닷가의 도로도 달렸는데 해안선이 매우 넓었다. 해안선뿐만 아니라 모든 길이 홍콩보다 넓었다. 홍콩은 유독 좁고 중국은 유독 넓으니 크게 대비되었다.


선전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물. 금방이라도 UFO와 외계인이 나타나서 안테나와 교신할 것 같다.


    택시 안에서 유명한 텐센트 건물도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텐센트가 어느 정도 규모의 기업인지 잘 몰랐는데도 이 건물을 지을 때는 확실히 돈을 많이 썼겠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멋들어진 고층 건물에서 일하면 무슨 기분일까. 고층에서 멋진 뷰를 보고, 최신식 화장실을 쓰면 일할 맛 날 것 같다가도, 매일매일 사무실에서 가는 기분은 여전히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지루하다가 통장에 찍힌 액수를 보면 개운할까?



   택시 주행이 길어져서 셋 모두 잠시 수다는 쉬고, 휴식 시간을 가지다 보니 어느새 선전대학교였다. 도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 걸었다. 캠퍼스는 매우 넓고 나무가 많아 돈을 지불하고 들어가는 식물원 같기도 했다. 선전을 대표하는 대학교이니 캠퍼스가 클 법도 하다.

선전대학교 기숙사 건물 중 하나


   도리의 말대로 학교에는 널찍하니 여유로운 정원이 있었다. 학교 정원은 여행지로서 그렇게 특별한 장소는 아닐 수 있지만 이곳은 선전 안의 또 다른 나라라고 느껴질 만큼 외부와 분위기가 달랐다. 풀과 나무의 냄새가 공간을 가득 채운 게 큰 몫을 했다. 분명 택시에서 하차하며 해가 거의 다 졌다고 생각했는데, 적도에 가까운 지역이라 그런지 일몰이 끝날락 말락 한 상태로 오래 지속되었다. 하늘이 애매하고 오묘한 빛으로 오랫동안 채워져 있는 게 또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내가 이곳 학생이라면 정원에서 매일 한량처럼 시간을 보내고 싶을 거다.


   일상 안의 비일상 같은 정원을 충분히 즐기고, 또다시 택시를 잡아 캠퍼스를 벗어났다.


엽기토끼 맛(?) 밀크티

   원래 계획으로는 가까운 하이디라오에서 저녁을 해결할 예정이었다. 중국에 갔으면 훠궈 맛집 하이디라오를 한 번은 가야지. 그렇지만 가장 가까운 하이디라오에 도착했을 때 대기시간이 말도 안 되게 길어서 식사는 포기하고 헤이티 매장에 가기로 했다.

   중국의 헤이티 매장에는 홍콩에는 없는 딸기 밀크티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홍차의 씁쓸한 맛을 단맛이 잘 잡아주어 맛있었다. 본토와 홍콩의 헤이티는 메뉴가 조금 다르고, 가격도 물론 다르고, 홍콩 안에서도 매장마다 메뉴가 조금씩 다르다. 달덩이는 과일과 밀크티와 치즈 폼이 함께 있는 헤이티 시그니처 음료를 주문해서 먹더니 엽기토끼 인형 맛(?)이 난다는 충격적인 시식평을 내놓았다.   

   
    헤이티 매장에서 나오자 날이 많이 늦었고, 도리는 달덩이와 나를 택시에 태워주고 집에 갔다. 중국 여행 바보들끼리 알아서 길을 찾아 홍콩에 가야 했다. 로후 역까지는 어찌어찌 갔는데 그 역에서 홍콩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 되는지가 어려워 많이 헤맸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표지판도 없고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도 돌아오는 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말 뿐이었다. 막차를 놓칠까 봐 무서웠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역에서 일하는 젊은 경비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번역기로 길을 물었는데 정말 친절하게도 자신의 대답을 영어로 변환해 보여주어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홍험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문제없이 몸을 싣을 수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배가 고파져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햇반을 돌리고 와이포지아에서 싸온 남은 음식을 먹었다. 직접 담근 양배추 피클도 꺼내 먹었다. 먹으면서 내가 홍콩에 와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피클을 담갔다는 사실이 우습게 느껴졌다. 기껏 해외까지 와서 피클을 담그고 있는 것이 우습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런 사소한 것도 직접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단출하고 빈약한 끼니지만 매번 해 먹을 때마다 성취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정체된 삶을 산다고 생각하다가 해외에 나가면 발전을 한다고 느끼는 게, 이런 작은 성취감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 또한 네댓 달 동안 이런 성취감을 쌓고 평생 해온 것보다 더 많이 견문하며 인생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시기를 만들었다. 한동안 내 인생에 그런 시기는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좋은 경험을 했기에 이후에 그것을 더 이상 갖지 못하는 일상이 힘들기도 했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약에 중독된 사람에게서 갑자기 약을 뺏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최고의 순간들을 글로 정리하면서 그렇게 빛나는 시기가 다시 올 거라는 믿음이 어렴풋하지만 조금씩 생겨난다. 언젠간 나는 또 다른 최고의 순간들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꼭 해외 체류 경험일 필요는 없고 내적인 경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확한 사실보다는 당시 내가 받은 인상과 느꼈던 감정으로 사건을 기억하는 편이다. 선전이라는 도시는 경이롭고 삐죽삐죽하고 기괴했다. 내가 선전이라는 도시에 하루만에 애정을 갖게 되었나 하면 그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지역을 탐방하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몰입도 높은 경험이다. 선전에 내가 몇 달 살아야 했다면 내가 적응을 잘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홍콩 생활 중 하루의 여행으로는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도리 덕분에 이 여행이 순조롭고 즐거울 수 있었다. 중국어도 모르고 중국어 지도도 볼 줄 모르고 위챗페이도 없는데 오로지 친구 하나 믿고 여행할 수 있어 진심으로 고마웠다. 오랜만에 한국어를 쓰며 십년지기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으며 일상의 좋은 환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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