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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 Oct 11. 2021

또 다른 나라 같은 라마 섬

홍콩에서 머문 지 쉰여섯 번째 날

하루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홍콩을 돌아다닌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덩어리 단위로 저장되어 있다. 이 년도 더 흘렀으니 덩어리는 상하기도 했고, 위에 먼지도 많이 쌓였다. 라마 섬 기억 덩어리를 꺼내 들었을 때 아름다운 기억부터 떠올랐다. 라마섬은 평화로우며 한적했고 그곳에서 나는 더없이 알찬 하루를 보냈었다. 그러나 그 기억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케케묵은 먼지도 털어내자 그 하루의 시작은 아름답지 않았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여행에 갔던 기억을 쉬이 미화한다. 

   달덩이가 놀러 와 주어 한국에 대한 향수도 덜어낼 수 있고 고마운 마음이 컸다.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또 달덩이는 여행에 관해 내게 약간 의지했기 때문에 신경을 좀 썼다. 그런데 당시에는 내 개인적인 일상도 꽤나 바빴다. 그래서 며칠간 일상과 여행을 반복하느라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채로 또 여행을 떠나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라섹 수술을 받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눈이 아침부터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보험이 있더라도 타지에서 병원을 가는 건 한국에서만큼 쉽지 않다. 병원 예약을 잡으려 했지만 응급이 아니면 당장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인공눈물을 잘 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인내심을 시험받듯 시간이 흐를수록 나쁜 일들이 하나씩 누적하는 그런 날들이 있다. 나와서 보니 고민 끝에 고른 옷은 너무 더웠고, 돌아가서 갈아입기엔 이미 늦었다. 집을 나서 구글 지도가 알려준 대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타야 할 버스가 정차하지 않고 나를 쌩 지나쳤다. 어이가 없어 주위를 둘러보니 근처에서 공사 중이라 안전상의 이유로 버스 정류장을 잠시 폐쇄한다고 적혀 있었다. 구글 지도는 그걸 몰랐던 거다. 무슨 교통편을 타도 달덩이와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어 버려, 고민을 하다 택시를 잡았다. 

   다들 날 골탕 먹이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택시 기사마저 잘못 만났다. 나는 센트럴의 페리 터미널로 데려다 달라했고, 분명 홍험 역 앞에서 카오룽과 홍콩 섬을 잇는 크로스 하버 터널을 지나가면 금방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망할 택시 기사가 굳이 멀리까지 가서 유턴을 한 후 다시 원래 경로대로 갔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이상한 말로 둘러댔다. 딱 봐도 내가 현지인은 아니니 바가지를 씌운 것 같다. 평일 낮인데, 차도 더럽게 막혔다. 머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김이 밥솥에서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정말 내적으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와중에 택시 창 밖으로 보이는 날씨는 너무나 완벽했다. 맑고 화창하며, 구름이 큼직하지만 부담스럽지는 않게 흐드러져 있었다. 분노를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스리려 애썼다. 


   말해 뭐할까, 택시비는 정말 많이 나왔다. 센트럴 페리 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리던 달덩이가 택시에서 계산을 하는 내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뒤통수를 찍어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사진에서 분노가 깊게 느껴진다. 돈은 돈대로 쓰고, 지각은 지각대로 했다. 스트레스가 가득한데 달덩이에게 미안한 일까지 생기니, 마음이 더 괴로워 이대로 하루가 끝났으면 했다. 그래도 달덩이는 나를 어느 정도 의지하기에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타지까지 왔다. 그 하루는 내가 잘 이끌어야 했다. 


어쩌다 라마 섬

   달덩이는 전날 혼자 온 센트럴을 잘 누비고 다녔다. 란 콰이 펑의 펍과 클럽 방문을 제외하고는 도심에서 할 수 있는 주요한 관광은 모두 한 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홍콩의 자연을 좀 보여주고 싶었다. 청 차우 섬, 라마 섬, 란터우 섬 등을 후보로 삼았다. 포 토이 섬도 좋은 후보였다. 그렇지만 멀기 때문에 제외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제주도, 강화도, 울릉도 같은 섬에 견줄 만한 곳들이다. 사실은 나도 가본 적 없는 곳들이었다. 그렇지만 그간 클리어 워터 베이나 드래곤스 백 등을 여행한 경험을 통해, 홍콩에서 자연을 찾아 여행을 떠나면 항상 즐겁다는 믿음이 마음속에 자라나고 있었다. 그래서 달덩이를 데려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홍콩의 중심인 센트럴에서 페리로 최소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가면 그런 섬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 측면에서도 좋았다. 

   달덩이도 나도 후보군 중 딱히 더 선호하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센트럴 페리 터미널에서 만났을 때,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페리를 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낭만적인 의사결정 방식이다. 페리 시간표는 우리에게 라마 섬으로 가라고, 또 라마 섬 안에서도 용슈완(Yung Shue Wan) 선착장으로 가라고 결정을 내려줬다. 그 결정을 따르기 위해 옥토퍼스 카드를 충전하고 시간에 맞춰 페리에 올랐다. 섬에 가는 페리는 처음이었다. 침사추이와 센트럴 사이를 오가는 스타 페리와는 생김새도 규모도 달랐다. 라마 섬에 가는 페리에는 화장실도 있었다. 사실 스타 페리에도 화장실이 있는데 내가 못 본 건가 싶기도 하다. 

   검색해보니 삼십 분 정도 걸린다 했다. 그동안 혼자 조용히 마음을 다스리고 싶었다. 다행히 달덩이도 나처럼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유형이라, 배를 타는 내내 떠들지 않아도 되었다. 곧 불이 날 듯 펄펄 끓던 머리를 식히고 나니 주변의 풍경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페리는 홍콩 섬의 북서쪽 해안을 빙 둘렀기 때문에, 침사추이와 센트럴 사이를 지날 때와는 다른 각도에서 홍콩 섬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기관사님이 페달을 좀 밟으셨는지 페리 탑승 시간은 실제로 삼십 분보다 짧았다. 라마 섬의 북서쪽 해안가에는 제방이 빼짝하고 기다랗게 튀어나와 있는데 그 제방의 끝에 용슈완 페리 선착장이 있었다. 때문에 선착장에서 바다 쪽을 향해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어떤 방해물도 없었다. 

용슈완 페리 선착장에서, 필름 사진


   센트럴보다는 누추한 페리 선착장을 벗어나, 제방을 따라 걸으며 섬의 첫인상을 탐색했다. 형형색색의 소형 어선들이 바다에 띄엄띄엄 떠있고, 그 뒤로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스탠리 베이의 메인 스트리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라마 섬이 더 시골스러웠다. 스탠리 베이의 건물들이 약간 더 고층이고 새 것이었다. 

제방을 따라 입도 중, 필름 사진


   라마 섬의 모습은, 적어도 이 선착장 근처는 그간 파악한 홍콩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단지 시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전에 여행을 갔던 지역들에서는 '홍콩의 모습은 이런 거구나' 싶었다면, 라마 섬의 모습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는 '여기는 홍콩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홍콩에서 겨우 두 달을 살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오만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홍콩에 사흘간 여행을 한 친구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선착장 근처가 그나마 번화가였는데, 버스는 커녕 차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홍콩의 시그니처 사운드인 신호등이 따르릉 울리는 소리도 물론 들을 수 없었다. 각종 매점이나 음식점, 주점 등이 샤 포 올드 빌리지(Sha Po Old Village)로 이어지는 길의 양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태국, 베트남, 인도 식당이 가장 많이 보였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의 어느 낡은 리조트촌에 온 듯했다. 동남아시아 요리가 많은 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에 상주하는 동남아시아인들이 많았다. 홍콩의 다른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동남아시아인은 주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돕는 보모들이다. 그러나 이곳은 직업을 막론하고 지역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동남아시아인들이었다. 술집은 서양식으로 차려진 곳이 많았으며(이 점은 도심과 비슷했다), 심지어 한국 치킨을 파는 곳도 있었다. 바다 근처라 그런지 해산물 레스토랑도 여럿 보였다. 입맛이 당겼지만 가격이 착하지 않아 포기했다. 질 좋은 해산물은 한국에서 훨씬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샤 포 올드 빌리지 사이를 걷기 전에 매점에서 거대한 비눗방울을 만들 수 있는 장난감을 구매했다. 여행지, 특히 바닷가에서 비눗방울을 불면 재밌다. 비눗방울을 부는 일 자체도 재미있고, 내가 만들어 낸 비눗방울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이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하다(?). 비눗방울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장난감을 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 때도 있다. 아직 뺏긴 적은 없다. 비눗방울을 들고 있을 때 친구가 사진을 찍어줬는데, 사진 속의 나는 해맑게 웃고 있다. 아침의 불행을 극복한 얼굴이다. 

   라마 섬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다. 반나절 새에 섬을 모두 둘러보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샤 포 올드 빌리지의 오솔길을 따라 걸어 라마 발전소 근처의 훙싱예 해수욕장(Hung Shing Yeh Beach) 정도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샤 포 올드 빌리지에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라마 섬을 홍콩의 동남아시아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우리가 걸은 오솔길은 한적했다. 길의 양쪽에는 나무가 가득했고, 가끔 가다 빌라들을 볼 수 있었다. 빌라는 대부분 주거용으로 보였다. 상점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상점을 운영하는 주인들도 대개 동남아시아인들이었다. 옷과 장신구도 팔고, 기념품을 팔기도 했다. 수공예 제품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 두 군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한 상점은 악기를 팔았는데, 본 적이 없는 악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이국적인 정취를 극대화시켜 줄 작은 타악기를 두 개 구매했다. 하나는 작은 소고처럼 생겼는데, 두 개의 줄이 달려있고 그 끝에는 작은 구슬이 하나씩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소고를 회전하듯 흔들면, 줄 끝에 달린 구슬이 소고를 쳐 소리를 내는 형태였다. 다른 하나는 무지개 빛 막대기에 작은 방울이 여러 개 달려있어, 흔들면 청량한 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악기를 하나 씩 들고 흔들며 나무속을 걸으니, 마치 속세를 떠나 특별한 의식을 치르며 수행길을 걷는 사람들이 된 것 같았다. 다른 한 곳은 수공예 제품을 파는 가게였다. '행복', '건강', '좋아하다' 등의 단어를 부직포에 바느질로 새겨 만든 마그넷을 팔고 있었다.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귀여웠다. 자세히 보니 장애인들이 만든 제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이 가게에서 귀걸이를 하나 샀다. 

아기자기한 마을

Super LIKE!


   한적했다. 새가 우는 소리만 들렸다. 몇 안 되는 관광객이 옆을 지나갈 때야 사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홍콩에서는 조용한 장소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조용한 오솔길을 걸는 게 낯설었다. 난 리안 정원 이후로 가장 조용한 장소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있던 홍험이나 센트럴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낯섦은 불편하기보다는 여유롭고 좋았다. 


훙싱예 해수욕장

   선착장에서 훙싱예 해수욕장까지는 도보로 이십여 분이 소요되지만 구경도 하고 주위를 살피며 걸으니 더 오래 걸렸다. 생각보다 따듯한 날씨에 걷는 게 힘들어질 때쯤, 커다란 라마 발전소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해수욕장에 거의 다 왔다는 뜻이었다. 


   미련하게도 편한 옷을 챙겨 오지 않았다. 입고 있던 바지로는 해변에서 뛰놀기 불편해서 근처의 매점에서 수영용 바지를 하나 구매했다. 해변에서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며 혼자 뛰어다녔다. 아침의 에너지 레벨이 음의 값을 가졌다면 훙싱예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즈음엔 팔십 퍼센트 정도까지는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갈아입을 상의가 없었기 때문에 다리만 물에 담갔다. 파도가 가장 많이 치는 곳에 서서 바닷물이 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훙싱예 해수욕장이 특별했던 점을 하나 꼽자면, 모래가 파도에 이끌려 다니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구름은 공연을 하는 마냥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줘서 계속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미역과 교감


   참, 이 해수욕장에 대해 덧붙일 말이 있다. 나는 라마 섬에 다녀온 지 이틀 후부터 심한 가려움에 시달렸다. 갑자기 피부에 발진이 생기더니 곧 미친 듯이 가려웠다. 살면서 겪어본 적 없는 정도였다. 모기 혹은 산모기 따위와는 비교되지 않았다. 달덩이는 라마 섬에 다녀온 날 밤부터 가려웠다고 했다. 우리는 달덩이의 숙소에 빈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했다. 빈대가 내가 사는 집까지 옮겨 왔을 것을 우려해 비오킬을 사다 뿌렸다. 빈대는 생명력이 질기다는데.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빈대와 싸우는 상상을 하니 더 이상 즐겁게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절망적이었다. 달덩이는 간지러움을 곧 극복했지만, 내 다리는 정말 심각했다. 물린 자국은 점점 많아지더니 오른쪽 다리를 전부, 왼쪽 다리는 반쯤 덮었다. 개수를 세니 오른쪽 다리에는 56개, 왼쪽 다리에는 29개의 물린 자국이 있었다. 달덩이는 우스갯소리로 자신의 여행마다 마가 꼈었걸 내게 넘겨주고 왔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울고 싶었다. 

   긁지 않으면 자국이 좀 진정되었지만 긁지 않고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긁을 때마다 흉이 지고, 양쪽 다리에는 커다란 흉이 여럿 남았다. 주변인들은 모두 내 다리를 보고 경악하고는 한국에 돌아가면 꼭 피부과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렇지만 굳이 피부과에 가지는 않았다. 우습지만 흉터가 탐험가로 성장한 자의 훈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달 뒤 흉터는 대부분 없어졌다. 이 년이 지난 지금 확인해보니 흉터는 사라졌지만 물린 동그란 자국은 아직 남아있다. 지독하다. 

   알고 보니 범인은 빈대가 아닌 샌드 플라이였다. 홍콩에 오랜 시간 거주한 분을 뵌 적 있다. 그분께 다리의 벌레 자국에 대해 말씀드리니 바닷가에 사는 샌드 플라이에게 물린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라마 섬의 샌드 플라이에게 물린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아니나, 경험적으로 현지인은 잘 물지 않고, 유독 외지인을 잘 문다고 하셨다. 샌드 플라이에 관해 검색해보니 한 번 물린 사람은 샌드 플라이가 옮기는 질병에 대해 내성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어릴 때 내성을 갖추어 성인 때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나 같은 외지인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 물리고 고통받는 게 아닌가 싶다. 혹시라도 독자가 미래에 라마 섬을 비롯한 홍콩의 시골 해수욕장을 방문한다면, 샌드 플라이를 꼭 조심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조심한다고 물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온찜질도 좋다고 한다. 

   저녁은 노스포인트의 팀호완에서 달덩이와, 내가 홍콩에서 사귄 친구 안돌과 셋이 먹기로 했다. 라마 섬을 벗어나야 했기 때문에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때쯤 훙싱예 해수욕장을 떠났다. 섬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선착장으로 돌아갈 때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랬더니 오는 길에는 보지 못했던 꽃을 볼 수 있었다. 꽃잎의 색이 쨍하니 예뻤고 모양은 특이했다. 


인생 쌀국수를 만나다!

   많이 걷고 물놀이까지 하고 나니 배가 상당히 고팠다. 팀호완에서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배를 많이 채울 수 없어 간이식당에 들어가 닭봉만 먹었다. 

   닭봉을 먹고 나와 선착장에 다다랐을 땐 해가 거의 다 졌다. 낮에는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아 섬이 한적했지만 해가 지니 거리에 사람이 많아졌다. 퇴근하고 온 것으로 보였는데, 라마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인지 퇴근하고 술을 한 잔 하러 온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주점과 음식점들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하늘은 어스름했고, 가게에서는 불을 밝히고 노래를 틀고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섬이 활기를 찾자 친구가 떠나기 아쉬워했다. 나는 홍콩에서 보낼 날이 더 많으니 다시 오면 되지만, 친구는 다음 날 한국에 돌아가야 했다. 홍콩에 또 언제 올지 모르니 아쉬움을 남기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안돌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속시간을 삼십 분 정도 늦춰 라마 섬의 저녁을 잠깐 즐기기로 했다. 거리를 거닐며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맛있는 쌀국수 냄새가 우리의 후각을 자극했다. 결국 친구와 쌀국수 한 그릇만 시켜 나눠 먹기로 했다. 

   페리에 늦지 않으려면 그렇지 않아도 음식을 빨리 해치워야 하는 상황에 음식이 천천히 나오기까지 했다. 그저 빨리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에 한 술 떠 넣은 순간, 그간 살면서 먹은 쌀국수를 모두 부정당했다. 난생처음 먹는 맛이었다. 지금까지도 인생에서 먹은 중 가장 맛있는 쌀국수이다. 나는 그전까지 고수를 못 먹다가 이 쌀국수를 먹고 고수를 먹을 줄 알게 됐다. 홍콩에 있는 두 달간 고수와 친해지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항상 어려웠었다. 그런데 이 쌀국수는 국물에서 고수 맛이 깊게 우러나 있었는데, 그 향이 전혀 싫지 않았다. 나도 달덩이도 식사에 빠져들었다. 페리 탑승까지 시간이 넉넉했다면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을 터인데, 급하게 나가야 해서 조금은 남겼다. 식당을 나서 선착장으로 뛰어가면서 달덩이와 쌀국수를 먹기 잘했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이후로도 술을 먹은 다음 날마다 이 쌀국수를 떠올렸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 이곳을 반드시 다시 찾으리라 다짐했고, 시도도 했다. 안타깝게도, 다시 찾은 날은 마침 식당의 휴무일이었다. 식당에 들어가 다음 날의 영업을 준비하시던 사장님을 뵐 수는 있었다. 사장님께 홍콩의 다른 지역에서 먹은 쌀국수는 맛이 없었는데, 이곳의 쌀국수가 정말 맛있어서 다시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본인이 베트남에서 왔기 때문에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셨다. 다시 먹지 못했던 게,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라마 섬을 떠나기 직전, 안녕!


도시로 돌아와, 하루를 알차게 마무리

   다시 센트럴로 향하는 페리를 탔을 때는 하늘이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페리를 타고 센트럴로 돌아가, 노스 포인트의 팀호완으로 향했다. 홍콩에서 새로 사귄 친구인 안돌을 십년지기 친구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 특별한 인연이다. 또 달덩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팀호완에 적어도 한 번은 데려갈 수 있어서 기뻤다. 당시에는 한국에는 팀호완이 없었기 때문이다. 

   팀호완을 먹고 그대로 헤어지기 아쉬워서 음료를 한 잔 하러 코스웨이 베이의 헤이티 매장으로 향했다. 철복이와 함께 처음 갔던 곳이다. 이미 하루를 가득 채워 보내 놓고도 달덩이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코스웨이 베이에 가는 길에 트램을 타고 갔다. 달덩이는 사박 오일 간 홍콩을 정말 알차게 체험했다.  

트램에서 본 풍경


   코스웨이 베이 타임스퀘어의 헤이티 매장에서 메뉴를 각자 하나씩 주문하고 먹으면서 코스웨이 베이 MTR 역으로 향했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흑당 펄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달덩이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피곤을 호소했다. 원래 체력이 정말 좋은 앤데, 며칠간 중국에도 가고, 산 꼭대기에서 조난당하고, 택시기사도 잘못 만나 상대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배를 타고 섬에 가서 바다도 보고, 딤섬도 먹고, 트램까지 탔으니 피곤할 법도 하다. 이 정도면 미련도 없을 것 같았는데, 달덩이는 다음 날 비행기를 타기 전 기어이 침사추이의 성림거까지 들렸다. 달덩이가 자랑스럽다.

   달덩이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동네로 돌아와 '찌마'라는 흑임자 디저트까지 먹고 귀가했다. 이틀 같은 하루였다. 

그리운 찌마


   하루의 시작은 지옥 같았다. 그렇지만 하루의 끝에서는 행복이 더 크게 남았다. 달덩이가 나를 찾아 준 것에 다시 한번 고마웠다. 혼자 선전과 라마 섬을 가도 좋은 경험이었겠지만, 십년지기 친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편안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끼는 두 친구가 나를 매개로 인연을 맺어 기뻤다. 

   라마 섬에 방문한 이유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이상을 볼 수 있었다. 홍콩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포용성이 있다. 한국에서는 조금 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홍콩에서는 그런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전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모여 살아가며, 다양한 삶의 모습이 광둥 문화권 안에 각자의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라마 섬에서는 이러한 풍부한 문화적인 요소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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