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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 Oct 11. 2021

나는 홍콩에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에필로그

   물론 나는 홍콩에서 살았다. 네댓 달 동안 홍콩에서 머물 집이 있었고 먹고 잤으니 말이다. 그렇게 살았던 게 벌써 이 년도 더 되었으니 기억이 더욱 희미해지기 전에 글로 남기자고 마음을 먹고 시작했을 때도, 나는 홍콩살이 수필을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홍콩에서 본 건물이 예뻤다고 쓰는데,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Vox'라는 미디어사가 제작한 '홍콩의 새장 속'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홍콩의 집값이 왜 천정부지처럼 올라 많은 시민들이 손바닥만한, 주방도 없는 집에 내몰렸는지 원인을 다루는 영상이다. 땅의 개발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누군가의 잇속을 불리는 동안 어떤 시민들은 제한된 공간에 지어진 집들을 쪼개고 또 쪼개서 작은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살아가야 했다. 나는 누군가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시각적인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있다. 고층 건물들의 빽빽함과 조밀함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일 수도 있다. 저렴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좋아했던 완탕면 가게나 콘지(죽) 가게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식당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집에 주방이 없는 경우가 많아 거의 모든 끼니를 사먹어야 하는 필요에 의해 유지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홍콩의 좋은 면만 쉽게 즐길 수 있는 입장이었다. 실제 홍콩 시민들이 겪을 주거 문제에 대한 걱정, 민주주의의 위협에 대한 걱정 등은 내 몫이 아니었다. 정말로 홍콩에 살아본 적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네댓 달이라는 시간은 정말로 뿌리를 내리고, 생활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그런 시간은 아니다. 정말 큰 일이 생기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고국이 있었다. 즉, 홍콩은 내게는 최후의 고통을 어쩔 수 없이 껴안고 살아가야하는 그런 땅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실제로 고려하지는 않았지만 돌아갈 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큰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홍콩 시민들이 보는 홍콩과 내가 보는 홍콩은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양심의 가책에 대해 모두 책임을 져야하는 것도 아니다. 외지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고, 나는 외지인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고, 홍콩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홍콩을 대하는 태도는 현지인들과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했다. 더 나아가서 내가 쓰는 글이 홍콩에 대해 전형적인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면을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홍콩을 사랑하는 방식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최근 들어 그런 마음이 더욱 커졌다. 2019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 많은 시민도, 지역도 희생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진통이라고, 홍콩에는 용감한 시민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곧 코로나가 발병했지만 이 역병이 잠잠해지면 홍콩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희망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홍콩 사람들마저 누리던 자유가 곧 끝이 날 것을 직감하고, 사랑하는 삶의 터전을 떠나 영국 등의 나라로 이민을 가고 있다. 뉴스를 접하고 나서는 내가 알던 홍콩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겠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런 상황이 광둥 문화 또는 광둥과 영국의 문화가 섞여 만들어진 특별한 홍콩만의 문화를 직접 경험한 내용을 미약하게나마 기록하는 일에 의미를 더한 것 같다. 

   살다 왔다기보다는 머물렀다, 표류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나는 홍콩을 사랑하는 외지인이다. 홍콩은 빛이 났고 아름다움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모든 곳이 노다지 같았다. 과정은 개인적으로 자양분이 되었고 그 자체로도 감사하지만, 읽는 당신의 마음에 이 글들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가서 닿았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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