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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 Oct 11. 2021

여행 중 사진 기록에 대하여

에세이 속의 에세이 2

   여행할 때 사진을 찍어야할까? 아니면 그 시간에 눈으로 감상을 해야할까? 어려운 문제다. 멋진 풍경을 망막에 잠깐 맺힌 상으로 흘려 보내기 아쉬워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폰을 들어 화면을 터치하는 몇 초 사이 어떤 풍경들은 휘리릭 지나간다. '아, 찍느라 잘 못 봤어.' 움직이지 않는 풍경을 찍는다 해도, 스마트폰을 주섬주섬 꺼내 눈 앞에 액정을 들이대는 과정 자체가 감상을 방해한다. 

   그렇게 몇 번 후회를 하고 사진을 많이 찍지 않기로 했다. 최근에 여행을 갔을 때 실천했다. 지금 이 순간 온몸으로 비일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게 중요하지! 완전히 여행에 몰입할 수 있었다. 바닷물의 짜릿함과 청량감을 발을 통해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맨발에 젖은 옷가지로 모래 위를 뛰어다녔다. 액정에 걸러지지 않은 날것의 산과 하늘을 맨 눈으로 즐겼다. 사진은 최소한으로, 감상을 더욱 끌어올려줄 음악만 스마트폰으로 재생했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아쉬워서 사진을 보며 여행의 추억에 질척거리려 했을 때 막상 사진 부스러기만 남은 앨범을 보고는 조금 허무하긴 하더라. 그래도 그만큼 그 순간을 즐겼다는 반증이니 아쉬울 건 없다. 

   이렇게 내 마음속 찬반 토론이 종결되는 줄 알았는데, 홍콩살이 수필을 쓰기 위해 찾아보는 이 년 전의 사진들이 결론을 보류하게 만든다. 2019년 5월의 어느 날, 홍콩에서의 134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를 보냈다. 그 기억은 너무 강렬해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2021년 4월의 어느 날, 이 년만에 그날의 사진들을 꺼내봤는데 내 기억에서는 사라진 부분이 사진에는 많더라. 머릿속엔 '그날 정말 재미있고 자유로웠지'라는 감정만 남아있고 구체적인 기억들은 세월에 점점 녹슬고 있었던거다. 

   그렇지만 고화질의 사진들은 흐려진 기억을 복구한다. 나를 홍험 페리 선착장으로, 통통배 위로, 바닷가의 제방 위로 돌려보낸다. 나는 방구석에서 2년 전의 페리를 기다리며 땀을 뻘뻘 흘리고, 배에 올라 시끄러운 모터 소리를 듣고, 제방 위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의 꼬리를 가만히 쳐다본다. 내가 그때 휴대폰 배터리를 아껴가며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기억은 물을 엎어버린 수채화처럼 흐려져 있지 않을까? 그 곳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을 거다. 내가 찍은 사진들이 날아가지 않아 다행이고, 사진에 연결된 기억 조각들을 이어 붙이는 작업을 도와주는 구글 지도에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지금까지 그래왔듯 둘다 할 예정이다. 먼저 눈으로 한 번 보고, 느낄만큼 느꼈다 싶으면 사진을 한 두 장 찍는 식으로 말이다. 사진을 적게 찍었으니 감상이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합리화도 할거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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