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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욱 Aug 12. 2021

자기 자신을 응시하기

『일본인 ‘위안부’』

『일본인 ‘위안부’: 애국심과 인신매매』,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리서치 액션센터 니시노 루미코·오노자와 아카네 엮음, 번역공동체 잇다 옮김, 논형, 2021


“인생에서 트럭섬에 있던 시절이 가장 좋았다.” 트럭섬(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해군의 기항지로 사용되었던 남태평양의 섬)에서 일본인 ‘위안부’ 생활을 했던 야마우치 게이코의 증언이다.


‘위안부’로서 생활했던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좋았다는 증언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이를 단순히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말이라거나, 소위 ‘위안부’ 피해의 전형에서 벗어나는 예외적 증언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저 증언에는 일본의 공창제도에서 일본인 ‘위안부’로 이어지는 성착취의 흐름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전시총동원 체제와 애국심, 그리고 전후 ‘위안부’ 피해자를 침묵시켰던 가부장적 젠더 규범까지의 피해와 가해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일본인 ‘위안부’: 애국심과 인신매매』 서문의 첫 문장(“왜 일본인 ‘위안부’는 줄곧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을까?”)이 묻고 있듯이, 일본인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도 20여 년이 지나도록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이는 일본인 ‘위안부’가 원래 ‘매춘업’에 종사하던 여성이라는 인식이 만연했던 탓이다.


실제 일본인 ‘위안부’로 유곽 여성이 모집되기도 했지만, 인신매매나 사기에 의한 모집, 그리고 군속 여성에게 ‘위안부’가 되라고 강요하는 등 모집 경로는 매우 다양했다. 하지만 ‘위안부’가 어떻게 모집되었는지 혹은 식민지/지배국 출신인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군이 ‘위안부’를 모집했고 그 때문에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가이 가즈에 따르면, 심지어 군(국가)조차도 ‘위안부’ 모집이 떳떳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군은 위탁한 업자들이 공개적으로 ‘위안부’를 모집하지 못하도록 경찰에게 단속을 요청해 모집 사실을 은폐시켰다.


모집 경로 따위로 피해 유형을 분류하는 것은 피해의 위계를 설정해 오히려 특정한 피해에 대한 군의 가해 사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축소시키며, 피해의 전형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당할 만했다’는 낙인을 찍는다. 동시에 누가 피해자인지를 결정하는 권력을 분류하는 자에게 부여하고, 피해의 전형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만든다(이러한 행태들은 지금까지도 여러 성폭력 사건에서 계속되고 있다).


군(국가)은 대외적으로는 ‘위안부’ 모집 사실을 숨겼지만, 뻔뻔하게도 ‘위안부’ 모집 대상자들에게는 나라를 위해 ‘위안부’가 되어달라고 설득했다. 첫머리에 인용한 야마우치 게이코의 증언은 이러한 맥락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다양한 경로로 모집된 ‘위안부’ 중 ‘매춘업’에 종사하던 여성 대다수는 가난한 가정에서 유곽으로 전차금을 받고 팔려 온 처지였다. 이들은 전차금을 갚지 못해 유곽을 전전했고 사회적으로는 천대받았다. 그런 이들에게 ‘위안부’가 되면 군이 전차금을 갚아주니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거나, 애국자가 됨으로써 “평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다는 말은 큰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인 ‘위안부’의 전후는 어땠을까. 야마우치 게이코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이런 말을 남겼다. “마흔여덟을 눈앞에 두고 죽는 것도 저에게 정해진 숙명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애국하는 마음으로, “대일본제국을 문자 그대로 가장 밑바닥에서 떠받”치던 ‘위안부’는 전쟁이 끝나자 국가에 의해 버려졌다. 여전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매춘부’에 더해진 ‘위안부’라는 낙인은 피해자들이 더욱더 목소리를 내기 힘들게 만들었다. 피해와 차별의 굴레는 가해 세력인 군(국가)과 가부장적 사회가 덧씌운 것이지만, 피해와 차별 외의 다른 삶을 상상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그 굴레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엮은이는 후기의 마지막 지면을 빌려 일본인 ‘위안부’ 당사자들에게 “어떤 정보라도 좋으니” 당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한다. 책에 실린 여러 글을 세심하게 다듬고 엮었을 사람이 건네는 듣기의 요청은 단순히 더 자세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성원이 되는 일본 사회에 토양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위한 것처럼 읽혔다.


도미야마 이치로는 ‘커밍아웃’이 화자 자신이 스스로 정체성(일본인 ‘위안부’의 경우 사회적으로 드러냄이 허락되지 않았던 피해자성)을 말하면서 감수했던 위험에 청자들도 함께 노출되기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들은 자의 책무는, 청자 자신이 딛고 있었던 “사회의 토양” 아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묻혀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자신이 딛고 있던 땅을 뒤집어엎고 다시 더 많은 이들이 배제되지 않은 채 함께 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책무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뿐 아니라, 이미 증언을 듣고 위험에 노출되었던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우리의 발은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게 되기 쉬워지니까.


일본인 ‘위안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전쟁 ‘위안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한국전쟁 ‘위안부’ 당사자의 공적인 증언은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덮고 있는 토양이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듣는 사람은 자신을 응시한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같은 식으로 자기 자신을 응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진다.”(주1)


적어도 한국전쟁 ‘위안부’에 대해서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자신이 딛고 선 ‘토양’을 똑바로 응시한 적이 없다. ‘위안부’ 피해자들 역시 한국사회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했기에, 자기 자신을 응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는 우리가 아직 당사자가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지 않았고 제대로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이 남는다. 먼저 스스로 발밑을 무너뜨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듣는 자가 될 수 있을까?


주1  나리타 류이치, 요시다 유타카 엮음,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기획, 『기억과 인식-일본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인식하는가』, 어문학사, 2020,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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