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밤의 범퍼카
*그녀에 관한 tip
그녀의 성형 수술 비용 견적은 총 3,100만원이었습니다.
그녀는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의사의 목을 조르는 자신을 상상합니다.
그녀는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쳇말로 장롱면허입니다. 면허시험 이후로는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벌써 3년 전 일입니다. 그런데 그 운전면허증이 효력을 발휘할 기회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고모부가 승진을 하며 차를 외제차(테슬라 모델X)로 바꾸며 자연스레 그녀에게 10년 된 중형차(라비타)가 한 대 생기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녀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인기가 전혀 없는 기종이지만 연습하기엔 좋은 차라고 그녀는 생각합니다. 시크한 여자는 운전을 한다고 친구가 했던 말이 그녀의 귀를 다시금 얄팍하게 울립니다.
그녀는 집 앞에 떡하니 놓여 있는 차에 시동을 걸어 봅니다. 그때 시간이 아마 새벽 3시였을 겁니다. 차에 불이 들어오고 엔진 소리가 경쾌하게 울립니다. 차는 마치 잘 훈련된 말처럼 울부짖으며 새 주인을 반깁니다. 시동을 건 후 안전벨트를 맵니다. 그리고 전조등을 켜고 기어를 넣습니다. 차가 움직입니다. 느낌이 좋습니다. 옛 감각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다음날 아침(아니 새벽), 그녀는 자신이 눈을 감고 뜬 곳이 침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와이퍼가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차창 밖에 어머니의 모습을 지웠다 만들었다 합니다. 아버지가 차문을 열라고 호통을 칩니다. 몽롱한 상태 속에서 소리들은 전혀 들리지 않고 입모양만 과장되게 보입니다. 잔뜩 화가 나신 게 확실합니다. 그녀는 차에서 내립니다. 속이 메스껍고 어지럽습니다.
차는 밤새 제자리를 맴돌았습니다. 경부고속도로도, 자유로도, 한강대교도, 아름다운 반포대교도 가지 못하고 주차장을 배회했습니다. 집 앞 골목도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내려서 차와 마주합니다. 우선 보이는 것이 차의 앞범퍼와 뒷범퍼가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민망한 시선을 좀 더 왼쪽으로 이동시키니 주차장벽에 하얀 선이 보입니다. 어린 아이가 그린 낙서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옆에 있던 빨간색 마티즈도 그녀 차의 단짝처럼 옆면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이런 비유가 유쾌하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놀이공원에서 탔던 범퍼카에 대한 기억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다시 한 번 불호령을 치려고 하는데, 입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오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마티즈 주인이 출근을 하려고 주차장에 입성합니다. 적절한 타이밍이었습니다. 그덕에 그녀는 아버지의 뜨거운 욕의 세례를 용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타이밍입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합니다. 입이 수천개가 달려 있어도 말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대신 이웃집 여자에게 몇 번씩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 수리비에 대해 일체 책임지겠다고 약속에 약속을 합니다. 마티즈 주인은 너무 놀라 입을 벌린 채 서 있습니다. 놀란 물고기 같다고 그녀는 생각합니다. 마티즈 주인이 그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를 보자마자 넋이 나갔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설명하고 설명합니다. 뒤늦게 그녀도 이웃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녀 어머니가 뒤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밀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오전에 도로운전연수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됐습니다. 인어공주의 형체처럼 말입니다. 차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차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었지만 아버지 앞에서 도저히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최초의 차는 신데렐라의 호박마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날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너무 울어서 얼굴이 호박이 돼 버렸습니다. 원래는 운전 연수를 끝내고 점심을 배불리 먹고 난 뒤, 시내 서점에서 메모해둔 신간 서적을 사고, 세일을 하는 청바지 들도 둘러봐야 했지만 말입니다.
모든 것을 그녀가 망쳐버렸습니다. 왜 그 새벽에 나가 차를 탔을까요? 그리고 왜 시동을 걸었을까요? 또 시동을 걸었으면 됐지, 왜 밤의 도시를 돌아다니고 싶었을까요. 불면이 왠수입니다. 모든 건 잠이 오지 않아서 일어난 일입니다. 다음날 오전에 계획대로 도로연수를 받으면 됐는데 차키를 들고 그녀는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그날 밤, 그녀의 어머니는 화장실 휴지통에서 버려진 휴지 사이에 숨어 있는 딸의 운전면허증을 쇠집게로 끄집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