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케와키 치즈루
이상한 날입니다. 얼마 전 헤어진 남자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얼마 전까지 얼굴만 봐도 가슴이 쿵쾅 쿵쾅 뛰었던 선배에게도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좀 당황스럽습니다. 모든 일은 겹쳐 오나 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말입니다. 그러나 문자가 온 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이상한 우연의 일치란 생각뿐입니다. 날씨가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비가 오지도, 바람이 많이 불지도 않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목요일 오후였지요. 그녀는 메시지를 확인해 봅니다. 이상하게 내용도 똑같습니다.
<잘 지내냐? 넌 무슨 애가 그렇게 연락이 안 되냐?>
<잘 지내냐? 넌 무슨 애가 그렇게 연락이 안 되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답문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외로웠고 외롭다고 생각할수록 더 외롭습니다. 반갑기도 했지만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 답신도 하지 않았습니다. 침대에 누워 문장들을 만들어 보았지만 맘에 드는 건 없었습니다. 구차할 뿐입니다.
그녀는 직업을 구해야 합니다. 그날도 계획은 거창했지만 끝내 이력서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이력서를 완성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력서를 지워가는 자신을 보았을 뿐입니다. 무기력합니다. 일도, 사랑도 똑부러지게 하는 게 없습니다.
이대로는 잠들 수 없어 다음날은 홍대에 가서 영화를 한편 보고 이력서에 쓸 명함사진을 다시 찍어보기로 합니다. 5년 전에 찍고는 아직까지 새로 찍지를 못했습니다.
다음달 그녀는 극장에 갑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예술영화 전용관에서는 <일본영화 특별전>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러브레터> <도쿄소나타> <4월이야기> <아무도 모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등
포스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시간이 맞는 영화를 선택합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입니다. 갑자기 시간 여행을 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극장 안에는 채 10명이 안 되는 관객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습니다. 그 중에 반은 커플이었는데 오늘따라 영화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영화는 슬픈 영화입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자꾸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작품이 흘러갈수록 그녀는 여자 주인공과 자신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극장문을 나설 때는 여자 주인공과 자신은 조금도 닮지 않았다고 부정합니다.
이케와키 치즈루! 이름 속에 치즈가 들어가 있는 여자. 치즈루보다 조제로 더 기억되는 여자. 세상에 수많은 조제들과 연결된 얼굴. 그녀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을 때 찍은 영화를 보고 극장문을 나섭니다.
계획대로 명함사진을 찍으러 갑니다. 사진관 앞에서 머뭇머뭇하다 결국은 발길을 돌립니다. 사진관 대신 지하철 즉석 사진 기계 앞에 그녀는 섭니다. 지폐와 동전을 넣습니다.
세 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세 번의 촬영기회가 주어집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미소를 지어봅니다. 하나, 둘, 셋! 그녀는 세 번 다 실패합니다.
셔터가 터지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알 수 없는 설움이 밀려와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그녀의 허락도 없이 사진이 현상돼 나옵니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갑자기 하얀 손수건이 그녀 앞으로 내밀어 집니다. 노인의 가는 손 위에 하얀 손수건이 걸려 있습니다. 앙상하게 떨리는 손가락 위에 손수건이 걸려 있습니다.
"어여!
"어여!"
"뭐가 그렇게 슬플꼬?!"
가리막 커텐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실루엣.
회색 주름 치마에 꽃무늬 고무신만 선명하게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울고 싶음 울어야지. 실컷 울어. (사이) 그리고 울지 마!"
"감사합니다!"
그녀는 할머니가 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코끝에 걸린 콧물도 닦습니다.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어느새 눈이 빨개져 있습니다.
얼굴과 마음을 가다듬고 손수건을 다시 할머니에게 돌려주려고 하는데 보이던 고무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커텐을 젖혀보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기계에서 나와 주변을 살피는데 방금 전 할머니는 온데 간데가 없습니다.
그녀는 손수건을 들고 한동안 멍하니 지나가는 인파들을 바라봅니다.
그녀의 혼잣말.
'이케와키 치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