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식물성 수면제
예뻐져야 합니다. 그리고 살도 빼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은 순풍에 돛단배가 됩니다. 예뻐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뻐지는 것은 추상적입니다. 대신 살을 빼는 일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일입니다. 체중계가 있으니까요. 우선 3킬로그램을 빼기로 합니다. 유튜브에서, 티비에서 떠드는 대로 요가가 살을 빼는 데에도, 무너진 몸의 발란스를 찾는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요가센터에 등록을 했습니다.
예뻐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선은 살을 빼야 합니다. 그래야 직업도 구할 수가 있을 거 같아요. 합격하는 여성들 스펙을 보면 대체로 그녀보다 월등히 이쁘고 날씬해 보입니다.
첫날부터 늦잠을 자서 요가수업에 가지 못했습니다. 작심삼일조차도 못했습니다. 아침 7시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최근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요가수업시간이 그녀를 잠들게도 하고 깨우게도 할 줄 알았지만 아직 몸은 요가를 거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녀는 다음날은 꼭 일찍 일어나기로 다짐을 합니다. 그러면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찍 잠들 자신은 없습니다.
수면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처방전 없이 구매가 불가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할 수가 있던 것이 이제는 구할 수조차 없습니다. 불법인 걸 알지만 동네 친구 민서에게서 수면제 몇 알을 받기로 합니다. (민서 어머니가 예전에 잔뜩 수면제를 사서 가지고 있는 걸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조만간 나이키 신상 운동화 사러 갈 때 같이 줄을 서주기로 합니다.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거래를 성사시킵니다. (민서가 수면제 다섯 알을 건냅니다.)
민서 왈, '식물성 수면제야!'
식물성 수면제? 수면제에도 동물성과 식물성이 있는 걸까요? 혹시 식물성 수면제는 식물처럼 잠을 자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유비무한의 정신, 그건 그녀 아버지의 생활철학, 인생철학, 개똥철학입니다. 예뻐지려면 살을 빼야 하고 살을 빼기 위해선 요가 학원에 빠지지 않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요가 학원에 가려면 일찍 잠을 자야 합니다.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도 예뻐지는 일은 필수사항입니다.
도시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다 어느 새 퇴근하는 인파 속에 그녀가 끼어 있습니다.
“가방 속에 토끼가 있네요. 아가씨!”
“네? 제 가방에 토끼가요?”
“그래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걸요.”
그녀는 가방을 살펴봅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보세요. 제 가방엔 토끼가 없어요.”
그녀는 가방 속이 다 드러나게 열어보입니다.
“정말 보신 거예요?”
“아까부터 쭉 봤어요. 숨었나 보네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그날 밤도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그녀는 천장을 보며 별자리를 그려봅니다. 그리고는 타이타닉호를 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녀는 케이트 윈슬렛을 좋아합니다. 그녀의 영화라면 무조건입니다. 멋진 배우입니다. 그 중 <타이타닉>과 <이터널 선샤인>는 최고 중에 최고입니다. 최근에 본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어려운 영화였지만 여운이 길었습니다. 결국 더 깊은 다른 이야기로 전환되지만 초반에는 숨이 막히기도 했지요. 소년과의 사랑이라~
그녀가 탄 상상의 페리호는 그리스에서 출발해 남미로 향합니다. 그러니까 쿠바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카리브해의 열정과 체 게바라의 정신이 살아있는 나라. 그녀는 여행 도중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화가와 사랑에 빠집니다. 화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로 다가옵니다. 그녀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국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일! 정신이 혼미합니다.
번쩍, 눈을 뜹니다. (키스하던 남자의 어깨를 밀어냅니다.) 상상 속에서도 키스를 견디지 못합니다. 눈을 뜬 그녀는 시계를 봅니다. 3시 50분. 방금 전에 우유가 배달되었습니다. 그녀는 가방을 뒤집니다. 이상하게도 수면제가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히 가방에 두었던 수면제가 말이죠. 결국 그녀는 눈을 뜬 채 창문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본 후에야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요가학원 이틀째 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