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속에 토끼 1

1. 다짐

by 황은화
"남자들은 결코 여자의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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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속에 토끼를 보았니?”

“내 가방엔 토끼가 없어.”

“나는 보았는데???”


그녀는 직업을 구해야 한다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비웃었습니다. 직업을 구하면 다음에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비웃었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 적당한 시기를 봐서 결혼도 할 거라 말했습니다. 친구는 박장대소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아이도 둘 정도 낳을 계획이라고 수줍게 고백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친구가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그녀는 잠시, 창밖에 텅 빈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비행기 하나가 숨어버립니다. 다시 친구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친구는 만화에 빠져 있습니다. <삼봉이발소>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여신강림>


그녀는 한숨을 쉬며 이 모든 일을 위해선 우선은 직업을 구해야 한다고 혼잣말을 합니다. 그러자 친구가 입을 엽니다. 시선은 여전히 만화책에 고정한 채로 말이죠.


“가방 속에 토끼를 보았니?”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친구를 쳐다봅니다. 친구는 상대가 대답이 없자 다시 반복합니다.


“가방 속에 토끼 봤어?”

“내 가방엔 토끼가 없는데 무슨 소리야?”


그제서야 친구가 잠시 책에서 눈을 떼 그녀를 힐끗 쳐다봅니다.


“나는 보았는데…”


친구의 손가락이 가방을 가리킵니다.


잠시 후, 그녀는 친구에게 북극곰이 그려진 에코 가방을 열어 보입니다. 가방 안에는 반만 남은 허쉬 초코렛, 립글로즈, 작은 손거울과 파우더, 줄이어폰과 충전기, 휴대용 약보관함, 텅 빈 일기장, 헤어밴드, 안경 케이스와 남미에서 산 가죽 필통, 아멜리 노통의 소설 그리고 영어사전과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토끼는 없습니다. 어지러운 가방 속에는 그녀가 말한 대로 토끼는 없습니다.


“난 봤어.”

“눈 똑바로 뜨고 봐봐. 없잖아.”

“숨었나보지. 아까 살짝 고개를 내밀었어.”

“아! 미쳤다, 미쳤어. 소희야, 나 약속 있었다.”


그녀는 시계를 보더니 허둥지둥 흩어진 물건들을 가방에 쓸어담습니다. 급하게 가방을 메고 친구의 집을 나섭니다. 친구가 그녀에게 인사합니다.


“잘 가! 너의 토끼도!”


그녀는 꼬리에 불이 붙은 토끼처럼 친구의 집을 나섭니다. 현관문도 닫지 않고 나갔지만 친구는 여전히 만화책에 빠져 있습니다.


"헤헷! 웃겨~ 개웃겨~"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지하철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지요. 친구의 집 뻐꾸기 시계가 1년 전부터 4시 20분이란 사실을요. 그녀는 약속 장소에 두 시간이나 일찍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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