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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May 19. 2022

몰이해

몰래 적는 사랑고백 5

*우울, 자살 사고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려요.



  어제는 참 많이도 울었다. 

  저녁을 먹고 과자 네개를 해치울 때부터, 아니, 과자봉지를 한아름 안고 집에 들어갈 때부터, 사실 그보다도 더 전, 아침에 그친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일 때부터 하루가 험난할 것이라는 걸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밖에 나가서 비가 그친 걸 확인한 후에도 몸은 계속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런 날에는 작업을 하다보면 다치기 쉽기 때문에-라는 핑계를 대지만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을 그냥 앉아 있었다. 집에 일찍 갔으면 그나마 나았으련만, 저녁에 수업이 있어 퇴근도 여의치 않았다.  

  수업시간 3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수강생에게 연락을 하고, 요일을 착각해서 다른 날 방문하겠다는 답장을 받은 후에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퇴근할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집으로 걸어갔다. 


  너는 대선배격인 업계 사람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11시 30분쯤 집에 도착할 것 같다고 보고를 올리는 네게, 괜찮으니 시간은 신경쓰지 말고 즐겁게 보내고 오라고 답했다. 
  밥을 해주는 네가 없으니 도시락을 데워 먹고, 몸통에 위장만 있는 사람처럼 과자 네 봉지를 해치웠다. 이제 조금 잘 차례였다. 침대로 갔으나 잠은 오지 않고 울음이 찾아왔다. 


  딱히 '무엇이 슬프다'는 명확한 인사이트 없이 우는 울음은 쉬이 그치지 않고, 울음 사이에 들이쉬는 숨은 더 많은 울음을 데려온다. 어제의 나는 아마 평소처럼 내 존재가 슬펐을 테고, 자꾸만 없어지고 싶어서 침대 구석에서 울었다가, 의자에 앉아서 울었다가, 책상 밑에 숨어서 울었다. 바닥에 얼굴을 대고 고양이 털이 잔뜩 붙은 더스트백 같은 것을 보면서 울다가, 문득 네가 귀가하기 전에 이 울음을 다 털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꼴사나운 울음으로 너에게 또다른 짐을 지우기 싫었다. 내가 내 어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네게 큰 짐이었다. 얼결에 짊어지게 되어 어디에 내려둘 곳도 없는. 
  책상 밑에서 우스운 모습으로 기어나와 침대에서 울음을 정리하고 있는데 네가 귀가했다. 현관문을 여는 너를 보고 나는 네 이름을 부르며 다시 목놓아 울었다. 너는 내가 마저 울고 찬 음료를 마시고 싶어 할 때까지 충실히 나를 껴안고 위로해 주었다. 


  너는 내가 이리도 슬퍼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유를 주절주절 설명해도 그것이 어떻게 죽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기능이 조금 엇나간 내 호르몬과 뇌의 작용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네게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으로 보일 것이다. 

  나는 몇번이고 네가 이따위 슬픔을 이해하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네가 이런 슬픔을 겪게 된다면 나는 마음이 아주 아플 거야. 너는 내 안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네 안의 너도 그랬으면 한다. 무엇보다 너 자신이 가장 중요해서 더는 나라는 짐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홀가분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나는 계속 네 옆에 있기 위해 점점 가벼워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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