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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어떻게 삶을 사랑하게 하나?

나는 살려고 산에 오르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by 붉나무

산 중턱 정자 앞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있다. 자동차 뒤 범퍼가 뜯겨 내려앉았다. 찻길이 없는데 차가 서 있으니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모두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을 거나 수군거다. 또한 비상식적인 상황임을 직감했지만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홧김에 올라온 거고 누군가 신고했겠지,라는 생각을 잠깐하곤 부지런히 정상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 정도 걸려 정상에 발을 딛고 내려왔는데, 그 자동차가 그대로 있다. 그런데, 산에 오를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보였다. 내가 올라갈 땐 몇몇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지나갔다면 내려올 땐 열 명쯤 돼 보이는 사람이 그 자동차를 빙 둘러서 있었다.

어떤 남자가 "여길 어떻게 올라왔지?"라고 말하며 자동차를 두드려본다. 차 문을 열려고 시도하자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미쳤냐며 만류한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이 자동차의 뒷좌석을 들여다보더니 "약봉지가 있어"라며 큰 소리로 말한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앞좌석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핸드폰도 있어"라고 말한다.

그러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한 여자가 자동차로 다가가더니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신고하면 경찰이 올 때까지 우리 여기 있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한다.

이번엔 정자에 앉아있던 어르신이 일어서며 "누가 벌써 신고했겠지, 한참 됐는데..."라고 말한다.

그러자 동년배쯤으로 보이는 다른 분이 "그럼 벌써 경찰이 왔어야지. 여태 안 오는데, 아까부터 있었어"한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의심과 걱정에 찬 말을 한 마디씩 했지만 나를 포함해 누구하나 신고하려하지는 않았다. 그때, 둘레길 방향에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조깅을 하며 온다. 그중 가장 앞에 선 트레이닝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자동차 유리문에 얼굴을 바짝 갖다대고 들여다봄과 동시에 바로 휴대폰을 꺼낸다.

"여기 oo 산 산꼭대기에요. 자동차가 있어요. 휴대폰, 약봉지는 차에 있고요. 아니, 주차장이 아니라 산꼭대기요. 차가 올라올 수 없는 곳이에요. 정자 있는데요."

그 여자가 몇 번 '네네' 대답을 하더니 전화를 끊는다. 함께 달리기를 하던 사람들이 그 여자를 강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여자의 직업은 트레이너거나 아니면 함께 운동 지도자처럼 보인다. 단단해 보이는 몸과 우렁찬 목소리, 제스처로 보아 그렇게 추측이 되었다.

그 여자가 신고하는 것을 본 후에도 몇몇 사람들은 한 마디씩 더 하고 지나갔다. 나는 신고하는 걸 보고나서 하산하려 하는데 내 옆에 서 있던 어떤 남자가 흘낏 나를 보며 말한다.

"여기 어디 있겠는데..."라고 말하며 주위를 빙 둘러본다. 그러면서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한다. 그리곤 한마디 덧붙인다.

"죽으려고 올라왔네. 여기 어디 있을지 모르겠네." 그 남자의 말 한마디에 나도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내가 내려오는 시점엔 나무 그늘에 사위가 어둑해지는 늦은 오후 시간대로 왠지 모를 두려움과 함께 소름까지 돋았다. 나는 어서 산길을 내려가는 게 좋겠단 생각에 수군거리는 사람들로부터 부지런히 벗어났다. 내려가려면 평소 걸음대로 걸으면 20여 분을 더 걸어야 하는데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더 이상 산에 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또 내려가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걸으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한 남자의 말이 떠올라 연신 주변의 키 큰 나무들을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다. 혹시라도 내 앞에 목을 맨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쩌지,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중에 든 생각인데 이런 느낌은 쓸데없는 걱정임을 알지만 무언가에 사로잡히면 그 상황에선 도통 벗어날 수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게다가 온갖 상상력을 발동하며 가슴이 두근두근 호흡은 가빠져 신체 활력 징후까지 뒤흔들고마는 것이다. 나는 산길을 뛰다시피 내려왔다. 절이 보이고 산을 등지고 앉은 부처님의 뒷모습을 마주하고 나서야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산을 다 내려와 든 생각이다.

그런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죽자고 산에 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죽을까 봐? 그 대상이 내가 될까 봐? 그런데,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하지만 어떤 마음이길래 찻길도 아닌 가파른 산길로 부서질 만큼 차를 몰고 올라온 걸까. 지금 생각해도 그 점은 이해 불가다. 누군가 산길을 주행하는 그 자동차를 목격했다면 정말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주변엔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하루가 머다않고 벌어지고 있다. 뉴스는 자살, 폭력 사건들을 경쟁하듯 실시간으로 쏟아놓는다. 그러니 내 근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다. 그 장소 또한 국한된 것이 아니라서 어쩌면 내가 느낀 감정은 자연스러운 공포였지 모른다.

한참 지나 이 목격한 사건을 친구에게 말하면서 든 생각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갔지만 누군가 신고했겠지하고 한 시간 가까이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좀 놀랐다. 그 이유는 나처럼 생각한 사람을 포함해 신고해서 혹시 모를 번거로움이 생길까 봐 귀찮아서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날 산에 다녀온 후로 한동안 잊고 있다가 또 그 산에 갔을 때 불현듯 다시 떠오른 한 남자의 단정적 말이 다시 떠올랐다.


'죽으려고 왔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려고 산에 간다. 힘을 얻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사건이었다.


내가 아는 한 사람도 죽으려고 산에 간 사람이 있다. 공원 근처 야산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는 사촌 오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방학을 하면 종종 시골에 와서 지내곤 했다. 그 사촌 오빠는 시골에 와도 동네 아이들과 어울릴 줄 몰라 개울가 나무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거나 달력 뒷면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 오빠가 우울증으로 산에서 죽은 나이는 딱 지금 내 나이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서울이란 곳에 갔었는데 그때 나는 서울이란 곳이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80년대 초반 내가 본 서울은 내가 상상해온 서울과는 거리가 멀었다. 빼곡한 판잣집들과 골목이 끝없이 이어진 곳, 골목 막다른 곳에 고모네 집이 있었다. 고모네 집은 방이 두 칸뿐이고 사방이 막혀있는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그런 집이었다. 고모는 아침밥을 차려놓고 화장지를 만드는 공장에 일을 갔다. 나는 점심을 차려주러 고모가 올 때까지 내내 빈 방에서 멍하니 있었다. 사촌 오빠가 그린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는데 나는 온종일 그 그림을 보다 선풍기 바람을 쐬다가 낮잠을 자는 걸로 하루를 보냈다. 당시 어린 내가 보기에도 풍경이나 정물 그림은 참 잘 그린 그림이라 생각했다. 그건 모두 사촌 오빠의 그림이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고모 집에서 보내고 나는 고모 집이 아닌 그 어디에라도 보내주길 바랐다. 나는 당시 정말 감옥이 있다면 그곳이 감옥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고모 집은 우리집보다도 더 가난했기에 사촌 오빠는 결국 원하던 진로를 찾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으로 학교를 마쳤다. 이후 사촌 오빠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당시 커리어우먼이라 부르는 분과 결혼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분은 얼마 살지 못하고 집을 나갔고 사촌 오빠는 아이 한 명을 기르다가 그 아이를 남기고 얼마 후 생을 마감했다.

나는 그때 장례식장에는 가지 않았지만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며 고모가 했다던 말을 전해 들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지나는 곳이라면 누군가 분명 봤을 텐데 좀 말려주지 그랬냐며, 그렇게도 한탄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많다고 그 상황을 누군가 반드시 목격하는 것은 아닐텐데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의 안타까운 마음에 자신을 향한 자책의 한탄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자식 하나 남겨두고 가는 아비의 마음이 어땠으랴마는 손자 하나 두고 간 자식의 죽음을 맞닥뜨린 어미의 마음은 또 그 어떤 슬픔의 무게와 비교가 될까. 그때는 그 슬픔의 무게가 잘 느껴지지 않았는데 내가 그 사촌 오빠의 나이가 되고 자식을 기르는 입장이 되고 나니 고모는 얼마나 비통했을까 싶다. 그러고 얼마 후 유일하게 온전한 혈육인 내 아버지인 동생마저 먼저 떠나보낸 고모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저릿해 왔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 지역 인터넷 사건 사고를 검색 하면서 사고의 정황이 뚜렷해보이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한 발짝 떨어져 구경꾼처럼 지켜본 나를 좀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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