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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어떻게 삶을 사랑하게 하나?

가짜 공포를 불러온 일

by 붉나무

얼마 전 혈액 종합검진을 했는데 주요한 혈액 수치가 경계치에 다다랐다. 나이 탓을 말하려다 평소 나의 생활습관과 가족력을 짚어보니 충분히 그럴 만한 수치라 생각되었다. 평소 걷는 것은 좋아하지만 땀이 나게 걷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 근력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 탄수화물 위주의 식습관, 당뇨 가족력 등이 혈액검사 결과로 명백히 드러났다. 그리하여 일일 평균 만보 걸음을 목표로 걷기로 하고 주 2회는 땀이 나고 숨이 찰 정도로 걷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려면 경사가 있는 길을 걸어야 하는데 우리 동네엔 그런 길이 없다. 할 수 없이 낮이 긴 여름 동안에라도 퇴근과 동시에 직장 근처 산에 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등산을 결심하고 첫 번째 산행을 하던 날, 때는 출근하던 여성이 신림동 둘레길에서 무참히 살해되어 희생된 지 한 달이 채 안 돼 있었던 일이다.


나는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가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의기에 차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해발 200m 채 안 되는 산이라 왕복 한 시간이면 충분하기에 어두워지기 전에 가능한 코스를 골랐다. 그런데 걷다 보니 여름 낮은 길고 날씨마저 화창하여 정상만 다녀오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둘레길을 먼저 걷고 중간에 샛길로 들어가 정상에 오르기로 했다.

그렇게 30여 분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십여 미터 앞에서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양손에 등산 스틱을 든 한 남성이 정면에서 달려왔다. 사실 그 사람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닌 자기 길로 가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불현듯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다. 그 이후가 더 어이없었다. 그 사람이 지나고부터는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따라오는 건 아닌지, 나를 지나친 사람이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자꾸 확인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비슷한 시간대에 이 산길을 수 차례 걸었어도 이런 두려움이 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몸이 그렇게 반응한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나 생각해봤더니, 그 스틱을 든 남성이 숨을 헐떡이며 지나갈 때 내 머릿속에 순간 스친 장면은 TV만 틀면 뉴스에서 반복적으로 나온 신림동 둘레길의 성폭행 사건이 떠오르는 것이다. 나는 그 남성을 보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심박동수가 거의 1.5배로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일 확률은 거의 없으니 걱정 말라며 마음으로 되뇌었다. 그러면서도 몸은 잰걸음으로 속도를 내는 것이었다. 그 남성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잠깐의 안도감이 찾아왔으나, 나는 남자만 나타나면 이내 평정심을 잃었다. 그러다가 우습게도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한 정체는 다름 아닌 까마귀 울음 소리와 이따금 떨어지는 나뭇가지 소리까지 합세했다는 것이다.


중년의 아줌마가 산길에서 무서움이라니...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은 솔직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이런 감정을 겪으며 산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되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여름에 만난 비혼 친구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혼자 캠핑 가서 장박을 하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하노라, 여자로 태어나서 가장 억울한 건 그런 걸 맘대로 못하는 거라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하는 여자들도 있으니 그냥 과감하게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니, 그 여자들처럼 간이 크지 않다고.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결국 나는 진로를 변경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정상으로 바로 오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하필 정상 방향으로 오르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내려갈까 하다가 실체도 없는 두려움 때문에 간만에 내 건강을 위한 목적있는 걸음을 포기한다는 것이 억울하게 다가왔다. 그리하여 나는 마음에 평정심을 찾으려 심호흡을 하곤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남아있는 불안을 조금이라도 잠재우려는 듯 가족 톡방에 이곳이 '**산'이라는 증거 사진을 보냈다.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지만 일단 내 위치를 알리기만 했는데도 다소 안정감이 찾아드는 것 같았다.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정상을 향해 오르던 중 절반도 채 못 가, 이번엔 등산 스틱을 든 남성이 느릿느릿 내려오고 있었다. 순간 나의 심장은 또 콩알이 되었다. 둘레길에서 달리던 남자보다도 더 위험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자 가슴은 다시 두방망이질하고 가쁜 호흡은 더욱 씩씩거리게 되었다. 이런 모든 것은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말해주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또다시 평정심을 잃었다. 비탈길을 오르느라 힘이 다 빠진 여자와 스틱을 쥐고 하산하는 남자, 대결하면 백전백패 아닌가 말이다. 마음이 이 지경이 되자 그야말로 별의별 상상을 다하고 있다. 아... 저 사람이 나를 위협해 범죄를 일으킬 확률은 거의 '0'에 가까울 텐데, 일단 내 머릿속에 스쳐간 신림동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비슷한 환경은 이전에 느끼지 않았던 불안감을 극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계단을 내려오던 그 남성은 중간중간 멈춰 땀을 닦으며 여유롭게 하산을 하여 내 위치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제야 나도 심박동수가 잦아들었다.


그런데 두 번의 공포심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나를 다시 두려움으로 몰아간 건 다름 아닌 내가 가는 방향 20여 미터 앞에서 챙모자 착용에 검정비닐봉지를 들고 슬리퍼를 신은 남성이 갑자기 풀숲에서 불쑥 나타나면서부터다. 그 남자의 인상착의가 신림동 사건의 범인과 너무도 흡사해 보였던 것이다. 이쯤 되자 두근대는 심장을 잠재우며 손에 땀을 쥐며 오르다가는 오히려 내 건강이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나는 더이상 산에 오르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상을 얼만 안 남기고 뒤돌아서 50여 미터 쯤 내려오는데 신나는 댄스 음악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잠시 후 완벽한 등산 복장을 갖춘 두 명의 여성이 양손에 등산 스틱을 잡고 당차게 올라오고 있다.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평소 공원이나 산길에서 이어폰 없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날은 정말 반가웠다. 나는 마치 반가운 사람을 마중 나온 사람처럼 멈춰 서서 그 두 명이 내 앞을 지나길 기다렸다. 나는 그 두 분을 앞세우고 내려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의기양양 걷기 시작했다. 5분도 채 안 돼 내 심장과 호흡은 안정 궤도를 찾았다. 내 앞에 걷는 두 여성을 나는 수호신처럼 앞세워 그들의 수다까지 들어가며 걸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은 얼마간 정상을 향해 걷더니 샛길을 통해 하산을 했다. 나도 결국 그들을 따라 하산을 하게 되었고 거의 다 내려와 주차장이 보일 때쯤 서성이는 한 남자를 발견했는데 어이없게도 그 사람은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숲에서 갑자기 나타났던 그 남자였다. 그래도 절이 있어서 이젠 모든 공포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산을 다 내려와 커다란 좌불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천천히 심호흡을 하여 긴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검정 비닐을 들고 숲에서 나타난 그 남자가 사찰 경내를 가로질러 대웅전에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나오더니 석불 좌상을 향해 성큼성큼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제단 앞 양초들 하나하나에 불을 켜는 것이었다.


이로써 내가 경험한 세 번의 불안과 공포는 전부 내가 만들어낸 실체가 없는 공포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 공포는 결코 내가 혼자 만들어낸 망상은 아니다. 안전하지 못한 사회와 지난 수십년간 경험한 많은 기억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불행한 일이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이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불안이 아니기에 그렇다. 대부분의 여성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공통의 불안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안전하지 못하다. 10대부터 30대의 밤길, 좁은 길, 낯선 장소에서 수시로 느꼈던 공포를 20년 만에 아주 흡사하게 느낀 날이었다. 나는 30대 이후 아이들을 양육하며 제한적인 시간과 공간들에서 지냈기에 거의 사라진 줄만 알았던 공포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휴대폰이 손안에 있는데도 여성들의 성폭력의 공포는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이 개탄스러웠다.


오늘 느꼈던 공포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여전히 장소와 시간을 고민하고 걸어야 하는 것이다. 안전에 있어 여전히 남성에 비해 여성은 훨씬 더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이가 적든 많은 혼자 낯선 곳을 다니려면 이런 불안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확률이 적다고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늦은 오후의 등산을 통해 등산용 스틱이라도 꼭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야산 수준의 산이라 짚을 용도가 아닌 방어용 목적이 크지만. 아무리 성평등을 외쳐도 어른 남성은 산길에서 이런 공포를 느끼진 않을 것이다. 안전하다 생각한 동네 야산에서 성폭력의 공포를 느끼며 걷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왜 여자 혼자 산에 가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시간에 혼자 산행을 하는 사람은 열에 아홉이 남자였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혼자 산에 간 내가 잘못인가. 절대 아니다.


나는 꿋꿋이 걷고자 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등산을 포기하는 건 폭력에 지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마땅히 갖춰야 할 안전장치를 더욱 후퇴시키는 일일 테니까. 내가 혼자 걷는 것, 그것 또한 폭력에 맞서는 일이라 생각한다. 누구든 아무 때고 혼자 마음대로 걸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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