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어떻게 삶을 사랑하게 하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by 붉나무

요즘은 하루라도 안 나가면 큰 손해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월만큼 드라마틱한 달이 있을까.

이곳은 바람에 벚꽃이 날려 하얀 꽃눈이 내리고 강원도 산골엔 눈이 내려 이제 막 심어놓은 채소들이 걱정이란다. 4월의 눈이 한두 해 전 일은 아니지만 폭설이라니... 날씨가 점점 예측 불가해졌다.

강원도에서 보내온 사진

토요일 아침 강아지와 산책을 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봉오리던 가로수 벚꽃이 이틀 새 흐드러지게 피었다. 새들의 지저귐은 따스한 봄날이 가고 있으니 어서 나와 봄을 즐기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우리 동네 사진


강아지는 목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발이 보이지 않도록 내달린다. 엉덩이를 실룩이며 뛰다시피 걷는 그 뒷모습에 행복감이 밀려온다. 누군가의 몸짓을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건 어린아이들이나 강아지가 그렇다.


숲길에 들어서자 화려한 벚나무 대신 잎이 나면서 꽃을 함께 피우는 산벚나무도 막 꽃을 피웠다. 진달래는 모두 활짝 피어 아직 초록이 되기 전의 산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 진달래가 지기 시작하면 산은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으로 변화한다. 진달래는 숲이 곧 초록으로 물들 거라는 것을 알려주는 나무 같다. 진달래나무는 꽃이 필 때만 존재를 안다. 산길 어느쯤에 봄마다 꽃이 피었던 기억이 있기에 부러 진달래가 그쪽 길로 돌아간다.

꽃 사진은 매년 찍어도 또 찍게 된다. 그게 왠지 겨울을 나고 새봄에 다시 피어난 꽃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 같다. 너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구나. 이렇게 꽃에게 인사하는 것이다.

가장 탐스럽게 핀 꽃나무를 가까이에서도 찍어보고 오솔길을 가운데 두고도 찍어본다.

진달래는 어린 날 들과 산에서 보았던 꽃이기에 진달래가 피면 고향의 산과 들이 생각난다. 놀 거리가 없던 우리는 진달래꽃을 따 먹기도 하고, 가지를 꺾어와 빈병에 꽂이 놓기도 했다. 부엌 쪽창 앞에 꽃을 아 두던 엄마의 얼굴도 환하게 떠올랐다.

봄, 진달래, 분홍, 엄마, 고향, 그리움...

그래서 그런지 나는 화려한 벚꽃나무보다 산속에 외따로 피어있는 진달래에 더욱 눈이 가고 마음이 가나 보다.


숲길로 들어서 무덤가를 지나는데, 60대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덤 앞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CD플레이어를 틀어놓고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카세트를 무덤 봉분 옆에 바짝 붙여서 놓았다. 그리고 남자분은 무덤에서 몇 미터쯤 떨어진 무덤가 끄트머리에 간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하염없이 무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무덤가에는 벚나무가 탐스럽게 피어있고, 그 아래 키 작은 진달래꽃도 활짝 피었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선들선들 불고 있다. 고요한 산속에 그 풍경과 절묘하게 맞는 불후의 명곡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조용히 흐르고 있다.

나는 강아지와 그 옆을 지나다가 곁눈으로 그 풍경을 보았는데, 울컥 눈물이 나서 코가 시큰해왔다.

무덤가 꽃은 무덤 주인이 특별한 감상을 젖게 할 것 같다.

천 번이고 다시 태어난대도

그런 사람 또 없을 테죠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런 그댈 위해서 나의 심장쯤이야

얼마든 아파도 좋은데


사랑이란 그 말은 못 해도

먼 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ㅡ

모든 걸 줄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나 태어나 처음 가슴 떨리는

이런 사랑 또 없을 테죠

몰래 감추듯 오랜 기억 속에

단 하나의 사랑입니다


그런 그댈 위해서 아픈 눈물쯤이야

얼마든 참을 수 있는데


사랑이란 그 말은 못 해도

먼 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ㅡ

모든 걸 줄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그대 웃어준다면 난 행복할 텐데ㅡ

사랑은 주는 거니까 그저 주는 거니까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이승철


애절한 음악과 탐스러운 산벚꽃, 그 풍경을 멀찌감치 앉아 지켜보는 한 사람이 찬란하게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순간 울컥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무덤일지 모른다는 것은 내 상상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 풍경은 충분히 스퍼보이지만 아름다웠다. 그리움과 슬픔이 봄이라는 시공간적 배경과 어우러져 삶의 유한함, 허무함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누군가에겐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하는 이와 다시는 함께 보지 못하는 지금.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림 같은 풍경이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고 지금 옆에 있다는 걸 우리는 늘 망각하며 살고 떠난 후에야 절절히 깨닫곤 한다.


나보다 빨리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높은 강아지, 이토록 생기발랄한 강아지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날에 나는 또 얼마나 슬플까... 순간 또 울컥해졌다.

무덤가 진달래 앞에 강아지를 앉히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봄날 무덤가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오늘 함께한 산책의 기쁨을 남기고 싶어서.

기억은 시간과 공간으로 만들어지는 하나의 상징물 같은 것, 나는 봄에 이곳을 지나면 오늘의 풍경이 떠오를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산책하는 모녀를 보았다. 제비꽃 다발로 귀 꽂이를 한 노모와 중년의 딸이 웅크리고 앉아 봄꽃 이름을 찾고 향기를 맡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얼마나 부럽고 예쁜지...

내가 스물아홉 되던 해에 어머니가 떠났는데 나는 어머니와 단 한 번도 산책을 해본 적이 없다. 그 어떤 식당에서 둘이 밥을 먹어 본 기억도 없다. 그런 것을 해보지 못한 것은 내게 언제나 가장 큰 슬픔의 원천이다.


오늘 저녁엔 아이가 좋아하는 얼큰한 해물파스타와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자고 먼저 제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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