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새끼보다 개새끼들이 더 많아!

by 붉나무

오늘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400년이 훨씬 넘는 보호수인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 다녀 이야기를 할게.


주인이 그곳에 나를 데려간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 나는 그곳을 잊을 수 없어. 처음 그곳에 갔을때 내가 살아온 날들 중 가장 뜨거운 날이었거든. 사실 그보다는 내가 주인의 손바닥을 처음으로 핥아본 역사적인 날이었기에 잊지 못하는 거지. 어쩌면 그날은 여름의 절정이었지 모르지. 주인이 은행나무 아래 차양막이 있는 벤치에 앉자마자 나는 너무 더워서 벤치 아래 그늘을 찾아 기어들어가 혓바닥을 길게 빼고 납작 엎드렸지. 그러자 주인이 손바닥을 오므려 자기가 마시던 물을 나한테 따라주네. 반은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흐르는데 그걸 받아먹을 재간은 없어 손바닥을 핥다가 그것도 성에 안차 생수병 입구에 혓바닥을 들이밀고 허겁지겁 물을 핥아먹었지. 그날의 물맛은 잊을 수가 없어. 지금껏 맛본 최고의 물맛이었으니까.



이번에 은행나무 아래에 갔을 땐 지난여름에 맡지 못한 냄새가 나더군. 뭐라 할까... 똥냄새도 아니고 발 냄새도 아닌 독한 냄새가 순식간에 내 몸을 감싸는 것 같았어. 아마 며칠은 냄새가 몸에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나를 압도하는 냄새였어. 그렇지만 싫지는 않았지. 주인이 벤치에 앉아 찰칵이를 들여다보는 사이 주위를 살피다 보니 내가 전에 먹어본 도토리의 두 배는 되는 동그란 게 밟히대. 처음 보는 거는 무조건 코로 알아보고 입으로 맛보는 게 개들의 정석이잖아. 노란 열매를 입에 넣어보니 씹는 느낌이 나쁘지 않네. 속껍질의 단단함이 매일 아침 주인이 집을 나서기 전에 내 입에 물려주는 개껌과도 닮았네.

'와그작',

내가 너무 큰 소리로 깨물었나 봐. 주인이 넋 놓고 앉아 있다가 깜짝 놀라 목줄을 당기네.

'안돼. 나루!'

아 씹는 맛이 싫지 않았는데... 눈치 없이 너무 큰 소리로 깨물었나 봐. 암튼 먹으면 안 되는 열매란 걸 주인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직감했지. 나는 할 수 없이 씹던 걸 뱉어내고 주인 옆에 바짝 엎드렸어. 뭘 잘못했을 땐 엎드리는 게 최고라는 것쯤은 개들의 세상에선 다 아는 상식이잖아? 나도 그런 것쯤은 얼마 안돼 바로 터득했지.

주인은 열매들을 내 주위에서 발로 쓱쓱 밀어내더니 다시 벤치에 앉아 은행나무를 하염없이 쳐다보네. 나도 따라 쳐다봤지.

우와~! 세상에... 내가 맛봤던 그 열매가 가지마다 셀 수없이 조롱조롱 열려있네. 그러다가 한두 개 뚝 떨어지기도 하네. 나무가 나에게 던져주는 거 같은데 주인은 먹지 말라고하고...

그렇게 한참을 '톡톡' 열매 떨어지는 소리와 냄새를 맡으며 구경을 하고 막 돌아오려는데 어떤 남자가 사람의 팔뚝만 한 나무토막을 다른 나무들을 향해 힘껏 던지네. 몇 걸음 옆에서 한 여자가 도토리를 줍는 걸 봐서 그 남자는 아마 도토리를 따려는 모양이었지. 둘이는 부부인 것 같았어. 남자는 나무토막을 던지고, 여자는 줍고. 사람들은 아주 협동을 잘하잖아? 나쁜 걸 할 땐 더 그런 거 같아. 내 코 앞에 나무 토막이 떨어지지만 않았다면 나는 모른 척 했을텐데... 내 귀한 코를 다칠 뻔해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멍!' 하고 큰 소리를 질렀지. 주인도 놀라는 눈치였어. 그런데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우리가 지나가자마자 나무 토막을 또 던지네. 몇 걸음 물러나 주인이 나무를 올려다보길래 나도 쳐다봤는데, 열매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열매를 모두 따서 없는 건지, 열매가 원래 없던 나무인지 알 수 없지만 열매도 없는 나무에게 자꾸 나무토막을 던져대니 바닥에 떨어진 건 잎을 단 나뭇가지들 뿐이었어. 이런 광경을 목격하면 도대체 사람을 이해하긴 점점 어려워. 공원에서 얼마 전 열매를 몰래 먹어보니 진짜 떫고 맛도 없던데... 사람들은 저걸 다 주워다 뭘 하려고 그런 걸까.

암튼 무시무시한 나무토막을 내 머리나 등에 맞지 않은 걸 나는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돌아오며 생각했는데 내가 큰 소리로 '멍!'하고 짖은 건 주인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잘한 일 같아. 그 일로 개들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나는 알게 됐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가 주인을 위해 뭔가 한 것 같아서 의기양양하게 걸은 거 같아.


주인과 나는 그곳을 빠져나와 집 근처 화살나무 군락이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잠깐 쉬었지. 주인은 앉을 때마다 찰칵이를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는데, 오늘은 찰칵이를 한참 들여다보네. 그 바람에 폭신한 잔디에 엎드려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기회를 얻었지. 한 할머니가 혀를 차며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하네.


"요샌 밖에 나오면 애새끼보다 개새끼들이 더 많아. 사람 새낀 돈이 많이 들어 요새 젊은 애들은 개를 키운다잖아."

"모르는 소리 말아. 개새끼들도 돈 많이 든대. 옷 사 입히지, 미용 해야지, 유치원 보내야지, 주사 맞춰야지, 사료값도 만만찮다던데... 조카며느리가 애는 안 낳고 개만 세 마리 키우잖아. 그게 개엄마지 뭐여?"

"그래도 사람 새끼를 키워야지... 개만 키워서야 원......"

"그거야 지 맘이지. 개새끼를 키우든, 애새끼를 키우든. 자식 키우기 좀 어려워서 안 그러겠나? 세상이 달라졌으니 그러겠지."

셋 중 한 명의 할머니가 나인지 주인인지를 쳐다보며 혀를 찬다.


할머니들은 목소리가 크고, 나는 귀가 밝다. 듣는 개 기분이 나빴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이번엔 짖지 않았다.


나는 개새끼로 와서 개어른으로 진행 중이다.

세 할머니들도 아기로 와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