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가을 냄새라 하는 걸까, 바삭하고 고소한 냄새 말이야. 마른 풀냄새가 점점 짙어지는 거 같아. 창문만 열어도 그 냄새가 달라졌지. 축축하고 습한 풀냄새는 사라진 지 오래...가끔 목이 마를 땐 여름날의 습한 냄새가 그리워질 때도 있지만 처음 느껴보는 이 상쾌한 냄새가 요즘 좋아.
오늘은 주인이 나를 데리고 공원에 접해있는 야외 카페에 갔지. 처음 가는 곳이야. 주인이 나를 데리고 카페에 간 건. 다행히 야외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내가 좀 짖어도 내 주인도 카페 주인도 그리 당황해하지 않더군.
주인의 몸에서 늘 나는 냄새와 같은 음료를 주문한 것 같았어. 야외 탁자 한 가운데 컵을 조심히 내려놓고는 낮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네. 그리고, 나에게도 앉으라 하고 기다리라고 하네. 나는 일단 앉았지, 근데 앉자 마자 좀 말이 안 된다 생각이 들더군. 주인은 자신이 마실 음료를 놓고 앉아 찰칵이를 들여다볼 모양이었는데, 내겐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앉아있으라니... 이렇게 궁금한 것 천지인데 말이야. 가게 안은 아니라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궁금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산책 나온 개들은 더 궁금하고 나무에서 자꾸 떨어지는 잎이 무슨 냄새가 나는 나뭇잎 인지도 궁금한데 말이야. 무엇보다 카페 마당 구석구석에서 나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들, 여기 있어도 들려오는 소리들, 그런 것들로부터 이렇게 앉아 호기심을 누른다는 건 있을 수 없어. 종일 앉아 있는게 내 일상인데 이렇게 나와서까지 앉아있으라니... 말이 안돼. 주인이 아무리 줄을 길게 빼줬다고 그 줄의 길이만큼의 호기심만 갖으란 법은 없지. 나는 결국 이리저리 날뛰었지. 이건 주인을 난처하게 만들어 일어나게 하는 방법이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나도 내 욕구를 채워야 하니까... 산책의 기회는 늘 자주 있는 게 아니니까. 내게 내일이란 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주인은 음료를 탁자에 두고 일어나 카페 앞 공원을 왔다 갔다 하며 나의 호기심을 채워주려 하네. 나는 코를 땅에 대고 이리저리 냄새를 맡기 시작했지. 내가 한두 번 보았음직한 개들의 냄새도 나고, 처음 맡아보는 냄새도 나네. 내가 한참 냄새를 맡고 뽈뽈대고 뛰어다니자 다시 주인이 의자에 가 앉네. 나도 이번엔 주인에게 시간을 주려고 옆에 가 앉으려 하는 데 세상에나... 개 다섯 마리가 한 개의 리드 줄에 묶여 산책을 나왔네. 산책을 시키는 아주머니가 공원 카페 마당으로 당당히 들어오네. 푸들, 비숑, 치와와, 한 마리는 모르는 종이네. 우리 주인도 놀라서 의자에서 일어나...'우와! 대단하다'라고 혼잣말을 하네. 하긴 우리 주인은 나 한 마리를 산책시키는 것도 서툰데 다섯 마리를 줄 하나에 묶어 여유롭게 걷는 그 아주머니가 얼마나 대단해 보였겠어. 그 개들의 주인은 카페로 오려는 게 아닌 카페 옆집에 사는 모양이었어. 그 집 마당으로 들어가더라고. 한 마리가 짖으니 다 같이 짖는데 순간 온 동네 개들이 다 짖는 것 같았지. 사람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해 보게 하네... 나는 그 아주머니가 대단해 보였어. 우리 주인은 나 한 마리도 '힘들다, 힘들다' 그러는데 그 아주머니의 무려 다섯 마리라니...내가 앞다리를 쭉 펴고 그 개들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짖어대자 주인이 '나루, 이제 가자!' 하네. 주인은 내게 미안했던 건지 더이상 앉아 있기는 어렵겠다 생각한 것인지 나를 데리고 공원길로 들어섰지.
들어서자마자 전에 보았던 깃털을 보았네. 비둘기의 깃털이란 걸 알고 나니 시큰둥해지네. 주인이 오래 머무는 나무들마다 여름 나무들에게서 나던 냄새와는 다른 나뭇잎 냄새가 나네. 더울 땐 쉬지 않고 앞만 보고 걷던 주인의 발걸음이 자꾸 멈춰지는 걸 보면 지금 이 계절은 사람에겐 느낄 게 많은 계절임에 틀림이 없는 거 같아. 하긴 나도 좋으니까. 뜨겁지 않아서 내가 할딱이지 않아도 그늘을 찾아 자주 앉지 않아도 되니까. 바람마저 상큼하니까 나야말로 더없이 신나지. 계절의 변화는 개들의 다리에도 오는 법이지. 신바람이란 바람으로 말이야.
산책을 나가면 주인과 내가 갖는 호기심 분야는 다른 거 같아. 주인은 자꾸 위를 쳐다보고, 나는 자꾸 아래를 보거든.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주로 바닥에 있고, 주인이 관심 있는 건 주로 높은 곳에 있나 봐. 우리 개들은 개의 눈높이에 있는 것들에 주로 관심이 많지. 높은 곳에 있는 거엔 별로 관심 없어. 어차피 새처럼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청설모처럼 나무를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발이 닿는 땅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가는 거지.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나올 때마다 새로운 냄새와 소리를 발견하거든. 또 낯익은 개가 지나간 것도 알지만, 낯선 개가 오늘 또 한 마리 지나갔다는 걸 알게 하니까. 그 개가 궁금해지곤 하지. 그 개는 어떻게 생겼을지 다음에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할지 생각도 하거든.
암튼 나의 주인이 머무는 곳과 내가 머무는 곳이 자주 어긋나지만, 나쁘지 않다 생각해. 가끔은 내가 기다려주고, 또 주인도 내가 오래 머물고 싶어 할 땐 나를 기다려주니까. 그렇게 어떤 날은 내가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어떤 날은 주인이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 또 어떤 날은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런 게 함께 하는 산책인 거 같아.
언젠가 주인의 아들이 밥을 먹다 주인에게 하는 말을 들었지.
"엄마, 산책을 시킨다는 건 강아지 위주로 산책을 해야 하는 거예요. 엄마 위주로 하는 건 엄마의 산책인 거죠. 그러니까, 강아지를 데리고 나갈 땐 강아지 위주로 해주는 게 맞아요. 그게 강아지를 산책시킨다는 뜻이죠. 엄마 위주로 가는 건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고 올게, 가 맞죠"
그러고 보니 주인 아들은 언제나 내 편이야(말은), 주인이 도저히 나를 키우기 어렵다며 친척 집에 보내려 할 때도 끝까지 나를 사수한 게 주인 아들이지... 근데 왜 내 산책을 잘 안 시키냐고...? 그게 내도 궁금해. 내가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주인 아들에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이거든.
"내가 너랑 산책해 줄 게. 내가 너를 산책시켜 줄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