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을 잊기 위한 방편

by 붉나무

나는 개라 색을 잘 구별할 순 없지만 냄새로 가을을 알 수 있지. 내가 벚나무를 지나 느티나무 화살나무, 복자기 나무에 오래 머무른 것은 가을이 그곳에 명중해 있었기 때문이지. 올해만 그런 건지 그 전 해에도 그랬던 건지 잘 모르지만 그 냄새는 내가 이전에 맡았던 냄새와는 다른 냄새더군.냄새가 달라지는 시점을 나는 가을이라고 할게. 인간들은 다채로운 색까지 구별할 수 있으니 이 세상이 얼마나 놀라울까, 가을의 변화무쌍함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으니 말야. 부럽다 부러워.


황홀하게 아름다운 시간은 짧아. 나무의 입장에선 모르지만 인간이 느끼는 나무의 아름다움도 그러하지 않을까. 그 화려한 아름다움의 유한성이 가을엔 특히 짧으니까.


내가 주말에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있다가 월요일만 되면 분리불안이라는 월요병에 걸리잖아. 나는 그 텅 빈 마음을 어쩌지 못해 열린 베란다를 내다보며 종일 끙끙거리다 짖다가 여기저기 오줌을 싸다가 개껌마저 다 먹고 나면 할 일이 없어져 애먼 집을 물어뜯지. 어쩌면 우리 주인은 집이라도 물어뜯으라고 나무집을 사 준 걸까... 내 이빨은 나무집도 남아나지 못했지만 말이야. 아마 나를 계속 가둬두고 산책을 계속 안나갔다면 어떤 튼튼한 집이라도 야금야금 물어뜯었을 거야.


많은 사람들이 공허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 같아. 산책 나가보면 표정들이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보이거든. 물론 이건 나의 느낌일 뿐이야. 아이들을 양육하는 집에선 아이들의 집요한 요구에 못 이겨 개를 들이는 집이 많다고하지. 이 집 주인 아들도 그랬으니까. 아이들이 개를 키우자고 요구하는 건, 어쩌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양육자에게 개가 필요해 보였는지 몰라. 개라도 길러 그들을 양육하는 양육자에게 공허함을 이겨내는 방법을 제시해 준 거지. 부족한 사랑을 개에게서라도 받고 싶었던 거지. 어쩌지 못하는 불안함을 포근한 털을 부비며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것이었는지도.... 그러니, 아이들이 갑자기 개를 키우자고 할 땐 어른들이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신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건가 멈추어 생각해보는 것에 힘을 쏟아야한다는 뜻이지.

이또한 개인 내 생각일 뿐이야.

내가 이 집에 와 몇 달 살고보니 나를 고른 것도, 이름을 지어준 것도 주인의 아들이지만 결국 주양육자는 돈을 지불한 사람이 되더라고. 개를 키울 수 없다고 오랜 기간 반대했던 양육자도 결국 개를 돌보게 되더라는 거지. 그런 주인을 주양육자라 하는 거지. 어찌보면 이렇게 자식들의 요구에 의해 개를 키우게 된 사람은 결국 개를 키우는 것이 아이를 양육하는 일과 별개가 될 수 없다는 것이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사람들만 공허를 느낀다는 게 아니라는 거야. 개들도 느낀다는 거지.


나는 이럴 때 공허함을 느껴. 내게 간도 빼줄 듯이 잘해주다가 자기가 바쁠 땐 거들떠도 안 볼 때 말이야. 차라리 나에게 이유 없이 과한 친절은 베풀지 않았으면 해. 뽀뽀를 하고, 잘한 것도 없는데 간식을 왕창 주고, 어떨 땐 나를 배 위에 올려놓고 놀아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돌변해 이유 없이 나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거.

'나루, 앉아. 기다려. 여기 앉아. 저기 앉아.' 이렇게 말야.

앉아 있는데 계속 앉아 있으라 하지. 솔직히 개들의 인내심은 길지 않거든. 한계가 있다고... 우리 집엔 나를 주로 돌보는 주인 말고 주말에만 보이는 급친절한 주인이 한 명 더 있지. 사실 그럴 땐 그 주인이 나는 제일 좋아. 간식을 달라고 안 해도 팍팍 주지, 나를 씻겨서 안고 털도 빗어주지. 근데 또 어느 순간 나한테 복종을 강요하지. 사료를 안 먹고 두었더니 왜 안 먹었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먹으라고 한다든가...개들도 기분이 좋지 않고 속이 좋지 않으면 먹지 않는 걸 모르는 것 같아. 가끔 나를 보는 주인이 여기 앉아, 저기 앉아를 종일 시키니 이유를 통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러곤 또 미안해서 간식을 왕창 주는 거지. 입맛이 없어 사료를 안 먹으면 또 안먹었다 뭐라할까 봐 저번엔 억지로 먹고 다 토해버렸잖아. 그러자, 나의 주양육자인 주인이 토물을 치우며 급친절한 주인을 향해 뭐라 뭐라 궁시렁 거리더라고. 이럴 때 나는 누구 말을 들어줘야 평화가 빨리 찾아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나는 그저 둘의 눈치만 보다 소파밑에 배를 깔고 엎드려 얌전히 시간을 삼킬 뿐이지...


월요일, 아무도 없는 한낮의 긴 시간만 되면 나는 외로워. 창밖을 향해 짖어대고, 집을 물어뜯고, 밥그릇을 뒤집고, 오줌을 아무 데나 싸고 그런 거지... 주인이 올 때까지. 그게 나 같은 개들이 공허감을 달래는 방법이 아닐까... 이걸 사람들은 개들의 '분리불안'이라 한다더군. 사람들이 아기였을 때, 처음 학교 갈 때 특히 느끼는 게 분리불안이라더군. 같은 거지.

사람들은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 취미활동, 자원봉사, 종교생활, 반려동물 기르기, 술과 담배같은 약물(*근데 약물은 중단 시 또 다른 공허함이 온다며? 악순환이군. 개는 적어도 약물을 하진 않지) 이런 것들을 한다지? 언젠가 주인이 듣는 유투브를 들었는데 사람들의 공허를 달래기 위해 개들이 그 커다란 공허함을 나눠가진 격이라더군.


친절하지 않아도 좋아. 제 멋대로 자기 기분 좋을 때만 나를 장난감 삼아 데리고 노는 건 별로야. 개도 주체적인 생명체니까. 그냥 일관성 있는 태도로 나를 대해주는 걸 원해. 솔직히 개들이 원한 건 처음부터 없었지. 모두 사람의 요구에 의해 줬던 거 아니겠어?

참, 잊을 뻔했네. 우리 주인은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방법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거 같아. 늘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고, 출근이란 걸 하고, 산책이란 걸 하고, 뉴스를 시청하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이것도 규칙적으로 하는 것 같아) 하는 걸 보면 말이야.


아, 이야기가 또 다른 길로 빠졌군. 우리 주인의 특기지. 다시 산책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

오늘 공원에서 처음 보는 개에게 먼저 말을 걸어봤지. 사실 처음엔 개가 아닌 줄 알았어. 우리 주인이 개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어머, 양인 줄 알았어요"


그러더라니까. 이건 실례 아냐..? 그 개가 그래서 화가 난 건지 몰라. 내가 인사를 하려 하자 나에게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더라고. 그러자 그 양을 닮은 개 주인이 깜짝 놀라 목줄을 놓쳤지뭐야. 양을 닮은 개를 키우는 주인이 양을 닮은 개의 목줄을 잡으러 쫓아가고, 나는 양을 닮은 개에게 인사를 하러 쫓아가고, 내 주인은 내가 양을 닮은 개를 물려는 것인 줄 알고 나를 끌고 도망가고... 하하 아주 짧은 시간에 공원에서 넷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전력질주를 한 거지.


'베들린턴 테리어' 이름도 어렵네. 나의 주인이 양을 닮은 개 주인에게 종을 묻자 그렇게 말해주더군. 주인이 품종을 물어보는 건 나도 처음 들었지. 오늘 새로 알게 된 건 양을 닮은 개의 품종인데 다음에 그 개를 만나면 적어도 '양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해 개의 기분을 나쁘게 하진 않겠지.


공원에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전지해 놓은 걸 봤는데 그 잎을 보고 깜짝 놀랐어. 얼만 전에 본 깃털이랑 닮았더라고. 처음봤을 땐 새가 깃털을 왕창 뽑아두고 날아 갔나 했지. 근데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보니 풀냄새가 나더라고. 그래서 나무란 걸 알게 됐지.


집 근처에 억새 군락이 있는데 요즘 억새가 피기 시작하더군. 억새는 강아지 꼬리와도 닮았잖아. 바람에 흔들릴 때 말야. 어둑어둑해질 무렵 그 앞을 지나는 데 억새풀 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어.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오길래 그쪽으로 얼른 달려갔지. 처음 듣는 소리라 귀기울이며 풀숲을 헤쳐가며 살폈지. 그러자 주인이 뒤따라와서 자세를 낮추더니 억새풀 숲을 들여다보며 하는 말,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래? 뭐가 보인다 그래? 아무것도 없잖아? 가자"

나는 처음 듣는 그 생명체의 소리가 무척 궁금해지는 거야. 근데 주인은 계속 아무 것도 없다고 해. 내가 짖으면 그 생명체가 반응할 것 같아서 '멍!'하고 짖었지. 그랬더니 잠시 조용하는가 싶더니 바로 바스락 소리가 나네, 나는 헝클어진 억새풀 아래에 작은 생명체가 재빠르게 지나가는 걸 봤지. 처음 보는 생명체였어. 주인의 눈엔 보이지 않나 봐. 물론 소리도 들리지 않고. 주인이 목줄을 끌며 자꾸 가자고 재촉을 하는 바람에 그 생명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지. 주인은 개들이 시력이 좋지 않아도 바닥에 눈이 붙어 있어 생명체들을 더 잘 발견한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 자신이 못 봤다고 없는 게 아니잖아?


다음에 그곳을 지나게 되면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 이 또한 주인의 발길에 달려있지. 항상 그래.

우리 개들의 자유는 주인에 따라 딱, 그만큼의 자유만 허락된다는 거. 그게 우리 개들의 운명인 거지. 호기심을 누르고 좌절을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게 개들의 운명인 거야.

래서, 우리 개들은 필사적으로 살아. 그 시간을 말야. 한눈 팔 시간이 없어. 우리 개들은... 바깥만 나가면 세상이 신기한 것 천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