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깃털과 우산과 고양이 그리고 개꿈

by 붉나무

깃털과 우산과 고양이 그리고 개꿈

도서관 뒷길에는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사는데 오늘은 그쪽으로 갈 모양이야. 주인이 육교를 건널 땐 거길 간다는 뜻이거든. 나는 육교 계단 앞에 서면 고양이를 만나기도 전에 까만 고양이가 내 앞에 있는 것 같아서 육교 계단을 한달음에 달려가려 하지. 그런데 오늘은 육교 계단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네. 비릿한 냄새가 나는 이 회색 물체의 정체는 깃(털)이란 것이래. 털이라면 내가 잘 아는데 내가 가진 털과는 완전히 다른 털이었어. 신기해서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 냄새도 맡아보고 앞 발로 조심스레 만져도 봤지. 따스하고 보드라운 게 뭔가 생명체의 일부란 걸 금세 알 수 있었지. 그래서 혹시나 살아날까 싶어 '멍멍'짖어봤지. 그러자 그 깃(털)이 대답을 한 건지 그때 바람이 살짝 불었던 건지, 내 입김이 셌던 건지 깃(털)이 달싹 움직이네. 내 행동을 보던 주인이 내가 엎드려 일어날 생각을 않자 나를 내려다보며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을 하네. 솔직히 난 별 거였는데 말이야.

"뭐야. 비둘기 깃털이네."

나는 뭔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주인은 내 말을 알 리 없으니 내가 그저 하는 말은

"멍! 멍멍!"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짖었지. 그랬더니 주인도 위를 쳐다보네. 그때부턴 나보다 주인이, 아니 쉬고 있던 깃털의 주인이 놀란 거 같았어.

나란히 열 맞춰 있던 비둘기 한 마리가 다이빙을 하듯 육교 아래로 날아가네.


아... 비둘기가 하늘을 날 때 떨어지지 말라고 펼치는 우산살 같은 게 깃털이구나. 나는 깃털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 우산살을 내가 좀 아는데 비 오는 날 사람들이 바깥에 나갈 때 버튼을 누르면 신기하게 쫙 펼쳐지는 둥그런 그 물체가 우산이잖아. 언젠가 우리 주인이 산책을 나갈 때 가져간 우산을 소나기가 내리자 펼치는 걸 본 적이 있지. 나는 비를 주룩주룩 맞으며 걷고, 주인의 우산도 비를 투둑 투둑 맞으며 걸었지. 나는 그때 그 우산이 떠올랐어. 가만 접고 있던 제 몸을 쫙 펼쳐서는 비로부터 주인을 보호해주는 우산이 나는 멋지더라. 근데 지금 보니 비둘기가 앉아있다가 깃털을 쫙 펼치는 모습이 우산과 비슷하네.


"멍멍!"

내가 한 번 더 짖자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가며 깃털 한 장을 떨어뜨리네. 깃털이 팔랑팔랑 하더니 내 앞에 나부시 내려앉네.

비둘기는 빠진 깃털을 찾지 않고 멀리 날아가네. 나는 깃털을 보며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지. 새들은 깃털 하나가 빠져도 잘 날아가는구나. 깃털이 빠졌다고 깃털을 찾으러 다니진 않는구나.

우산살 하나가 부러진다고 우산이 펼쳐지지 않는 것은 아니듯, 새들도 마찬가지인 거지.

암튼, 난 지난번에 보았던 우산이 쪼금 부러웠던 거 같아. 비를 막아 누군가를 보호해주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주인에게 그런 존재일까, 뭐 그런 생각을 잠깐 했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서관 뒷길, 까만 고양이를 만났던 곳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고양이가 없네. 두리번두리번 찾아봐도 보이지 않네. 주인도 잠시 벤치에 앉아 고양이를 기다리는 눈치였어. 꽤 시간이 흘러도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자 주인은 가던 길을 가네.

오늘 알게 된 건,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였어.


집으로 돌아오며 새의 깃털과 우산과 고양이를 생각했어.

조금 전엔 새들의 날개, 우산의 역할, 고양이의 자유로움이 부러웠지만

집에 돌아가 목욕을 하고 사료를 먹을 생각을 하니 개(내) 팔자가 상팔자네,라는 생각도 들었어.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털도 있고, 밥을 주는 주인도 있고, 돌아갈 집도 있잖아.


그래도 오늘 잘 때 꿈은 좀 꿔봐야겠어.

비둘기 깃털 달고 날아보는 꿈

내가 우산이 되어 주인의 비를 막아주는 꿈

고양이처럼 목줄 없이 다니는 꿈 말야


꿈 해설은 필요 없어

내가 꿨으니 개꿈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