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by 붉나무

무서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

나는 주인보다 힘은 약하지만 내가 앞발을 모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힘껏 나아가면 주인이 끌려온다. 나는 필사적으로 주인을 끌고 간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궁금한 걸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나서자마자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난다.

"나루야, 너가 낙엽이랑 똑같네. 넌 가을색이네."

주인이 말했다. 이게 낙엽이란 말이지... 고소하고 바스락거리는 건 낙엽.

내 머리 위에 떨어지는 것도 낙엽. 밟히는 건 모두 낙엽이란 말이지.

며칠 만에 산책을 나왔더니 모든 게 달라져있다. 가을 냄새가 무척 흥미로왔지만, 지나간 여름 냄새가 불현듯 그리워졌다. 그래서 나는 혹시라도 남아있는 여름의 냄새가 있는지 사방을 킁킁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사라진 줄 알았던 여름의 향기를 찾아냈다. 토끼풀에서 잠시 엎드렸다가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칡, 쉬땅나무잎, 어린 돼지풀잎 같은 풀들이 여름 냄새를 품고 있었다. 언젠가 더운 여름 맛보았던 돼지풀 잎을 먹으려 하자 주인이 목줄을 당기며 말렸다.


'나루야, 넌 염소가 아니야.'


아...'염소?'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염소들은 풀을 먹는단 말이지. 나는 매일 사료나 먹는데 염소는 풀도 먹는다... 산책을 하면서 풀을 뜯어먹는 기분은 어떤 걸까를 생각해보았다. 염소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했다. 산책을 하면서 풀을 뜯어먹는 모습이란... 모르긴 해도 멋질 거라 생각되었다.


낙엽 사이마다 여름의 향기는 남아있었다. 나는 그걸 기억해두려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근데 주인은 내가 풀에 코를 대기만 해도 목줄을 잡아당겼다. 사람들은 지난 계절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개인 나는 냄새로 기억한다. 여름내 산책길을 삼킬 것 같이 무성했던 칡넝쿨, 한여름 그늘을 드리울 정도로 높았던 돼지풀, 내가 잔디밭 다음으로 몸을 펴고 눕기 좋아하는 토끼풀... 이런 덴 여름의 향기가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산책 없는 하루를 조금이라도 지루하지 않게 견디려고 산책을 못해 속이 더부룩하여 소화를 시키려고 풀을 조금 뜯어먹기도 했지만 사실 여름의 마지막 향기를 기억하고 싶어서 먹기도 했다.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가 아니다. 진짜다.


요즘은 얼마 걸어 다니지도 않았는데 금세 어두워진다. 어둑해질 무렵 나는 굉장한 걸 발견했다. 그걸 입에 꽉 물고 주인이 운동기구에서 허리를 돌리는 틈에 조용히 엎드려서 핥아보다가 씹어보았다. 아침마다 한 개씩 입에 물려주는 거와 거의 비슷했고 냄새마저 같았다. 근데 달콤한 우유냄새가 금세 사라졌다. 그래도 더 씹어볼 요량이었는데 주인이 나의 행동을 보자마자 바로 빼앗아버렸다. 속상하다. 그 기다란 건 뭘까. 나는 그걸 빼앗겨 갑자기 좀 울적해져 주인을 쳐다보고 섰는데 한 아이가 지나갔다. 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구르는 동그란 것 위에 타고 말이다. 나는 그 작은 바퀴가 내가 가지고 노는 공 같기도 해서 그 아이를 막 따라갔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나를 무섭다고 했다. 나는 단지 궁금해서 그런 거였는데 말이다. 주인이 목줄을 짧게 잡아끌며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를 물지도 않았고 나는 그 불 들어오는 공 같은 게 궁금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 아이가 가버리고 놀이터를 지나는데 엄마 손을 잡은 아이가 나를 종종종 따라오며 말했다.

"엄마, 나 강아지 따라갈래" 그러자 아이 엄마가 말했다.

"강아지가 놀래. 그러지 마" 그래도 아이는 나를 졸졸 따라오며

"강아지 귀여워. 엄마 난 강아지 좋아. 강아지 귀엽지?" 아이의 귀엽다는 말 한마디로 나는 금세 안 좋았던 기분을 만회했다.

나는 오늘 내가 아이들에게 귀여운 존재도 되지만 무서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 근처에 거의 다다다랐을 때 키가 내 두 배는 되는 점잖은 개를 만났다. 지금까지 본 모든 개들 중 단연 가장 점잖다고 볼 수 있겠다. 내 주인이 그 개 주인에게 그렇게 말했다.

"개가 참 기품이 있어 보여요."

아... 점잖은 개를 기품이 있다고 하는 건가, 아무튼 많이 움직이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고개만 살짝 양 옆으로 움직이듯하며 냄새를 맡는 걸 기품 있다고 하는 건가. 그 개가 나에게 그렇게 인사를 했다.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달려들어도 그 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만 보았다. 그러곤 주인이 '가자'하니까 미련 없이 발을 떼고 천천히 걸어 주인을 따라갔다. 그 개의 인사 방식이 주인이 말한 기품 있는 개인가 보다 짐작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기품 있는 사람이 있나, 생각해 보았다.

사실 우리 주인 가족을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류는 아니는 게 확실하다. 더 나이가 들어봐야 알겠지만 내가 기품 있는 개가 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실 개는 주인을 닮지 누굴 닮겠냐 말이다. 나는 촐랑대는 주인들과 사는 촐랑이 개니까 말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주인이 좋고 주인도 점점 나를 좋아하는 눈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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