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화나는 일이야. 분명 들었거든. '산책'이란 말을 몇 번이나.
오늘 아침 식탁에서 아들과 밥을 먹으며 몇 번이나 했어. 나는 현관 목줄 앞으로 다가가 앞발로 목줄을 잡으려 했지. 그랬더니 주인이 아들과 마주 보며 깔깔 웃는 거야. 내가 낑낑대고 짖기까지 하자, 다시 또 깔깔거렸지. 그래서 궁둥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 낮은 자세를 취했지. 그랬는데도 식탁에 앉아서 일어날 생각을 않네.
"산책? 나루 산책 가자!"
"나아아아루! 사아아안책!"
"산 책"
어떻게 말해도 나는 알아듣지. 귀를 세우고 들어도 분명 '산책'이란 말이었는데......
둘이 마주 보고 깔깔 웃기만 하네.
밥을 다 먹은 주인 아들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고 주인은 다시 침대에 눕네.
말이나 말 것이지... 잔뜩 실망한 나는 거실을 어슬렁거리다 화가 나서 평소 하지 않던 곳들에 마킹을 해버렸지. 오늘도 내사전에 산책은 없나 보다 생각하며...... 그러곤 햇살을 찾아 배를 깔고 누워 밧줄 장난감이나 물어뜯었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에 누워 찰칵이를 들여다보던 주인이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안 되겠다. 나루! 산책 가자! 이번엔 진짜야. 이런 날 누워있는 건 날씨에게 죄를 짓는 거야. 가자!"
드디어 주인이 나에게 미안했던 건지 아니면 내가 거실 모서리며 식탁 다리며 곳곳에 마킹을 하고 돌아다녀서 그랬는지 아님 정말 날이 좋아서 나가기로 한 건지 아무튼 나는 오랜만에 한낮의 산책을 나가게 되었지.
산책에 있어 기대와 실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게 되는데,
가끔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이런 게 반복되면 그 패턴을 알게 돼 어느 순간부터는 받아들이게 되지.
하지만 오늘 아침처럼 두 입으로 한 말을 해놓고 대실망을 시킨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
분명 사람이 개를 놀린 거잖아. 개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개를 놀리는 건 개와 다름없다고 할 수 있지.
적어도 개는 사람을 놀리진 않거든.
주인이 산책을 나가는 때는 일정한 시간이 반복적으로 흘러야 해.
어둡고 밝은 시간이 세 번 지나면 밖으로 한 번, 어떤 날은 한 번만 지나도 연속으로 두 번을 나가고
그렇게 연일 나가는 때는 주인이 직장이라는 데를 안 갈 때인 거지.
'얘들아! 밥 먹어! 학교 잘 갔다 와!'
이런 말을 안 하는 날이 주인이 집에 있는 날이거든. 그런 날엔 식구들 중 한 명은 나를 데리고 밖에 나가거든.
가끔 보너스 산책이 있기도 하는데 그건 좀처럼 집에서 보기 어려운 또다른 주인이 나를 데리고 나가는 거지. 그 주인은 좀처럼 산책을 데리고 가지 않지만 한 번 나가면 내가 지칠 때까지 오래 산책을 시키는데 하도 뭘 시키는 게 많아 좀 피곤해. 그 주인은 간식을 꼭 챙겨가고 어디에서나 간식을 줘서 좋긴 한데 집에 돌아와 배가 불러서 사료를 안 먹으면 또 혼을 내기도 하지.
오늘은 코끝에 닿는 바람이 참 좋아. 콧수염으로 바람을 찔러보고 코를 벌름거리며 바람의 냄새를 맡아보지. 햇살을 코언저리에 올려놓고 굴리다가 꼬리로 보내서 살랑살랑 꼬리도 흔들지.
주인에게 내 기분을 전하는 방법이야. 그러면 주인이 화답을 하지.
"나루! 밖에 나오니 좋은거지?"
말해 뭐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런 날의 산책은 최고의 시간을 누리는 거니까.
오늘은 산책시켜준다고 말해놓고 나가지 않아 절망했던 순간을 다독이며 땅을 꼭꼭 밟으며 걸었지.
아니, 마음을 고쳐먹고 나온 주인을 생각해 기운차게 걸었지. 내 모습을 보고 주인이 더 자주 산책을 나올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산책을 즐겼지.
주인과 나는 오늘의 노을이 완전히 불타 사그라질 때까지 걸었어. 그 노을의 빛을 온몸 가득 받으려는 듯 그 아련함을 마음에 담으려는 듯 노을을 향해 걷고 노을을 등지고도 걷고, 노을이 비친 호수를 내려다보며 걸었지. 마치 오늘 마지막 노을을 느끼는 것처럼... 주인은 나를 데리고 그렇게 오래오래 걸었지
.
그렇게 한참을 걷고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른 후 호수공원 데크에 들어서자,
석양이 내린 호수공원에 오리들이 울고 물에 비친 푸른 잿빛 왜가리가 서서히 어둠으로 사라지네.
푸른 어스름이 사라지고 화려한 음악분수가 켜져 사람들이 삼삼오오 호수 주변에 모여드네.
어둠에 사라졌던 왜가리는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수군거림으로부터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는 듯 가는 두 다리로 미끄러운 평행봉을 디디고 고고히 서 있네.
음악분수의 춤이 멈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동차들의 위협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도 바로 옆에서 작은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쳤네.
가로등이 켜져 환한 불빛 아래 차들은 뭉개져 스쳐가고 등뼈가 도드라진 고양이가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응시하네. 주인이 멈춰 서서 잠시 지켜보네. 나도 주인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지.
다른 때 같으면 막 짖고 가까이 갔을 텐데... 왠지 그래선 안될 것 같았어.
나에겐 주인이 엄마나 마찬가지인데 저 고양이의 엄마는 있는 걸까. 주인은 있는 걸까 잠시 궁금했지.
언젠가 산책길에서 사람들이 주고 간 사료를 먹는 고양이에게 다가가 그 사료 맛을 보려는데 나한테 줄을 당기며 말했지.
"안돼! 고양이 거야."
바깥에 살지만 고양이들에게도 누군가 사료를 준다는 걸 알게 됐어. 하지만 모든 고양이들이 충분한 먹이를 먹는 게 아니란 것도 오늘 알게 됐지.
갑자기 나의 행복했던 산책이 작은 고양이 앞에선 미안해지네. 산책의 자유가 없다는 나의 불평은 저 고양이 앞에선 한낱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지. 나는 돌아갈 집이 있고 내게 사료를 챙겨줄 주인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게다가 포근한 이불을 덮고 주인옆에서 잠을 자니 말야.
그래서 나는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엔 아쉬움보다는 늘 고마움을 느껴.
오늘처럼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과 노을의 장엄함을 온몸으로 느낀 날은 더욱 그렇지.
내가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떨어져 강아지들이 가득한 가게로 올 때 느꼈던 심연의 슬픔을 나는 주인과 정신없이 사느라 잠시 잊고 살았는데, 오늘 그 아기 고양이를 보며 내게 아직 그 슬픔이 남아있었단 걸 알았지.
그러니 산책중 만나는 모든 개는 저마다의 슬픔을 한 개씩 안고 걷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