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이 벌어지는 곳

by 붉나무

주인은 나를 케이지에 넣어 자동차에 싣고 주인의 아들과 함께 어디론가 간다. 차로 이동하는 내내 주인 아들의 신발이 보여 안심했다. 주인 아들은 조금만 가면 내가 아주 신나 할 거라며 자주 웃었다. 궁금하다. 나한테 좋은 곳은 바깥인데 나를 이 좁은 케이지에 넣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낑낑거렸지만 주인도 주인 아들도 반응이 없다. 도리없이 나도 곧 입을 다물었다.


자동차가 멈출 때마다 내 몸은 옆으로 약간씩 쏠렸지만 가만 엎드려있으니 덜 힘들었다. 속이 메스꺼워질 무렵 자동차가 멈췄고 주인은 케이지에서 나를 꺼내 목줄을 채웠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너른 마당과 가게가 나왔다. 주인이 나를 그 마당에 목줄도 없이 풀어놓았다. 그리곤 주인이 아들에게 나를 잘 보라는 말을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목줄이 풀리자 몸에 날개를 단 듯이 가뿐해져 이리저리 뛰었다. 하지만 이내 이곳이 아주 낯선 곳이므로 주인 아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주인 아들 근처에서부터 궁금한 것들을 차근차근 탐색하기로 했다.

우선 가게 앞에 세워진 네모난 물건에 내가 왔다는 표시를 했다. 그곳엔 이미 많은 개들이 자신의 흔적을 어지러이 남겨 혼탁한 냄새가 났다. 얼마나 많은 개들이 사인을 했는지 그 네모난 물건이 얼룩얼룩했다. 나는 여기저기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근데 가게 앞 계단에 털이 엄청난 개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다. 이유인즉슨 그 개와 개의 주인은 우리와 같은 시각에 도착했는데 마당에 들어설 때, 그 개의 주인이 "구름아, 너 여기 꼼짝 말고 앉아있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구름이라는 개가 궁금해 바싹 다가가갔는데 꼼짝없이 앉아있느라 아무 대구를 하지 않았다. 냄새도 맡아보고 으르렁거려 보아도 구름이는 고개는 물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주인의 말을 정말 잘 듣는 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주인이 음료를 들고 나와 상냥한 목소리로 "구름아, 가자"라고 하니까 그제야 주인을 졸졸졸 따라갔다. 반면 나는 주인이 가게 안으로 들어간 틈에 여기저기 마킹도 하고, 처음 보는 개들에게 인사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들은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먼저 으르렁거리며 나에게 겁을 주었다. 특히, 검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무늬를 가진 개 한 마리는 나를 보자마자 으르렁대며 나를 쫓았는데 그게 인사를 하는 건지, 놀자는 건지 나를 놀라게 하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의 인사 방식이 그 개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개는 또 어찌나 빠르고 목소리도 우렁찬지 나뿐 아니라 여러 개들을 놀라게 했다. 결국 나는 조금 도망치다 얼른 주인이 앉은 의자 밑에 엎드려 그 개에게 백기를 들었다. 그리곤 행동을 살폈다. 그 개의 주인이 내 주인에게 다가오더니 내 주인을 안심시켰다. "우리 개가 좀 쾌활한 편이에요. 놀자는 표현을 저렇게 해요. 절대 물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그제야 우리 주인도 안심이 되는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루, 겁먹을 거 없어. 놀자는 거래. 그러니까 나와!"

그래도 나는 쿵쾅대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아서 주인만 졸졸 따라다녔다. 주인 아들도 나를 걱정했는지 대여섯 발자국 뒤에서 나를 지켜보았다. 내가 마당에서 뛰면 따라 뛰어주고, 내가 앉으면 옆에 앉아주고... 오늘 보니 주인 아들은 내가 다칠까 봐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큰 것 같았다. 그렇게 주인 아들과 뛰어놀고 다른 개들과 인사를 하다가 주인이 앉아 있는 의자로 갔다. 주인 아들이 주인에게 다가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다른 개들은 다 옷을 입혔네요. 우리도 옷을 사줘야 할 것 같아요."

"엄마, 나루가 외로워 보여요. 이런 데를 가끔 데려와야겠어요. 이렇게 좋아하는데 말이죠."

"엄마, 개들이 다 귀엽고 예쁘지만 전 우리 나루가 제일 이뻐요. 나루가 착한 거 같아요."

"엄마, 우리만 먹을 걸 먹으니 미안해요. 제가 나루를 위해 마카롱을 만들었어요."

주인 아들은 와플과 떡볶이를 먹더니 나에게 미안했던지 집에서 가져온 내 간식으로 근사한 마카롱을 만들어주고, 종이컵에 물을 받아 먹여주었다.

주인과 주인 아들은 나란히 의자에 기대앉아 내가 여기저기 냄새 맡고 다니는 모습과 다른 개들이 다가오는 걸 즐거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나도 처음엔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바빴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몸이 지쳐갔다. 그래서 가만 앉아 다른 개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뛰어다니며 노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웠다. 나는 주인의 의자 밑에 들어가 새로 등장하는 개들과 그 개들의 주인을 관찰했다.


오늘 내가 관찰한 몇몇 개들과 주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여섯 마리의 치와와와 세 명의 주인들, 몸집이 나의 절반으로 돼 보이는 치와와 여섯 마리를 세 명 젊은 사람들이 함께 데리고 들어왔다. 그들은 처음부터 줄곧 간식을 들고 다녔는데 그들이 주로 하는 건 한 명은 간식을 챙겨주고, 한 명은 여섯 마리가 흩어지지 않게 모으고, 나머지 한 명은 사진을 찍었다. 그리하여 그 치와와들은 계속 단체 생활을 했다. 그중 한 마리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자꾸 다가왔지만 주인은 바로 간식으로 유인해 데려가곤 했다. 내가 그 카페에서 나올 때까지 그들은 치와와들을 단체로 바위나 의자에 앉히고 사진 찍기 바빴다. 그러느라 그 치와와들은 다른 개들과 뛰어놀지 못 했다.


또 한 사람은 비숑 한 마리와 작은 시츄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그 분은 우리 주인보다도 나이가 많고 느린 사람 같았다. 많은 개들이 주로 모여 노는 놀이마당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시종일관 벤치에 앉아 음식을 먹거나 찰칵이를 보았다. 그 바람에 하얀 비숑은 여기저기 실컷 돌아다니고 다른 주인의 간식을 받아먹고 노는 것 같았다. 시츄는 힘이 없고 나이가 좀 지긋해 보였는데 자주 재채기를 했다. 평소에도 그렇게 재채기를 하는 건지 뭔가 사람처럼 알레르기 물질에 노출된 건지 *'카밍 시그널'인지... 암튼 너무 자주 재채기를 해서 그곳 사람들로부터 이목을 끌었다. 그건 우리 개들이 보내는 카밍 시그널중 하나일 수 있다. 나는 코를 핥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엎드리거나 이런 걸로 주인에게 말을 하는데 우리 주인도 초보 주인이라 사실 나의 시그널을 통 못알아듣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지속적으로 내 의사를 표현해 주인이 알아듣게 하는 수 밖에...암튼 그 재채기 소리가 다른 개들의 소리와 다르게 쉰 목소리여서 재치기만 하면 사람들이고 개들이고 그 개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몸집은 작은데 그렇게 큰 재채기는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했다. 두 마리 모두 주인에겐 거의 가지 않았는데 어쩌다 주인에게 다가가면 주인이 먹던 고구마를 손톱만큼 떼어 한 입씩 주곤 다시 찰칵이에 열중했다. 주인이 자주 보는 그 찰칵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카밍 시그널 : 반려견의 보디랭귀지에 ‘커밍 시그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늑대가 상대방의 공격적인 행동을 중단시키기 위해 ‘중단 시그널’을 사용한다면, 반려견의 행동은 예방의 차원에 가까웠기에 상대방을 진정시킨다는 의미의 ‘카밍’이란 표현을 선택했다고 한다. 반려견은 나쁜 일을 예방하거나, 긴장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무서운 사람이나 다른 반려견)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카밍 시그널을 사용한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을 느낄 때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자신에게 나쁜 의도가 없다는 것을 다른 반려견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반려견이나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도 이 시그널을 사용한다. 말하자면 개의 언어인 것이다. <카밍시그널> 투리드 루가스 지음


실컷 뛰어놀고 있을 때 네 명의 젊은 사람들이 나와 닮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입장했다. 그중 한 마리는 모자가 달린 옷을 입고 있었고, 또다른 개는 내 털과 같은 색의 보드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잘 정리된 털을 가진 그 개들은 활기차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주인은 조금 유난해 보였다. 두 마리의 개 중 한 마리가 내게 관심을 보이자 여자 주인이 와서 냉큼 안고 갔다. 또다른 한 마리가 다른 개를 향해 달려가자 다른 여자 주인이 막 뛰어가 얼른 안고 가버렸다. 그렇게 남자 둘은 자리를 지키고 떠들었고, 여자 둘은 자신의 개들이 멀리 가거나 다른 개들 속으로 사라지면 얼른 뛰어가 개들을 데려왔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그랬기에 그 개들은 결국 주인들의 주위에서만 놀아야 했다. 보다 못한 남자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애견 카페에 왔으면 놀게 놔둬! 하루 종일 쫓아다니지 말고..." 그래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자 주인 둘은 개들을 살피느라 바빴고, 남자 둘은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느라 바빠보였다.

그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기도 했는데, 얼마 후 개 두 마리에게 특이한 옷을 입혀서 나타났다. 그 옷은 모자가 달린 패딩 옷이었는데 바람 한 점 통하지 않을 만큼 그 개에게 밀착된 옷이었다. 그들은 개가 새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자 숨이 넘어가게 웃어댔다. 개가 옷을 갈아입으면 주인이 그렇게 즐거워하는 건가. 솔직히 나는 아직 옷을 입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기분인지 모른다. 그날 카페에서 옷을 입지 않은 개는 나를 포함해 딱 두 마리 뿐이었다.


이 가게에서 개들은 이중문으로 들어가 너른 마당에서 주로 뛰어노는데 마당 밖 산책로에서 만난 14살이나 된 할머니 개를 만났다. 14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그 할머니 개의 젊은 주인은 나의 주인에게 내가 몇 살인지 물었다. 주인이 이제 곧 한 살이 되어간다고 하자, 나를 애기라며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그 할머니 개가 가는 곳을 따라갔는데 할머니 개는 내가 가까이 가도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곧 주인에게 돌아갔다. 할머니 개의 주인은 자신들의 개는 14살인 노령견이지만 지금의 건강상태로 보아 5년은 더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 할머니 개처럼 주인 곁에서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는데, 가만 생각하니 내가 나이가 들면 주인도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함께 늙어가니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좀 슬플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주인보다는 빨리 떠나길 바랐다. 내 주인을 잃는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나무 그늘 아래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사람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요크셔테리어 두 마리를 데리고 몇 시간을 꿈쩍 않고 앉아서 종이를 보고 있었다. 지나가며 슬쩍 들었는데 우리 주인이 하는 말과 다른 종류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챙이 넓은 모자를 쓴 그 개들의 주인은 중얼중얼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고 있었다. 그 개들은 쌍둥이처럼 꼭 닮았는데 우아한 모습으로 주의의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시종일관 주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주인을 지켜줄 의무가 있는 개들처럼 보였다.


집으로 돌아올 즈음, 물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에서 목을 축이려고 하다가 앞 발을 헛디뎌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물이 얕아 전신이 젖지는 않았다. 물에 빠졌지만 하루 종일 마당에서 뛰어놀고 주인과 함께한 즐거운 날이었다.


집으로 오며 생각했다. 새로움이 넘치는 곳은 역시 바깥이다. 내가 다니는 산책길이 다가 아니다. 세상에는 개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주인이 있다. 내가 아는 세상은 주로 사람만을 위한 곳이었는데 말하자면 개에게 판을 깔아주는 개를 위한 가게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나저나 주인이 나를 또 언제 그곳에 데려가려나... 이번에 가면 좀 더 신나게 놀 텐데... 빨리 개판이 벌어지는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