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다니는 검은 개

by 붉나무

어둑해져서 나갔다. 주인은 요즘 산책을 나가면 나에게 집중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는 것 같다. 덕분에 마음대로 궁금한 것을 탐색할 시간이 주어져 좋긴 하다.

주인이 주로 머무는 곳은 시큼떨떠름한 맛이 나는 열매들이 떨어져 있는 곳이다. 어떨 땐 내가 목줄을 잡아끌어야 움직일 정도로 열매들을 쳐다보거나 찰칵이를 꺼내 사진을 찍곤 한다. 일전에 떨떠름한 맛이 나는 열매의 맛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만 바로 뱉어 버렸다. 이런 열매는 나무들 아래나 낙엽 더미에 떨어져 있다. 내가 몇 번 맛을 보았는데 크기와 모양이 비슷해도 다 같은 열매는 아니다. 시고 떫은맛의 정도 차가 있다. 요즘 바깥에 나가면 이런 열매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 나무 밑에도 나는 내가 왔었다는 표 해두는데 그런 나무들에겐 나 말고도 자주 찾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새들이다. 새들은 깃털로 표시를 해두는 것 같다. 나무 밑에서 깃털을 자주 발견한다. 새들은 나무 위에 앉아있다가 내가 나무 아래로 달려가면 '푸드덕', 또는 '삐이이 삐이이'이런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그럼 나는 화들짝 놀라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가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곤 한다. 공중을 향해 점프를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리곤 한두 번 짖어도 본다. 짖어봐야 소용없는 건 안다. 내가 짖었을 때 이미 새들은 하늘로 날아가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과 땅을 달리는 나는 애초부터 비교할 수 없는 존재란 걸 다시 확인할 뿐이다.

어둑해서 나갔는데 얼마 걷지도 않아 바로 깜깜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사는 곳에서 어두워진다는 건 바로 환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공원에 켜진 환한 빛들이 눈부실 정도다. 공원에 불이 켜지면 낮과 밤의 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환하다. 등으로 흐르는 따사로운 햇살이 없다는 그 차이 하나가 낮과 밤의 차이인가 싶을 정도로 내가 사는 공원의 밤은 밝다.


밤에 산책을 나가면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녀석이 있다. 그것은 나를 닮은 움직이는 검은 형상이다. 그것은 꼭 환한 불빛 아래를 지날 때 나를 앞서간다. 아니 내게 딱 붙어서 가는 것 같다. 그 형상이 나에게 붙어 다닐 때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내가 '멍멍'하고 경고를 해도 나와 꼭 붙어 간다. 그러다 어두운 곳에 들어서면 사라지곤 한다. 환한 빛이 있는 곳에서 주인이 내 뒤를 따라올 땐 영락없이 움직이는 검은 녀석이 하나 더 생긴다. 그건 나와 붙은 검은 녀석보다 훨씬 크다. 주인의 덩치보다도 큰 것 같다. 내게 붙은 녀석은 가끔 사라졌다 나타났다가를 반복한다. 내가 주인과 멀어지면 나에게 붙은 녀석만 남고, 내가 느릿느릿 걸으면 아주 큰 검은 녀석이 계속 뒤따른다. 오늘은 특히 불이 환하게 켜진 곳과 어두운 곳을 번갈아 걸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 검은 두 녀석은 숨바꼭질하듯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나는 그 말없는 검은 녀석의 정체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아직은 그것보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 냄새나는 것들이 신기해 그런 것들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한눈 파는 주인을 정신 차리게 한 것은 내 몸보다 커다란 바퀴 두 개가 빠른 속도로 지나간 후였다. 그것은 개와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곳에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를 '쌩'하고 앞질러 갔다. 하마터면 내가 부딪힐 뻔했다. 깜짝 놀란 주인이 목줄을 당겨 나를 잔디밭으로 데리고 갔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그 두 바퀴의 물체도 잘못이겠지만 한눈 파는 주인도 잘못 아닌가 한다. 천방지축 나를 데리고 나에게 집중해야지 나무를 쳐다보니 말이다. 암튼 주인이 꽤나 놀란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내 목줄을 짧게 잡고는 걸음을 재촉하는 걸 보면 말이다.


오늘 나가보니 낙엽은 내 엉덩이까지 차올랐다.

나는 언젠가 나와 내 주인을 따라다니는 검은 형상의 비밀을 밝힐 거다.니 낙엽은 나의 허벅지를 넘어 엉덩이까지 차올랐고, 가을은 열매에 빠진 주인의 눈에 가득 들어있다. 나는 언젠가 나를 따라다니는 검은 형상의 비밀을 밝힐 거다.